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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항 재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10항 재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세상 끝 날에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만민을 심판하시되 의인은 영생을 얻게 하시고 악인은 영벌을 받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인간은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죽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성경은 하늘과 땅이 창조되어 시작한 날을 기록하고 있고 또 멸망할 날이 있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7-39) 

 

1)이 세상이  멸망하는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자원 중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매장량은 현재와 같은 양을 소모한다고 하면 앞으로 각각 40년, 170년, 65년 정도 사용할 양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2008년 현재 기준).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수명이 한정되어 있듯이 지구가 인류에게 공급할 총체적인 자원의 양도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가 병들어가는 심상치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사라지는 가운데 있고, 그로 인해 해수의 온도 변화로 기상 이변을 일으키는 엘리뇨(El Niño) 라니냐(La Nina)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과 더불어 근래에 처처에 지진과 해일 같은 천재지변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 병균들이 창궐해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또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비해 필요로 하는 수자원이 모자라 물부족으로 고통하는 미래가 인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물부족으로 인해 수자원이 새로운 분쟁의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만 보아도 인류는 원하지 않지만 지구의 멸망과 인류의 종말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해서 분명히 선언하셨고 그 때의 징조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이 그런 미래를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벧후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딤후 3:1-5)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성경이 이야기하는 마지막 날의 징조는 이렇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징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사람의 지혜가 발달합니다.

오늘날 인류가 형성한 문화와 문명은 놀랍습니다. 과거에는 몇 달 걸려서 도달하는 거리를 현대의 교통수단을 통해 불과 몇 시간에 도달합니다. 작은 이동 전화기로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이 의사소통합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 그물망을 통해 전 세계를 국경의 제한 없이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수천 명을 동원해서 해야 되는 일을 기계적인 장치와 첨단 장비를 통해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해치웁니다. 계절과 장소에 관계없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첨단 가전제품은 인간에게 무한한 여가시간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화와 문명은 사람의 지혜가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둘째,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대적합니다.

전쟁은 인간 사이의 분열과 분쟁의 가장 극단적인 적대 상황입니다. 말세가 다가오면 이런 전쟁과 분쟁의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더욱 확대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살펴본대로 인간의 문명은 눈부시게 진보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영성은 점점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점부터 인류는 셀 수 없는 많은 전쟁들을 치렀습니다. 자원 때문에 분쟁하고 사상과 문화와 인종의 차이 때문에 분쟁해왔습니다. 그런데 과거는 단순한 사회여서 집단과 집단 간의 분열의 양상도 상대적으로 단순했지만 미래는 더욱 복잡한 다변화 사회여서 분열과 갈등의 내용이 더욱 복잡해지고 그 정도도 점점 깊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셋째대환란이 있습니다.

미래에는 이런 분열의 양상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서 그리고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이야기하는 대환란이란 바로 그런 총체적인 분열을 가리킵니다. 이 대환란의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큰 핍박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 대환란에 대해서 유사 이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큰 환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넷째거짓선지자가 출현합니다.

미래에는 전쟁, 기아, 분란 같은 외부 세계에서의 혼란뿐만 아니라 영적 내부 세계에도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신자들은 더욱 악하게 타락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도 신앙에서 멀어져 실족하게 되는 애석한 미래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여 택하신 성도조차 거짓 교훈으로 미혹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의 인본주의적 사상들이 신앙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물질주의 쾌락주의의 풍조로 성도가 세상에 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소식 가운데 자칭 예수라 하는 자들, 시한부 종말론자들, 극단적 열광주의자들, 종교 통합을 꾀하는 자들의 출현은 모두 이런 영적인 내부 세계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말세 징조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습니다.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 줄 아노라

 

(24:11-12)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말일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벌에 들어가도록 심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때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본 그대로 지상으로 재림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서 재림하실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의인에 대한 구원과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만 심판이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심판은 없고 구원만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약 악인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의인에 대한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의인에 대한 구원이 없다면 악인에 대한 심판이 필요 없습니다. 구원과 심판, 이 둘은 상호 연결된 사건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의인에 대한 구원과 악인에 대한 심판은 세상 끝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의인의 구원이 없다면 성도가 의를 추구하고 선을 좇으며 살아갈 이유가 없어집니다. 만약 심판이 없다면 악인에 대한 보응도 없으므로 세상에서 악인들은 더욱 악을 행하며 살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은 받드시 있어야 하며 재림 시 심판대 앞에서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심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창세 이후로 발생한 인류사의 모든 부조리와 불의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주적인 공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살해당한 아벨, 사가랴 선지자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세상의 종말은 분명히 다가올 일이지만 성도는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자라면 마땅히 종말에 있을 환난과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며 내세를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가치가 영원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가장 큰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땀흘리며 노력하는 것입니다.

(벧전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제7항 성찬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7항 성찬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성찬례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주의 살과 피에 동참하여 주와 연합하고 영생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성례임을 믿는다. 이 성례는 필요할 때마다 거행하며 반드시 한 개의 누룩 없는 떡과 포도즙으로 거행한다.

성찬례는 구약 출애굽 시대에 시작된 유월절 절기에 유대인들이 가지는 특별한 식사가 신약 시대에 개혁되어 나타난 기독교의 성례입니다. 이 성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1)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기 위해서 그 나라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열 개의 재앙 가운데 마지막으로 내려진 재앙은 바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초태생은 죽음을 당하는 끔직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에게는 그 재앙이 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재앙이 닥치기 전에 미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대로 실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백성들과는 달리 그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열 번째 재앙은 유대인들이 애굽을 나올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은 애굽 사람에게는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임한 이 재앙을 기념하여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절기에는 무교병과 양고기와 같은 특별한 의미의 음식을 먹으며 기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2: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구약 시대 장자 죽음의 재앙을 통해 시작된 유월절 절기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예표합니다. 즉, 애굽과 같은 죄악 세상에서 사망의 노예처럼 매여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그 값으로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우리는 예수님께서 새롭게 설립하신 새로운 유월절로서 성찬례를 시행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친히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에 근거하여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찬례를 일컬어‘유월절 먹기를 원하였노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성찬례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즉 신약 시대 성도들이 지켜야 하는 새로운 유월절 식사입니다.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성찬례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 사이에서만 명령하시고 준행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세워진 초대교회는 그것을 하나의 성례로 받아들여서 시행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관련된 문헌에서도 발견되지만 성경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저술인 고린도 전서에서 예수께서 설립하신 성찬례의 정확한 절차와 그 의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만찬에 참여한 인물이 아닙니다. 마지막 만찬에 참여하지 않은 그가 그 때의 대화와 성찬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고린도 교회를 포함한 초대 교회가 성찬례를 하나의 예전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입니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2)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여 주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교파와 교단에 따라 그 교리에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천주교의 견해로 ‘화체설’(化體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즙을 축사하면 실제로 예수님의 피와 몸으로 변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일반 개신교의 견해로 ‘상징설’(象徵說)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 축사 기도를 하더라도 떡과 포도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예수교회의 ‘영화설’(靈化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성령을 받은 성도의 축사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피와 살로 ‘영적인 변화’(영화)가 일어난다고 믿는 견해입니다. 마치 세례받을 때 물이 실제 피로 변하지는 않지만 성령 받은 자가 예수 이름으로 선언하고 시행했을 때 ‘물’이 ‘피’로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듯이 성령 받은 자의 축사 기도를 통해 성찬례의 떡과 포도즙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딤전 4:4-5)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3)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영생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성찬례에 참예할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세례를 받고 구원의 길을 시작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은 성찬례를 통해 거듭난 성도에게 부활과 영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찬례에 참예하는 성도는 이 예식에 참예함으로 장래에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참예해야 합니다.

(6:5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4)힘을 합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개인적 신앙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한 떡과 한 포도즙에 참예하는 것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한 지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육신의 피를 나눈 혈육의 가족 관계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영적인 가족 관계도 있습니다. 육신의 가족은 죽음을 통해서 그 관계가 끝나지만 영적인 가족은 죽음 이후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가족은 육신의 가족보다 더 중요하며 육신의 친족보다 더 친밀한 관계입니다. 성도는 성찬에 참예할 때 이처럼 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눈 영적인 가족들과 함께 한 떡과 한 잔에 참예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적인 가족으로 맺어진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주님의 죽으심을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5)성찬례는 성경적 절차와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세례라는 성례와 마찬가지로 성찬례도 그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도록 성경적 절차와 방법대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 절차와 방법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해야만 그 성찬례에 담긴 온전한 정신과 영적인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 개의 누룩없는 떡을 사용합니다.

떡은 축사하기 전에 한 개여야 합니다. 그리고 축사 이후에 작은 조각으로 찢어 나눕니다. 이 한 개의 떡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참교회의 성도들은 천국까지 항해하는 구원의 방주에 함께 올라탄 한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떡에 누룩을 넣지 않은 것은 순결한 예수님의 몸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누룩을 멀리하듯이 생활 속에서 죄악과 부정함을 멀리하고 예수님처럼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할 것을 성찬에 참예하는 시간에 깊이 다짐해야 합니다.

(고전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둘째, 한 병의 누룩 없는 포도즙을 사용합니다.

한 병의 포도즙은 우리가 한 피를 나눈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발효된 포도주가 아니라 누룩을 넣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은 역시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님의 정결한 피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그 피에 참예함으로 예수님을 본받아 피흘리기까지 죄의 세력과 싸우며 세상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복음을 전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세례를 받은 자가 성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유월절은 할례를 받고 유대인으로 귀화한 자만이 참예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약 시대의 새로운 유월절인 성찬례도 세례를 받고 거듭난 성도만이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아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지도 않은 자가 장차 부활할 미래를 위해서 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로 주님과 관계를 맺은 자,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후 성찬에 참예할 자격이 있습니다.

(12:48)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넷째, 성찬거행의 회수는 제한이 없고 수시로 거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 문헌이나 자료를 조사하면 초대교회에서는 성찬례를 집회시마다 애찬과 병행하여 시행한 것으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히 시행의 회수나 시행할 때를 지정하신 일은 없으므로 각 교회가 처한 형편대로 스스로 정해서 거행하면 됩니다. 싱가폴에 있는 참예수교회의 경우 월 1 회 성찬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참예수교회 대만교회에서는 한국 교회처럼 영은회와 같은 특별한 행사 때에 시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