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 준비하면서 함께 나눌 찬양이 생각이 났는데 가사 묵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제 이름은 곽이안입니다. 2001년 대만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50세였고, 어머니는 38세, 첫째 언니는 11살,  둘째 언니는 9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지어주셨고 저는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다른 아기들과 같이 여러 번 다친 적이 있어요. 자전거 타다가 벼랑에 떨어지거나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들이 쌓여서 자라났습니다.

간증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제일 중요한 게  공부, 진로 정하는 거죠.  저는 진로를 계획하면서 대중 매체와 관련된 전공과 외국어 관련된 전공,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때부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대충 매체 산업 시장이 비교적 넓고 인지도도 높아서 겸사겸사 한국 유학을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있는 대학교를 신청하려면 고등학교 성적, 한국어 능력 시험 성적, 다른 필수 조건 자격 요건들이 필요한데요.  고 3때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대만의 첫 번째 수능 시험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만은 수능 시험을 두 번 봐요. 입학은 9월이에요. 그래서 9월부터 1학기이고  2월부터는 2학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첫 번째 수능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해요. 사인을 받으러 저희 아버지한테 갔어요. 근데 저의 잘못이 뭐냐면 아버지한테 시험 포기 하겠다는 걸 미리 말씀 안 드렸거든요. 아버지는 엄청 반대하셨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저를 옹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저 때문에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거 보고  많이 놀랐어요. 왜냐면, 제가 18살까지 살면서 저희 부모님 싸우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많이 놀랐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결국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찬성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한국대학교  떨어지면 책임을 제가 지는 것을 조건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계기로 하나님께 제발 대학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책임을 잘 져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이때가 2020년이였어요.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한국으로 못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대만에서는  수능시험 두 번 본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두 번째 수능시험을 준비했습니다. 3개월 전부터 3년 동안 배웠던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2020년 7월에 두 번째 수능 시험을 봤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만의 타이난 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합격했어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있었고, 성균관대 입학을 했습니다. 합격했던 대만 예대는 혹시 몰라서 2년 동안 휴학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자퇴를 신청했어요.

한국에 와서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온라인 수업만 듣고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아버지의 바램과 내 자신도 경험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지원해서 작년에 일본을 가게 됐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학교와 교회에  다니면서 알바도 하면서 1년 동안 살았어요.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생활은  한국과 다른거 별로 없어요. 수업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잘 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수업은 많이 어려웠고 좋은 성적은 못 받은 것 같지만 학교생활은 잘  마쳤습니다. 수업 없는 날에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사장님은 대만을 무척 좋아하시고  알바하는 친구들은 한국 대학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는 사장님이랑  알바하는 친구들이 수다도 떨고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도쿄 교회로 갔는데 사실 도쿄 교회는 도쿄 안에 없어요. 도쿄를 서울시로 비유하자면 도쿄 교회는 약간 외곽인 경기도 쪽이라고 보면 돼요.  제가 살던 곳에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습니다. 이렇게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도쿄 교회는 엄청 크지는 않아요. 성도님들 70프로는 대만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고 나머지 30프로는 일본 사람입니다. 안식일 오전 오후 예배 이렇게 있고 아동부와 학생부 분반은 매주 있지만 대학부 사청부 분반은 격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맡은 사역은 없었지만 아기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 총회가 다른 지역에도 교회를 새로 세운다는 목표가 있어요. 한가지 예로 들면  도쿄 교회 출석 성도들 중에서 오오야마라는 지역 근처에서 살고 계신 성도님들이 꽤 많아요. 그 근처 성도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센터 같은 데에서  집회를 하고 예배드리고 있어서 오오야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건물을 이미 확보하고 헌금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다 보니 느낀점은 일본에서  전도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은 신토라는 고여 중 종교가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유명한 신사들은 다 그들의 종교를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기독교나 참예수교의 전파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참예수교회의 원활한 전도와 새 교회 헌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도님들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생활은 제가 과거에도 여행한 적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건들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이에요. 작년 7월 대만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그 뉴스는 어떤 건물 창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떨어져서 어떤 여자가  맞아서 죽었다는 뉴스였어요. 그 여자는 제 고등학교 친구에요.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날 알바하던 날이었어요.  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이 소식을 알게 되었고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어요. 제 친구가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실감이 안 나요. 멀리 있다보니 장례식도 가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슬픈 마음이 잘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8월 달에 여름방학 때 잠깐 대만에 갔었어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며칠 동안 계속 열이 나서 더위를 먹었나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비행기 타기  며칠 전에 친구랑 일본에서 불꽃 축제 갔었어요. 7월 말  더운 날에  친구랑 거의 10시간 동안 유카타를 입고 밖에서 다녔어요. 그것 때문에 더위를 먹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대만에 가서 약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고  작은 의원에서 받았던  해열제를 먹어도 안 떨어져서 어머니가 큰 병원 데려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제 증상을 말하고 혈액 검사를 해 보니까 간 수치가 이상하게 높았어요. 보통 간 수치는 원래 40~50 이하가 정상인데 제가 그때 약 500~600 나왔어요. 그래서 계속 열이 났던 거에요. 응급실로 가서 수액을 맞았고 감염성 단핵구증 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그날은 수액 맞고 열이 떨어져서 입원은 안 했어요. 근데 뒤에 며칠 동안 계속 열나고 해열제 먹고 또 열나고 해열제 먹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음식 보기만 해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모처럼 대만 가서 그리웠던  음식들을 못 먹었어요. 하루 종일 경구 영양식 한 캔씩 먹었어요. 그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저희 타이페이 교회 주보에 제 이름이 올라갔어요. 교회 성도님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1주일 지나서 나아졌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 구절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서 이렇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 7)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할렐루야!

아기였을때 가족사진

최근 가족사진 (왼쪽에서 4번째가 이안 자매)

청년부 암송대회에서 우수상 받는 모습

일본 교환학생으로 떠나기전 공항에서 목자님 내외분과 생활관 청년부와 함께

일본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 앞에서 엄마와 함께

일본 도쿄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일본 알바했던 카페에서 특별활동 

 

일본 오카야마


일본 도쿄 메구로천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