심판

홈으로/Tag: 심판

제10항 재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10항 재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세상 끝 날에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만민을 심판하시되 의인은 영생을 얻게 하시고 악인은 영벌을 받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인간은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죽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성경은 하늘과 땅이 창조되어 시작한 날을 기록하고 있고 또 멸망할 날이 있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7-39) 

 

1)이 세상이  멸망하는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자원 중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매장량은 현재와 같은 양을 소모한다고 하면 앞으로 각각 40년, 170년, 65년 정도 사용할 양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2008년 현재 기준).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수명이 한정되어 있듯이 지구가 인류에게 공급할 총체적인 자원의 양도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가 병들어가는 심상치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사라지는 가운데 있고, 그로 인해 해수의 온도 변화로 기상 이변을 일으키는 엘리뇨(El Niño) 라니냐(La Nina)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과 더불어 근래에 처처에 지진과 해일 같은 천재지변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 병균들이 창궐해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또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비해 필요로 하는 수자원이 모자라 물부족으로 고통하는 미래가 인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물부족으로 인해 수자원이 새로운 분쟁의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만 보아도 인류는 원하지 않지만 지구의 멸망과 인류의 종말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해서 분명히 선언하셨고 그 때의 징조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이 그런 미래를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벧후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딤후 3:1-5)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성경이 이야기하는 마지막 날의 징조는 이렇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징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사람의 지혜가 발달합니다.

오늘날 인류가 형성한 문화와 문명은 놀랍습니다. 과거에는 몇 달 걸려서 도달하는 거리를 현대의 교통수단을 통해 불과 몇 시간에 도달합니다. 작은 이동 전화기로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이 의사소통합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 그물망을 통해 전 세계를 국경의 제한 없이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수천 명을 동원해서 해야 되는 일을 기계적인 장치와 첨단 장비를 통해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해치웁니다. 계절과 장소에 관계없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첨단 가전제품은 인간에게 무한한 여가시간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화와 문명은 사람의 지혜가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둘째,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대적합니다.

전쟁은 인간 사이의 분열과 분쟁의 가장 극단적인 적대 상황입니다. 말세가 다가오면 이런 전쟁과 분쟁의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더욱 확대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살펴본대로 인간의 문명은 눈부시게 진보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영성은 점점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점부터 인류는 셀 수 없는 많은 전쟁들을 치렀습니다. 자원 때문에 분쟁하고 사상과 문화와 인종의 차이 때문에 분쟁해왔습니다. 그런데 과거는 단순한 사회여서 집단과 집단 간의 분열의 양상도 상대적으로 단순했지만 미래는 더욱 복잡한 다변화 사회여서 분열과 갈등의 내용이 더욱 복잡해지고 그 정도도 점점 깊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셋째대환란이 있습니다.

미래에는 이런 분열의 양상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서 그리고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이야기하는 대환란이란 바로 그런 총체적인 분열을 가리킵니다. 이 대환란의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큰 핍박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 대환란에 대해서 유사 이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큰 환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넷째거짓선지자가 출현합니다.

미래에는 전쟁, 기아, 분란 같은 외부 세계에서의 혼란뿐만 아니라 영적 내부 세계에도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신자들은 더욱 악하게 타락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도 신앙에서 멀어져 실족하게 되는 애석한 미래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여 택하신 성도조차 거짓 교훈으로 미혹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의 인본주의적 사상들이 신앙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물질주의 쾌락주의의 풍조로 성도가 세상에 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소식 가운데 자칭 예수라 하는 자들, 시한부 종말론자들, 극단적 열광주의자들, 종교 통합을 꾀하는 자들의 출현은 모두 이런 영적인 내부 세계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말세 징조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습니다.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 줄 아노라

 

(24:11-12)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말일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벌에 들어가도록 심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때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본 그대로 지상으로 재림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서 재림하실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의인에 대한 구원과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만 심판이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심판은 없고 구원만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약 악인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의인에 대한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의인에 대한 구원이 없다면 악인에 대한 심판이 필요 없습니다. 구원과 심판, 이 둘은 상호 연결된 사건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의인에 대한 구원과 악인에 대한 심판은 세상 끝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의인의 구원이 없다면 성도가 의를 추구하고 선을 좇으며 살아갈 이유가 없어집니다. 만약 심판이 없다면 악인에 대한 보응도 없으므로 세상에서 악인들은 더욱 악을 행하며 살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은 받드시 있어야 하며 재림 시 심판대 앞에서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심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창세 이후로 발생한 인류사의 모든 부조리와 불의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주적인 공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살해당한 아벨, 사가랴 선지자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세상의 종말은 분명히 다가올 일이지만 성도는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자라면 마땅히 종말에 있을 환난과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며 내세를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가치가 영원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가장 큰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땀흘리며 노력하는 것입니다.

(벧전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제1항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죄인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신 것을 믿으며 그분은 인류의 유일하신 구주시며 천지의 주재시고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초월해서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감각으로 그분을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 속에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자신 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피조물(조물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로 만드셨습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졌고 그로 인해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위임하셨습니다. 이는 다른 피조물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뿐만 아니라 만물에 대한 관리까지 맡기시고 에덴동산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금지하신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 자신이 창조주요,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이 땅에서 땀흘리며 수고하며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망의 굴레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서 왜 사망에 이르는 무거운 징벌을 내리셨을까요? 이 일을 통해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도록 맡기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더 신뢰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게다가 마귀가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처럼 높아진 것처럼 아담과 하와도 피조물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은 결과로 빚어진 일입니다(참조. 사 14:12 롬5:12-14). 이처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결과로 주어진 결과는 인간이 사망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영향이 끼쳐졌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 분열과 파괴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조화와 질서 가운데 창조된 아름다운 만물은 모두 인간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한 결과 만물에도 부조화와 무질서가 찾아왔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파괴되고 최후에는 결국 멸망이 예정된 것입니다.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피조물로 만들어진 인간은 결국 죽음 이후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비록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셔서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일찍이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을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치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천 년 전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이셨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일 1:14)

이처럼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사건을 ‘성육신’(Incarnation 하나님이 태어났다는 표현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약 성경은 이 성육신 에 대해서 무려 40여 차례나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예언했다는 사실을 보면 성육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육신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가 구원받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가끔 호의를 베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을 위해서, 더욱이 내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희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순종하여 반역의 길을 간 인간에게 최고의 호의를 베푸셨습니다. 그 호의란 사망의 그늘에 놓인 인간의 상황을 해결하시고자 ‘조물주’이신 그분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기꺼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일은 인간이 비록 범죄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신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둘째,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3:23) 모든 사람이 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만약 인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고 반드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스스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혹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고 해도 급류의 상황에서 헤엄쳐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로부터 구조대원이 구조 장비를 통해 도움을 주어야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떤 노동자가 밖에서만 문을 열 수 있고 안에서는 문이 열리지 않는 냉동 창고에 갇혔다고 합시다. 냉동 창고 안에 들어갔다가 실수로 문이 닫히면 반드시 밖에서 열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망의 그늘에 놓인 인간이 그 굴레에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성육신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셋째, 하나님이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을 보이셨습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일은 그분의 겸손과 사랑을 증거합니다. 2005년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일본왕의 장녀 노리노미야 공주는 평범한 공무원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왕족이 평민과 결혼하게 되면 왕족이라는 자기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되어야 하는 규율이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하게 되면 과거 왕실에서 누렸던 모든 혜택도 상실하는 상황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랑하는 한 남자 때문에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때로 자신의 특권을 기꺼이 내려놓게 만듭니다. 그리고 낮아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인간의 몸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높고 높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아지신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인간을 사랑하시되 조건없이 베풀어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1)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출애굽 시대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율법을 다 준수하겠노라고 굳게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때로는 율법을 범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율법만 주시지 않고 혹 범죄할 경우 죄책을 면하도록 소, 양, 염소, 비둘기, 곡식가루를 제물로 삼아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성막의 제도까지 주셨습니다. 만약 어떤 자가 율법을 범하게 되면 흠이 없는 가축을 성막으로 끌고 와서 그 가축에게 안수하고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불살라 드리고 피를 제단 주변에 뿌리는 제사 의식을 행해야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범죄한 자는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고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함이 없느니라

 

구약 시대 유대인들의 동물 제사 제도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그림자입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천년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십자가 사건은 한 유대인 청년의 억울한 죽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바로 모든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일종의 제사였다고 말합니다. 또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 자신도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셔서 인간이 처한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9:13-14) [13] 염소와 황소의 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벧전 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로 한 것이니라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언약의 피니라

 

2)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죽으실 뿐만 아니라 예언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구약 성경도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요나’라는 이름의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도망가다가 하나님의 섭리로 물고기 뱃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 후 그가 뉘우치고 회개하자 사흘 만에 물고기가 그를 토해내서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이 사건을 인용하시면서 곧 자신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에 대한 예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시편 16편은 다윗이란 인물이 지은 노래입니다. 그 노래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0절에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내 영혼’이란 겉으로 보면 다윗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행 2:29-31)는 다윗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다윗은 이미 죽어서 그 무덤이 자신들의 곁에 있으니 다윗에게 적용될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뿐만 아니라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많은 모순점들이 발생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부활도 없다는 뜻이고, 우리의 부활이 없다면 신앙생활의 목적도 사라집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하는 복음도 거짓말이라는 뜻이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면 모든 것들을 부정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긍정하면 모든 것들을 긍정하게 됩니다.

(고전 15:17-19)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 병나음, 마음의 평안, 출세, 권세와 같은 모든 것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그런 것을 얻고 누리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목표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에 힘쓰는 궁극적인 목적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최고의 복락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성도도 부활할 미래가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부활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때 나타날 현상과 부활의 과정에 대해서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밝히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도 살리시리라

 

(살전 4:16-17)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3)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줄 수 있으려면 첫째,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고 둘째, 전 인류를 구원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이 있더라고 능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줄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인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고 부활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능력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인류사에서 어떤 종교의 교주나 훌륭한 성현도 죽음을 경험했거나 죽음에서 부활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더욱이 그 죽음이 인류를 위한 것이고 부활이 또한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가 믿는 예수님만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증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세상은 기독교를 일컬어 독선적이라고 비판합니다. 다른 길은 없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유일성에 대한 주장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분은 언젠가 제자들에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 이 보다 독선적인 선언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은 다른 길은 모두 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배타성은 바로 이 선언에서 출발합니다. 이와 같은 유일성은 제자들도 분명히 깨닫고 고백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초대교회를 막 시작한 사도와 성도들은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회(이스라엘의 종교재판소) 앞에서 예수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고백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자들은 큰 의문이 있습니다. ‘내가 만나보지도 않은 수천 년 전의 인물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왜 내가 죄인이 되어야하고 사망의 저주에 놓여야 하는가?’하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이 의문은 예수님을 믿으면 모두 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일어난 모든 문제를 예수 한 분으로 인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인류의 첫 번째 아담이 일으킨 문제를 인류의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책임지고 해결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을 부당하게 처벌한 것도 아니고 아담의 불행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로 당신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시려는 깊은 사랑과 관용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성경의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