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드립니다.
오늘 제가 간증 드릴 내용은 신앙생활의 시작과 성령 체험, 그리고 가정과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하나님을 향한 첫 마음
저는 1남 7녀 중 막내로, 삼계 학정리라는 아주 깊은 산골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은 슈퍼마켓조차 없을 정도로 외지고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가려면 4~50분을 걸어가야 했고, 하루에 4번 운행되는 버스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무조건 걸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넷째 언니가 저에게 하나님에 대해 처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너를 지으신 분이야. 그리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해.”
그 말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면서도, 학교를 오가며 집 앞에 있던 미륵불 앞에 가서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그건 우상이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며 마음으로 기도드리면 돼.”
그때 처음으로 우상 숭배가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언니는 어머니를 전도했고, 다섯째와 여섯째 언니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교회에 가고 싶었지만, 교회가 너무 멀고 그 시절에는 토요일까지 학교에 가야 했기에 중학생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어머니의 신앙, 어린 마음에 남은 감동
어머니께서는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성령을 받으셨고, 새벽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잠결에 들리던 어머니의 기도소리는 마치 찬양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전도를 위해 농사일로 바쁜 친구 집에 가셔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으시고 기꺼이 일을 도와주신 뒤, 교회에 한 번 가 보자고 권하시곤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 일만으로도 벅찬데, 왜 남의 일까지 도우시는지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시기 전에도 늘 남을 잘 도우셨습니다. 물건을 팔러 동네까지 온 낯선 상인들이 식사 시간이 되면,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하며 상인들이 저희 집으로 모여들곤 했습니다. 비록 반찬은 소박했지만,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어머니는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언제나 기꺼이 사람들을 먹이고 재워주셨습니다.
또한, 동네까지 물건을 팔러 왔다가 하나도 팔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 돌아가는 상인들을 보시며 안타까워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종종 그들의 물건을 사 주시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엄마, 자꾸 사면 어떡해요?”라고 물으면, 어머니께서는 미소 지으며 제가 결혼할 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결혼할 때, 어머니는 20년이 넘은 게르마늄 냄비와 그릇을 꺼내 주셨습니다.
추억이 담긴 그 물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저 역시 20년 넘게 소중히 사용했습니다.
어느 날, 눈이 무릎까지 쌓여 차도 들어오지 못하던 겨울에도 어머니는 2시간 이상을 걸어 교회에 다녀오셨습니다.
그 모습이 어린 제게는 너무도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들이 집에 돌아와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교회에 다니지 않으시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교회 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때가 많았는데, 아버지는 일이 많아 교회에 갈 수 없다고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넷째 언니는 전날 미리 아버지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물어 두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그 일을 모두 마친 뒤 당당하게 교회에 가곤 했습니다. 그런 언니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교회가 점점 더 궁금해졌습니다.
3. 기다리던 첫 예배, 설레는 교회 입성
2년 후, 드디어 중학생이 되었고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엄마와 언니들 이름을 말하며 교회에 다녀도 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교회에 계시던 목자님은 저를 따뜻하게 반겨 주셨고, 그 순간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참예수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같은 반 친구들도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4. 성령을 사모한 기도
그 해 여름, 전주에서 열린 첫 학생부 영은회에 친구들이 다녀오고 성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폭우로 인해 교회에 갈 수 없어 참석하지 못했고, 매우 속상했습니다.
그 후로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성령을 주세요. 저도 하나님을 느끼고 싶어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걸을 때, 버스 안에서도, 잠들기 전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으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5. 성령의 충만한 체험 (1987.1.23)
1987.1.23. 삼계교회에서 열린 영은회 3일차 새벽 예배후 목자님께서 안수기도를 해주실 때, 온몸이 뜨거워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가슴 깊이 밀려와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나는 죄인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6. 성령 받은 후 달라진 삶
성령을 받은 후 제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감사와 기쁨이 넘쳤고, 아플 때마다 기도드리면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체험했습니다.
저는 원래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또 가장 친밀한 친구가 되어 주시니 저는 더 이상 외롭지도 않고 많은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께 담대함을 얻었고, 그로 인해 제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지 못할 만큼 하나님의 영이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며, 바르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19)
7. 전도와 기쁨의 열매
성령을 받은 후 친구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실에서 방언 기도를 하며 하나님을 자랑했고, 저를 이상하게 생각한 친구도 있고 신기해 하며 관심을 갖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느날 , 조윤정, 강미영이란 친구가 교회로 오기로 했는데 약속한 날 장로 교회로 가서 너무 속상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 담주에 강미영이란 친구가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며 먼저 교회에 오겠다고 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속상했던 마음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 그 친구는 주님의 은혜로 참예수교회에서 세례와 성령을 받고 여동생도 전도하고 믿음의 결혼을 하고 천안에서 지금까지도 주의 일에 힘쓰는 든든한 믿음의 동역자로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8. 세례의 감격 (1988.1.24)
1988.1.24 성령 받은 지 1년 후, 저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와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고 주변에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 하신 분들도 있으셨습니다
살얼음을 깨고 강물에서 세례를 받고 나오는데 그 순간 너무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머리에 고드름이 생길것 같았지만 금새 머리도 마르고 할머니와 저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더 건강해졌습니다
주님께서 내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심이 너무 감사하고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포근히 안아주시는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마가복음 16:16)
9. 하나님의 인도하심
행복한 중학교 3년의 시간을 삼계에서 보내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전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기도드린것은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로 인도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학교 오가는 길에 늘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 못했습니다
음악학원 하나 없이 자란 환경 속에서, 저는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화음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늘 간절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더 아름다운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고 싶어요.”
“이렇게 늘 부족한 찬양을 드리지만, 주님께서 받아주시니 너무 감사해요.”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저를 음악대학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부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음 기회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주님 안에서 찬양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그를 위대하시다 하리니…”
(시편 69:30)
10. 아버지의 변화 – 12년 기도의 응답
마지막으로 아버지에 대한 간증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어머니와 언니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매우 심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심지어 성경책을 마당에서 태우신 적도 있을 만큼 반감이 크셨습니다.
어머니가 교회에 다녀오실 때마다 언쟁과 갈등이 반복되었고,
저는 아직 신앙이 없던 시절이라, 늘 자상하고 따뜻하던 아버지를 그렇게 화나게 만드는 어머니와 언니들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소, 염소, 개, 닭, 밭농사, 논농사 과일 나무등 엄청난 일들을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도 하루가 부족할 정도였고,
그 힘든 일들 속에서 쌓인 피로와 고단함이 폭발할 때면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너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교회에서 심방이 오실 때면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어머니께는 “손님들 잘 대접해 드리라”며 따뜻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심방 오신 분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늘 손수 농사지은 쌀과 채소를 푸짐하게 실어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에 오시라는 권면에는 늘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고 난 후, 마음 깊은 곳에서 믿지 않는 가족, 특히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일만 하시다가 하나님을 모르고 생을 마치실까 두려웠고, 그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났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언니들도 함께 매일같이 아버지의 회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무려 12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간절한 기도를 기억하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첫 발걸음, 성령의 충만함
어느 날, 삼계교회에서 영은회를 앞두고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교회에 가보자고 권면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다음 날 아침,
깨끗이 목욕을 하시고 좋은 옷을 차려입으신 후,
“교회차를 부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새벽부터 직접 따신 야채들과 쌀을 잔뜩 챙기셔서 교회차에 실으시고 교회로 향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날 처음으로 교회에 가셔서 찬양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다 들을 수 없었지만,
첫 안수기도 중 성령을 충만히 받으셨고, 틀니가 빠져 나올 정도로 강력한 성령 충만의 은혜를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 예정되어 있던 세례식에도 참여하시어 ,정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이틀만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형제가 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주변 친구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시며 꾸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리고, 2017년 2월 1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평안히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 드렸던 12년의 눈물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7)
간증을 마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성도님들, 그리고 처음 오신 구도자님들께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 모든 간증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