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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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

간증자 이미미<李美美> 자매

제 이름은 이미미(李美美)입니다. 1969년 생이며, 지금 참예수교회 수림(樹林)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 체험한 주님의 놀라운 보호하심의 은혜를 간증하여 여러분이 평안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기를 원합니다.

뜻밖의 임신

저와 남편 채영생(蔡永生)은 주님의 은혜로 1994년 1월 3일 결혼했고, 자녀는 1년 후에 가질 계획이었습니다. 4개월 후 독일 홍역에 전염될까 염려해서 보건소에서 주사를 맞았습니다. 간호원은 저에게 주사를 맞은 후 3개월 안에는 절대 임신해서는 안되고, 만약 임신하면 이 약이 태아를 기형으로 만든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의사가 낙태를 권함

이 말을 들은지 1개월 후에 저는 갑자기 몸 상태가 아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제가 이미 임신했다고 했고, 저와 남편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남편은 매우 걱정이 되어 의사에게 저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의사는 우리에게 현재의 심각성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60퍼센트는 기형아나 저능아나 몸에 이상이 있는 아이가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낙태시키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낙태는 주님의 말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어머니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했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건강한 보물을 주실 것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남편도 이 일로 목자님과 상담했습니다.

목자님은 저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동료들과 사장 부인이 이 일을 알고 아이를 낙태시키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사장은 여동생이 저와 같은 상황이었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낙태시켰다고 하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 동료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만일 정말로 기형아를 낳는다면 아이는 불쌍하고 부모도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흔들려 매일 퇴근한 후나 아침에 깨어나서도 이 일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울면서 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서,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가지고 환난을 만나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니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면했고, 저는 이 말을 듣고 낙태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며 10개월이 지남

임신 10개월 동안 우리 부부는 늘 기도했습니다. 어느 안식일 오후에 남편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제가 있고 또 저와 같은 시기에 임신한 자매가 팔로 아이를 안고 있는데 모두 아들이었고, 둘이 아주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뱃속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 남편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임신한지 4개월 되었을 때 저는 남편과 함께 야시장에 가서 간식을 사 먹고 집에 돌아왔는데, 온 몸이 불편하여 토했고 배가 아주 아팠습니다. 병원에 가서 응급 치료를 받았는데 장염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 후에 평안해졌습니다.

임신 7개월째 되는 어느 날 저녁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어서 남편과 함께 가서 응급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저의 신장에 염증이 생기는 것은 조산 현상일 수 있으니 되도록 빨리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조산아를 낳는 것이 아닐까 정말 걱정되어 계속 하나님께 우리 모자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셔서 임신한지 10개월 후에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임신 중에 차 사고를 만남임신 기간 동안 검사를 받을 때 태아의 위치는 항상 정상이었습니다. 매일 출근을 했는데, 어느 날 아침 동료가 오토바이에 저를 태우고 일하러 갔습니다.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중간에 자가용차가 정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에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려고 했는데 뒤에서 오는 오토바이는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동료는 미처 오토바이를 멈추지 못하고 자가용 차 문을 재빨리 피했는데 차 문은 저의 배와 왼쪽 허벅지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허벅지에 큰 통증을 느꼈고, 무엇보다 태아가 걱정되었습니다. 직장에 가서 보니 왼쪽 허벅지에 피가 엉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중의 아이가 혹시 죽었을지 몰라 두려워 초음파 검사를 해보기 위해 즉시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병원에 가서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돌봐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10분 후에 의사는 저에게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는데, 태아의 위치가 바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큰 능력과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사고가 날 때 아이의 위치를 돌려서 태아의 머리가 위에 오게 하셔서 자가용 차의 문이 태아의 머리에 부딪히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며칠 지나 또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는 저에게 태아의 머리가 다시 아래로 돌아가 정상 위치라고 했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순산을 함

출산 날이 가까워지면서 저는 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출산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인데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셔서 해산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순조롭게 도와 주십시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으셔서 출산하는 날(1월 16일) 배가 조금도 아프지 않고 편하게 출산했습니다. 태아는 정상 체중이고 사지 온전하며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최대의 복입니다.

환상대로 이루어짐

사랑의 하나님이 저를 돌보시고, 저의 걱정을 아셔서 건강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저의 남편이 안식일의 기도 시에 본 환상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시기에 임신한 자매도 역시 아들을 낳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며, 제가 교회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182-184)

 

대만총회 발행, 雲彩飛揚, 182-184쪽

천사의 계시를 받음

간증자 대만 성공교회 오효용 형제

제 이름은 오 효용(吳孝勇)입니다. 저는 대동현(臺東縣) 성공진 삼민리 삼민로 13의 1번지에 살고 있습니다. 1942년 9월 1일에 태어났습니다. 현재는 성공 교회의 종교교육 교사입니다.

1963년에 군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던 중에 동료들이 나쁜 짓을 하는데 같이 어울리자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러한 바르지 못한 길을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내무반에 남았습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주 자유로워서 즉시 기도하며 찬송을 했습니다. 그때가 6월 10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효용아! 효용아!”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주위를 살펴 보았지만 부르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잘못 들었나 보다하고 갸우뚱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금빛으로 빛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아라. 나는 너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려 한다. 하나님은 현재 교회의 믿음이 매우 냉랭한 것을 보고 계신다. 회개하고 처음 믿을 때의 열심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버리실 것이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왔다. 마땅히 깨어서 주님의 구원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 너는 이 말을 전 교회에 전하라. 침묵해서는 안된다.”

이 말을 마치고 그 천사는 하늘로 다시 올라 갔습니다.천사의 계시를 들은 후, 저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위로와 믿음의 견고함을 크게 얻었습니다.

성령보(聖靈報) 제 163호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을 찾다

간증자 쉬궈위(許國鈺)자매님

고등학교 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쉬궈위는 18살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해하던 어느 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서점에 이르게 된다. 어떤 책에 손을 대는 순간 ‘신’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고, 그 서점을 나오는 순간 우울증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그녀가 손을 댔던 책은 바로 성경이었다. 그 신을 찾기 위해 많은 교회에 다니고 성경공부를 했으나 그 어떤 교회도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했다. 결국 그중에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우울증이 재발하는 것을 느꼈고 프랑스에서 큰 상을 두 개나 탔음에도 우울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쉬궈위는 다시 무릎꿇고 주님의 인도를 구했고, 그 후 주님께서는 신비한 방식으로 그녀를 참 진리로 인도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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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을 맞고도 살아나다

간증자 김충실 집사 (전주교회)


 제가 17세 때인 1960년 4월10일 오후 4시경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안식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큰비는 아니지만 봄비가 내렸고, 시기적으로 보아 뇌성벼락이 치는 계절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배가 고파 어머니에게 저녁밥을 재촉하고는 밖에 나와 옆집 구멍가게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가게에서는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아저씨가 비를 피하기 위해 바지를 걷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벼락을 맞고 저는 정신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는데 아주 멀리서 기막히게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그 음악 소리가 나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가게 되었는데, 그 소리가 바로 제 옆에서 나길래 눈을 뜨고 보니 삼계교회 교인들이 제 옆에서 아주 충만하게 방언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함께 기도하던 그 소리가 저의 귀에는 이 세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로 들렸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소리는 황홀한 기억으로 되살아납니다.
 
 
제가 눈을 뜨자 “학열(김충실 집사의 본명)이가 눈을 떴다. 봐라,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외치는 김디모데 목자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너 나를 아느냐? 어디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시는데 제 몸이 이상하고 정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정신은 들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다시 기도하고 찬송을 하는데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제가 세시간 가량 숨이 멎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저녁에 매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구멍가게의 기둥에 서 있다가 그 기둥을 때린 벼락을 맞았던 것입니다. 저와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아저씨는 벼락 소리에 놀라 기절하여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제 몸은 벼락이 지나가 왼쪽이 발가락에서 머리까지 검게 타버렸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가서 치료도 못했지만 기도의 힘으로 눈으로 확인할 정도로 상처가 회복되어 다음 안식일에는 제 발로 걸어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두 가지 있습니다. 제 등 한가운데 백원 짜리 동전 크기의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고, 그 가게 기둥이 쪼개진 채 지금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와서 구경을 하는 바람에 집주인이 판자로 그 자리를 막아 버렸습니다.
 
신기한 것은 제가 넘어진 장소가 그 당시 아주 위험한 곳이었는데 한 사람 겨우 누울 만한 안전한 곳에 제가 넘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게는 초가집이어서 벼락을 치자 지붕이 뒤집어지고 포탄을 맞은 것처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는데도 불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보충 간증: 김디모데 목자


 삼계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여름철 안식일이었는데, 김학열이라고 교회에 다니는 17세 먹은 학생이 안식일 예배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집 옆에 가게가 있었고 가게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낙비가 막 쏟아지니까 이 학생이 기둥 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그 기둥나무를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둥나무가 두개로 쪼개져 버리고, 가게에 있던 사람도 앞으로 쓰러지고, 기둥나무에 기대있던 이 학생도 정신을 잃고 도랑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학생을 집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제가 그날 심방 갔다가 버스에서 막 내리니까 부락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벼락을 쳐서 참예수교회 학생이 죽어버렸다.”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갔는데 사람들이 처마 밑과 마루와 방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와 있었고, 학생의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친척들, 이웃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까 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우리 교인 아닌 분들은 다 나가세요”라고 하고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합시다”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계속해서 기도를 했는데, 교인들이 교대해 가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주사를 맞게 한다거나 약은 전혀 먹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참예수교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데 충격을 받았지만, ‘이 학생이 죄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학생은 나아서 그 다음 안식일에 바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살펴보니까 벼락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지나갔는데, 옷이 다 타고 살갗이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병원도 가지 않았고 기도를 통해 일주일만에 나아서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이런 소문이 퍼져서 멀리서도 “여기 벼락 맞아서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있다는데 누굽니까?”하고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발췌: 참예수교회한국총회 50주년기념호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간증자 John Ko 형제 (호주 브리스번 참예수교회)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5:3)

2010년 이후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무시무시한 지진과 홍수, 쓰나미, 토네이도와 같은 자연 재해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간다.

수해 한 가운데에서의 평안

과거 호주와 뉴질랜드엔 자연재해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의 낙원이라고들 했다. 이런 이유로 호주와 뉴질랜드 모두 올해 자연재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2011년 1월, 100년만의 최악의 홍수가 호주를 강타했다.
홍수는 호주 퀸즐랜드와 브리즈번 및 그 주변도시들을 휩쓸었다. 15,000여채가 넘는 집들이 물에 완전히 잠겼고 18,000 여채가 넘는 집들이 침수되었으며 22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011년 2월 22일에는 규모 6.3 의 지진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강타했다. 10,000 여채의 집들과 1,000여개의 상점들이 붕괴 되었으며, 181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재난은 정말로 갑자기 일어났다. 마치 광풍과 같은 두려움으로, 폭풍과 같은 재앙으로 다가와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근심을 가져왔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잠1:27)


나는 호주 브리스번에서 20년 넘게 살며 세기의 엄청난 홍수를 직접 경험한 증인이다. 올해 1월, 호주 브리스번의 서쪽 지역인 북 퀸즐랜드와 투움바, 입스윗치 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다. 엄청난 양의 비로 인해 저수지의 물이 넘쳤고 강의 수위가 위험수위인 18미터까지 급격히 올라갔다.

2011년 1월 10일의 홍수로 투움바와 입스윗치 지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저 홍수가 그들의 자동차와 집을 삼키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2011년 1월 13일 새벽 4시, 홍수가 브리스번에 도달했을 때 브리스번의 강의 수위는 4.46미터까지 올라가 브리스번 저지대에 있던 모든 집들이 홍수에 완전히 잠겼다.

내가 사는 지역도 물이 무릎까지 차 올랐고, 대부분의 지하가 물에 잠기고, 많은 빌딩들의 전기와 물이 끊어졌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지역은 심한 피해는 입지 않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44층은 브리즈번 강을 마주하고 있다. 이 곳에서 나는 홍수가 개인과 공공소유의 배들이 정박 되어 있는 항구의 요트와 페리선들을 휩쓸어 저 바다 멀리까지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정말로 그것은 무서운 광경이었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브리즈번 참예수교회에서는 단기 NYTS (전국 청년 단기신학)과 사회청년부 세미나를 브리스번 근처 마운트 쿠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홍수는 이 두 행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참예수교회 성도들 중, 그 어느 집도 홍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 무서운 시기에도 우리 참예수교회 형제 자매님들은 모두 평안히 지낼 수 있었다. 호주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홍수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 난 ” 인간이란 무엇인가? ” 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과학이 가장 믿을 만하고 노력만 하면 아무 것도 불가능할 것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그러나 이 말은 인간의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다.

인간인 우리가 능력과 노력만으로 수많은 일을 해냈고 심지어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까지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힘을 막을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자연의 재앙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저 자연의 엄청난 힘이 우리의 귀중한 소유물들을 단숨에 쓸어가는 것을 힘 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너무나 보잘것 없고 하찮은 존재이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8:3-4)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사40:15)

뉴질랜드의 지진 한 가운데에서 느꼈던 평안

호주 브리스번의 홍수의 여파가 다 끝난 후인 2011년 2월 20일, 나와 아내 그리고 장모님은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여행을 갔다. 우리는 이곳을 여행하며 동생과 숙모님도 만나고 싶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2월 22일에 산과 바닷가를 구경하고 23일에는 크라이스트처치 씨티 센터에 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도착 후 마음이 바뀌어 시내에 있는 박물관부터 먼저 관광하기로 했다. 2월 22일 아침이 되었는데, 갑자기 장모님과 숙모님이 그냥 집에 계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남동생과 나 그리고 아내만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에 도착했을 땐 근처에 둘러쌓여 있는 여러 채의 역사적인 건축물들에 압도되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바쁘게 찍으며 씨티 쎈터 쪽으로 걸어갔다.

우린 원래 그곳의 주 관광지인 크라이스트처치 카톨릭 성당에 갔다가 2010년 9월 4일 진도 7.1규모의 지진 피해를 당했던 곳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성당을 보고 난 후, 그냥 성당 근처에서 점심을 먼저 먹고 과거 지진피해 지역쪽으로 가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점심을 다 먹고 우리는 천천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난 ” 이거 혹시 지진인가? ” 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가 거리 중간에 서 있어서 위에서 떨어지는 돌덩이들을 피했다. 우리는 땅이 심하게 갈라지는 것과 땅속 흙이 땅위로 솟아 나오는 것도 보았다. 우리 주위 사람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고 상점의 유리와 벽들도 무너져 내렸다.

그 때 난 ” 하나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 라는 말만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난 그저 계속 기도했다. 기도를 하니 두렵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시46:1-3)

난 바로 캠코더를 꺼내 이 중요한 순간을 찍었다. 우리가 한 자매의 가게 앞에 서 있을 때 이 지진이 일어났다. 자매가 손에 아기를 안고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빌딩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을 보았다.

길 맞은편의 커피숍은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몇몇 용감한 사람들은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아직 안에 갖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다.

곧 2명의 사람이 커피숍 안에서 실려나왔고 길에 눕혀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살리려고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당 앞으로 대피했다. 우리가 한가한 곳에 도달했을때야 비로소 이 지진이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엄청난 지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시간전에 관광했던 성당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탑과 벽이 무너지면서 떨어진 돌들은 사람의 키 높이 만큼 쌓여 성당 옆에 주차해 놓았던 차량들까지 덥쳤다.

만일 장모님과 숙모님이 우리와 함께 가셨더라면, 우리 모두는 아마 성당의 지붕이 무너질 그 때에도 성당 안에 있었을 것이다. 장모님과 숙모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걸음이 느리시기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만일 과거에 지진이 일어났던 피해지역에서 점심을 먹었다면 아마 그 무너진 식당안에 갖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무너진 돌덩이에 묻혀버렸을 것이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게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거주하는 참예수교회의 형제 자매들 중 그 누구도 이 지진에 피해를 입지 않았고 교회 건물도 전혀 피해가 없었다.

주 안에서의 참된 평안

자연 재해는 예고없이 갑자기 발생하기에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한 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우리의 삶을 완전히 제어할 수 없고 자연의 재앙으로부터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 안에서 평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평안을 얻으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평안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준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신의 완전한 평안이다. 참된 평안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고 맞설 수 있다.

참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평안의 근원이 되신다.

76.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눅1:76-79)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29:11)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바위가 되신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사 26:3-4)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그 분의 말씀을 듣는다면 강 같이 넘치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삶에서 고난과 역경을 만난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이번에 겪은 두 자연 재해들을 통하여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였고, 이사야 26장 3절의 말씀이 참된 말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사실 많은 자연 재해들이 이 땅에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제 세상의 끝날이 가까워 졌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7)

우리가 세상의 끝날이 임박했음을 알고 항상 깨어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날을 준비하자.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살전 5:2)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6)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

캐롤 챈(Carol Chan) 자매 / 미국 휴스턴 참예수교회

자기만족의 삶

나는 태어난지 2주만에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참예수교회의 성도이다. 나는 태어났을 때 천식으로 심하게 아파 어머니는 내가 결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지만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뒤에 병에서 회복되었다.

내가 네 살 때 가족들은 캐나다의 밴쿠버로 이민을 갔고 감사하게도 내가 앓고 있었던 천식도 완전히 낳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은 캐나다로 이민한 뒤 참예수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랐고 하나님을 찾지도,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지도 않았다.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한 성도의 권고를 받고 다시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하셨고 나도 곧 부모님을 따라 예배에 참석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큰 항공사에 취직 되어 전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자동차 뿐 아니라 여러가지 옷도 사 주셨고 도시락까지 싸 주시며 렌트비도 낼 필요 없는 집에 살게 해 주셨다.

동료직원들은 내가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다며 나를 대단한 행운아라고 했다.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영적인 삶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난 예배에 지속적으로 참석했지만 항상 가장 늦게 교회에 나타나 가장 빨리 교회에서 사라졌다.

다른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점심을 먹고 가라 권유해도 나는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나는 세상 친구들이 많았고 매 주말 마다 여러가지 해야 할 일들과 가야할 곳들도 많았다.

그리고 난 몸을 움직이지 않고 단 5분도 기도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기도하면서도 난 영화 볼 생각이나 먹을것에 대한 생각을 하곤 했다. 나에게 음식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삶이 너무나 순탄하고 만족스러워 나는 정말로 하나님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계속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게끔 놔두시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이제는 정말로 감사드린다.

외로움과 희망이 없음을 느끼다

1999년 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2년 후 남편은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발령을 받아 우리는 코펜하겐에서 살게 되었다. 코펜하겐은 아름답고 즐길것도 많은 도시였다. 그 후 2002년 우리는 노르웨이의 작은 어촌으로 다시 이사했다.

그 때부터 나의 삶은 갑자기 뒤바뀌었다. 친구들과 좋은 직업, 부모님께서 제공해 주신 수 많은 것들을 누렸던 삶에서 친구도 직업도 없고 부모님도 안 계시는 곳에서 지내야 했다. 그 곳에서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마을을 걸으면서도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랬다. 그 곳은 외로웠을뿐 아니라 겨울도 지내기가 힘들었다.


매일매일 너무나 추웠고 어떤날은 하루 21시간 내내 계속 어두웠다. 난 자가용이 없어 추운 겨울날에도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야했고 그 어둡고 춥고 칙칙한 곳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언덕위의 아파트에 살았고 날씨가 춥기만 하면 길이 얼어 시장에 갈 때마다 난 미끄러지고 넘어졌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모든 물건의 가격이 내가 예전에 지불했던 가격의 3배정도였다. 예를 들면 피자 한 판이 50달러이고 콜라 한 병이 7달러 정도이다. 음식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에게 이것은 정말 끔직한 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매일 캔에 든 음식과 밥을 먹어야만 했다. 난 남편에게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했다. 남편은 내게 그 곳에서 단지 2개월만 살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은 우리가 그 곳에서 최소한 2년을 살아야 한다는 소식을 말해주었다. 난 정말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난 너무나 지루하고 슬프고 외롭고,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비싼 그런 곳에서는 결코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난 처음으로 공황발작에 시달렸다. 불면증과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불어 결국 우울증에 이르렀다. 매일 나는 어두움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느껴졌고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계속 울음만 나왔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내가 어떤 생각을 멈추고 싶어도 나의 뇌는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괴로워하며 난 처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밤 나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꿈을 꾸었고 꿈에서 깨었을 때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나의 불면증은 낳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너무나 지치고 불안해 심지어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에는 아무런 기쁨도 없었다.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게 될 것만 같았고 사람들도 나를 잊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나의 고통을 부모님께 이야기 했고 아버지는 휴식과 영적 치유를 위하여 집에 오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잠을 잤던 것이 2주가 지나 말 할 것도 없이 난 완전 마비 상태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기쁨과 영적인 회복

아버지와 참예수교회의 한 자매가 공항에 나를 마중 나왔다. 집에 도착한 후 아버지의 부탁으로 목자님께서 집에 오셨다. 우선 목자님께서는 내가 성령을 받았냐고 물으셨다. “제발 제게 성령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세요. 그저 잠만 잘 수 있게 해 주세요… “

목자님은 계속해서 내게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 라는 말씀을 하셨고 우리는 모두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할 때 내 옆에있는 자매가 프랑스 동요인 ” Frere Jacques ” 라는 곡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 곡의 영어 번역 가사는 “너는 자고 있니, 자고 있니 존? 아침 종이 울린다…” 였다.

나는 이것이 이상하여 자매에게 노래를 부른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 날 이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시고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신다고 생각이 되었고 그 때부터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 나는 침대에 몇시간 동안 누워 있었지만 잠 드는 것에는 실패했다. 내가 다시눈을 감았을 때 나의 몸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어떠한 어두운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시 눈을 떳지만 난 여전히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눈을 다시 감으니 그 형상이 다시 보였다. 나의 몸이 어두운 공간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거대한 불의 벽 같은 것이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그 불에 들어가며 나는 “하나님 도와주세요! ” 라고 울부짖었다. 눈을 뜨자 그 환상은 사라졌다. 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불은 어쩐지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의 믿음은 더 강해졌다. 아래의 성경 말씀을 읽고 난 후 내가 본 환상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마3:11)

다음날은 안식일이었지만 난 한 숨도 자지 못한 상태로 15일을 지냈다. 예배에 참석하여 나는 진정으로 성령을 구했다. 너무나 지쳐 있었지만 설교 말씀에는 귀를 기울였다. 나의 영혼이 진리를 갈망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날 저녁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잠이 들 수 있었다. 영적인 것을 갈망하며 나의 정신도 맑아진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드렸다.

그 주 내내 불면증은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성령받기를 위하여 기도했고 금요일까지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 주 금요일 저녁 예배에 내게 일어난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목자님께서 안수 받기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앞으로 나갔다. 기도 중 목자님께서 머리위에 손을 얹으시며 내게 안수하시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고 목자님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고 난 혀를 조절할 수 없었다. 내 혀는 마치 시속 100마일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난 ” 이것이 성령을 받으면 느껴지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기도중 나는 하나님께서 그 귀한 영을 내게 내려주심을 너무나 감사드렸다. 난 정말로 기뻤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죄를 모두 씼어 주셨음을 느꼈다.

성령을 받은 후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나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나에게 왜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셨는지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전쟁의 시기에 있었다.

나의 의심을 교회의 어느 자매에게 말하자 “우리가 왜 그렇게 하셨냐고 물어볼 자격은 없어요” 라고 말했다. 선물을 받으면 우리는 그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다. 나는 자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왜냐고 묻기보다 그저 감사함으로 우리에게 내려주신 선물을 받으면 된다. 그래서 난 기도할 때 왜냐고 묻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령 주심을 감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기도하니 난 건강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고 우울증으로부터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나의 불면증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르웨이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다시 예전의 우울하고 희망없는 마음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 곳에서 영적 동지 없이 홀로 믿음을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구하는 마음의 평안을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한다.

밴쿠버에 돌아온지 8주째 되었을 때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에 굉장히 기뻤다.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했다.

이 말씀처럼 난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 그리고 내 삶에 부어주기 시작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구했다. 노르웨이로 오는 비행기에서 지금까지 나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한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주 남편은 내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서 이탈리아로 1주일 여행을 보내준다고 함께 가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버스 안에서 밤에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기로 마음 먹었다. 남편은 보통 저녁 식사 후 TV를 봐 난 성경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 날 밤 남편에게 성경을 읽겠냐고 물었지만 그는 TV를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TV를 켜자 케이블이 나가버렸다. 내가 한 시간 동안 성경 읽는 것을 끝내자 케이블 TV가 다시 들어왔다.

3개월간의 노르웨이 생활이 결국 5년 반이 되어버렸다. 노르웨이에서의 맨 마지막 해에는 많은 좋은 친구들과 좋은 직업을 갖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롭게 살 아파트를 마련해 주셨다. 아파트가 슈퍼마켓 바로 앞에 있어 더 이상 슈퍼마켓을 오가며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아도 되었다.

남편은 유럽이나 북 아프리카 중 한 지역으로 다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난 우리가 가게 될 지역에 참예수교회가 없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비록 노르웨이에서 나의 믿음이 좋아졌지만 난 새로운 곳에서 참예수교회 형제 자매들과 함께 믿음생활 하기를 원했다.

2008년 봄 우리가 밴쿠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오랫동안 기다리던 남편의 발령에 대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회사는 남편에게 미국 휴스턴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하여 제안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을 뿐 아니라 나의 마음과 생각과 걱정들, 그리고 내가 필요 했던 것 모두를 알아 주셨던 것이다. 휴스턴에서 하나님은 내게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셨다.

나는 휴스턴으로 이사갈 때 모든 것이 형통하게 해 달라고 금식하며 기도했 휴스턴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하나님께선 나에게 아주 좋은 일자리와 아파트도 주셨다. 나는 미국 휴스턴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렸다. 내가 참예수교회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고 교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주신 것이다! 나는 바울 사도가 로마교회에 쓴 서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3-5)

내가 만일 공황발작이나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밴쿠버에서의 나의 삶은 너무나 순조롭고 아무것도 신경쓸 것 없었기에 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고난으로 인하여 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셨다.

삶을 뒤돌아보면 내가 하나님께 등을 돌렸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 모두를 축복하셨지만 난 고난을 겪기 전까지 한번도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편안한 삶으로 축복받은 성도들에게 권고하고 싶다.항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건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러분의 편안한 삶도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에 고난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님만이 당신을 다시 들어 올려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할렐루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