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결핵이 나았다

///폐결핵이 나았다

간증자 김영생

군대 가기 전에는 믿음 생활하면서 농사를 짓고 집안을 도왔습니다. 1958년 군대에 갈 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남들이 들어갈 수 없었던 카투사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카투사에 가려면 든든한 빽이 필요했었습니다. 제가 간 부대는 카투사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었는데, 시설이 좋아서 극장, 도서실, 오락실도 있었습니다. 카투사는 극장이 무료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이 끝나면 극장에 갔지만 저는 성경책을 들고 도서실을 찾았습니다.

군대에서 믿음이 떨어짐

그러나 그곳에 오래 있다 보니 극장에도 가게 되고 믿음도 약해졌습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대방교회의 전신인 신길동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지만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먹게 되고, 놀러도 나갔습니다. 저에게는 세상 친구들이 있고 젊음이 있고 돈이 있었습니다. 술집에도 많이 갔지만, 여자를 볼 때는 머리 속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나 멀리 했습니다. 나중에는 술을 주전자로 하나 시켜 혼자 먹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술이 받는 체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을 먹도 돌아오는데 하나님이 주신 귀중한 시간을 술 먹고 비틀거리며 쓸데없이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어 걸어 놓으려는데 성경 책이 보입니다. 스스로 “너는 누구냐?” “하나님의 자녀다” 하며 자문자답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들면서 여기 있으면 신앙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환경에 있었던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것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폐결핵이 나음

어느 날 금촌이라는 곳에 기동 훈련을 나갔는데 갑자기 기침이 심하게 나오고 힘이 빠졌습니다. 일주일 동안 산 속에 있었는데 밤에 차 엔진을 끄면 아침에 시동이 안 걸리기 때문에 시동을 끄지 못하게 해서 밤새 건조한 히터 바람을 쏘이고 커피를 마셔 가며 있다 보니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식사도 잘 못한 상태에서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돌아왔습니다. 몹시 아프고 열도 많이 나서 밥도 못 먹고 누워 있다가 병원에 가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폐 반절이 거의 먹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폐결핵 전문 병원에 가서 10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제가 걸린 병은 폐결핵인데, 균이 강해서 이 균을 죽일 수 있는 약은 없고 다만 번지지 못하게 하는 약을 먹을 뿐이었습니다. 치료하던 의사는 더 이상 번지면 위험해 지니까 폐를 떼어내야 한다고 했고, 이 수술을 해도 25퍼센트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성경을 많이 읽었고, 신앙이 많이 회복되어서 그런지 집에 가서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면 건강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가서 치료를 하겠으니 제대를 하겠다고 신청을 했습니다.

1960년 10월에 제대를 하고 집에 와서 약은 전혀  먹지 않고 저녁마다 30분씩 찬송을 했습니다. 곡도 잘 모르지만 나도 모르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기쁨으로 찬송했습니다. 놀랍게도 그후로는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병에는 찬송이 특효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한 후에 누워 있지 않고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믿지 못했습니다. 제가 제대를 하고 집에 왔을 때 저를 본 사람들은 “살 수 없다”고 거의 장담을 했었는데 즉시 건강해져서 일까지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치는 것으로 인한 축복

병원 치료를 하면서 “하나님이 저를 살려 주시면 앞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니 지식이 없어서 목회자로 나설 수는 없을 것 같아 돈을 벌어 간접적이라도 교회 일을 도와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당시는 농촌 경제가 어려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는 마음을 단단히 하여 생활비를 아꼈고, 고기가 먹고 싶어도 그 돈을 교회에 바치려는 생각으로 참았습니다.

전주교회 회당을 서학동에서 평화동 사거리로 옮겨 지을 때, 대충 계산해 보니 현금 4억만 있으면 건축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를 바칠까 생각하며 기도하다가 논을 팔아 1억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당시 제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고, 이전에 남들 보증을 서준 관계로 집과 논 646평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독자 이삭도 아낌없이 바친 것과 신앙인으로서 본을 보여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결정했습니다.

팔려고 내놓았지만 그곳에 소방도로가 지나간다는 말이 있어서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결국 전체가 팔리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3분의 1인 208평을 평당 50만원에 팔아서 건축  헌금을 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땅값이 올라 평당 90만원에 팔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어 소방도로가 필요 없어지자 땅값이 갑자기 오른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하나님이 왜 이렇게 어렵게 팔리게 하실까?’ 하며 의아스럽게 생각했지만 만약 처음부터 전체가 다 팔렸더라면 이런 시세는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계획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쳤을 때 바친 사람에게도 형통함을 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팔린 것으로 일부 감사 헌금을 하고 목돈을 쥐게 되자 ‘이 돈을 가지고 다시 투자하면 큰돈을 벌 텐데’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이때 “탐욕은 우상숭배”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장로가 되어서 “어디에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다”는 식으로 생활하고 얘기를 한다면 신도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자책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난 농민으로서 농사짓고 살았기 때문에 세나 받아 먹게 논을 사 달라”고 부탁을 했고, 여지저기 대상지가 나왔지만 막상 성사가 되지 않아 최종적으로 죽산쪽의 논을 사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엄청나게 잘한 것이었습니다. IMF가 올 줄은 몰랐지만 와 놓고 보니까 그 논의 시세가 배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1년에 쌀이 100가마 정도 나오기 때문에 세를 받아 충분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땅을 소개해 주신 분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아무런 경제적인 문제없이 교회를 도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By | 2017-11-19T23:10:02+00:00 2017-11-15|Categories: 간증, 치유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