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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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하나님을 찾은 서순애 모매님

발걸음을 인도하심

저는 1954년 김제에서 태어난 서순애입니다. 30여년동안 천안 구성동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참예수교회 천안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교회에 다니게된 동기와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신 것을 증거하고자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도록 이끄신 주님의 인도와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4살정도부터 부모님을 따라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머님부터 가진 처음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로 옮길줄은 한번도 생각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던 중 집안에 큰 시련이 찾아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을 때 오귀은 사모님을 통해 참예수교회를 알게되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영은회를 한다기에 자리만 채워달라는 사모님의 권유로 당시 5살짜리 손자인 성찬이를 데리고 구경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참예수교회에 갔을 때 그곳 교인들의 따뜻한 인사와 관심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다짐하기를 참예수교회는 영은회 할때만 가고 절대로 교회는 옮길 수 없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끌렸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손자 성찬이가 갑자기 이제는 참예수교회가 아니면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택시를 타고 다니던 교회를 가는데 성찬이가 기사님에게 참예수교회 쪽으로 가달라고 길까지 알려주며 소리질러 재촉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많이 복잡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 주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놀라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남

성찬이 때문에 참예수교회를 계속다니면서 마음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적은 성도들의 찬양이지만 듣고 있노라면 왠지모를 마음의 감동이 밀려들어 스스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전에 성경말씀도 나름대로 많이 통독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참예수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을 받아주신다면 이곳에서 몸을 담고 열심히 헌신하며 살겠노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지 오래지않아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도 방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마음에 큰 성령의 감동과 뜨거움이 느껴지며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주님 속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성경말씀대로 세례를 받고 온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심장 혈관이 막힘

성령을 받고 약 1년이 되었을 2012년 10월말쯤이었습니다. 심장에 부정맥 증세가 있어서 순청향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심장 한 곳이 완전히 심하게 막혀서 급하게 시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12월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저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며 날짜를 미루어 왔습니다. 이제 나는 죽어도 주님의 자녀, 살아도 주님의 자녀이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겠지 생각하며 주님께 맡기고 자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안수기도를 받고나면 늘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계속적인 증상과 가족들의 독촉등으로 시술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2013년 3월 27일 입원을 하여 다음날 시술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입원을 하니 저도 사람인지라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님들이 합심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목자님이 저녁 시간에 병문안을 오셔서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안수기도를 해주실 때 온 몸이 사정없이 떨리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끼며 감동 또 감동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수없는 벅찬 감격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남

다음날 오후 1시에 수술에 들어가는데 간호사가 곁에 있던 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이 시술은 위험하니 어머님께 잘 격려해주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 저 두렵지 않아요. 저의 생명이 다 되었다면 어쩔수없겠지만 조금더 넉넉하게 배려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하며 울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시 점검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시작되었습니다. 잠시동안 요란한 소리가 나고 마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담당 교수님이 급히 저를 깨웠습니다. “서순애 환자 눈을 떠보세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막혔던 혈관도 뚤렸고 예전보다 더 깨끗하고 강심장이 되었네요” 의사도 믿기지 않는듯 놀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보다고, 당신의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며 부모님께 잘 해드리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큰 기적을 체험함으로 제가 찾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주를 주관하시고 섬세하게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굳세게 했습니다. 저의 믿음을 정금처럼 연단하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실천하는 좋은 자녀로 남은 삶을 살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성찬이 뿐만아니라 제 며느리도 함께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날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아멘

현재 며느님 이원선자매, 손자 성찬이와 보미, 모두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서순애 자매님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의 사랑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만져주신 하나님

간증자 Pastor Vuthy (현 미국 참예수교회 목자)

나는 캄보디아에서 태어나 9살 때인 1981년에 미국에 왔다. 1975년에서 1979년까지 캄보디아에서는 대량학살이 있었다.

약 6백만명의 사람들 중 350만명이 그 기간에 죽음을 당했다. 매일같이 사람들은 배고픔과 처형으로 인하여 죽어갔다. 심지어 나의 친척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

난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신은 대체 어떠한 존재이길래 사람을 창조해 놓고 그냥 이렇게 죽게끔 놔두는 것인가? 이런 신이 어떻게 좋은 신이라 할 수 있는가? 신의 눈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미국에 온 뒤 나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매일 밤 똑같은 악몽이었다. 다섯 악령들이 나를 잡아 둘은 나의 손을 묶고, 둘은 나의 다리를 묶고, 나머지 한 영은 나의 목을 졸랐다.

나는 잠을 자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커 가면서 잠자는 것이 두려워 나는 두 세가지 일을 한꺼번에 했다.

이 시간 동안 난 너무나 두려웠고 외로웠다. 불교의 경전에는 이 세상이 온갖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쓰여 있었고 난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격동의 세월들

난 진리를 갈망했고 삶에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다. 난 스스로에게 ” 인생은 분명 이보다 더 나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라고 물었다.

대학에서 나는 춤추고 술 마시며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파티에 가 보았다. 그리고 ” 와! 정말 이런게 바로 행복이란 것이구나…! 맞지? ”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1학년과 2학년 때 데이트 하고 술 마시고 춤도 추며 시간을 보냈다. 파티에 가면 난 무대 위에 올라가 미친듯이 춤을 췄다. 사람들은 ” 버디 ! 버디 ! ” 라며 내 이름을 외쳐댔다.

그러나 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난 ” 이것이 행복의 길은 아니다… ” 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대학 2학년때엔 성적이 너무 안 좋아 학교에서 거의 퇴학을 당할 뻔했다.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을 때 쯤인 대학 3학년 때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 난 여전히 너무 외로웠다. 난 학교를 마치고 직업을 구하여 돈을 번다면 삶이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했어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진리를 찾아서

이 때에도 난 계속해서 진리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잠깐동안 나는 내가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던 크리스쳔 교회에 갔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셨고 그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그 교회를 떠났다.

그 후 어머니는 나를 그리스 정교회에 데리고 가셨고 그 곳에서 나는 두번째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그리스어로 설교했기 때문에 난 항상 졸았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두번째 교회에서도 나온 뒤 난 자신에게 말했다. ” 잊어버리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

난 그저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여직원 가운데 한 명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내 책상위에 있던 성경책을 발견하고는 함께 성경공부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성경공부에 참석하기로 했다. 성경공부가 끝날 때 쯤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방언 기도 하는 것을 보고 난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자매들 중 한 명은 분명히 날 위해서 기도했나보다. 왜냐면 다음날 성경공부에 가고 싶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성경 공부 모임에서 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느꼈다. 난 성경공부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예배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

난 우리가 비록 기도소에 모이긴 했어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곳에 함께 하신다고 느꼈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매일밤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한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이 실제로 이해되어졌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지시다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나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버디야 일어나 기도해라” 그래서 난 ” 네 ” 라고 대답하고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했다.

난 “할렐루야” 라고 말했고 곧 어떤 힘이 나에게 들어와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가 느껴져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고 나는 그 기쁨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도시간에 하나님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저질렀던 모든 죄악된 행위들을 깨닫게 해 주셨다.

기도를 하는 도중 하나님은 다시 나의 마음을 움직여 말씀하셨다. “베드로전서를 펴 보아라” 난 성경에 베드로전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일어나서 불을 켰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을 펴 보았다.

읽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3D 입체와 같이 살아서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말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아 나의 마음에 진정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영적 전투

몇 일 뒤 나는 다시 악몽을 꿨다. 난 2~3년간 악몽을 꾸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다섯 영들 이었고 이번엔 더욱 강하게 나의 목을 졸랐다. 난 숨을 쉴 수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 라고 말했고 그들은 바로 떠나갔다.

난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왜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밤에 악몽을 꾸는지를 물어봤다. 그들은 혹시 내가 집에 어떤 우상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나에겐 금으로 된 작은 부처의 머리모양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변기에 버리고 물까지 내렸다.

다음날 밤 나는 또 다른 악몽을 꾸었다. 이번에는 단 하나의 영이었다. 한 크고 검은 영이 나의 목을 졸랐고 난 그 영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른 것 같아 정말로 무서웠다.

그래도 난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 라고 외치며 오히려 그 영의 목을 졸랐다. 난 그 영을 침대에 엎어버렸고 그 영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은 온통 좀 먹었고 벌레들로 가득했다. 곧 그것이 사라졌다.

나는 다시 교회의 한 자매에게 왜 아직도 내가 악몽을 꾸는지 물어보았다. 무엇 때문에 계속 악몽을 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 뭔가 또 다른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매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집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난 집안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오래전에 내게 주셨던 또 하나의 부처 머리 우상을 찾게 되었다. 난 그것이 내 보석함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는 그것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아버지의 개종

내가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난 후 나는 아버지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73세이다. 아버지는 캄보디아에서 젊은 시절부터 주술을 시행하셨다.

그 때문에 예전부터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이거나 칼로 찔러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난 어릴적엔 이것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실제로는 믿지는 않았다.

1981년도에 우리 가족이 미국에 왔을 때 우리는 굉장히 심한 핍박을 받았다. 우리 집은 두 번이나 불에 탔다. 두 번째 불이 났을 때는 아버지가 밖에 나가 방화범들과 싸우셨다. 그들 중 한명이 아버지를 야구방망이로 때리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손으로 그것을 잡아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 후 난 아버지가 실제로 주술의 힘이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미국에 오신 뒤 처음으로 교회에 가셨을 때 아버지는 너무나 편찮으셔 거의 돌아가실 뻔했다. 아버지가 시행하는 주술의 “정령”은 만일 아버지가 계속 교회에 나간다면 아버지를 죽일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1981년부터 1999년까지 아버지는 교회를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셨다.

1999년 6월에 난 아버지와 낚시를 갔다. 그 때 나는 참예수교회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난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번이 아버지께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께 평생동안 무엇을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난 하나님을 만났어요. 아버지가 교회에 딱 다섯번만 나가보시길 원해요. 만일 다섯번 나오신 후에도 아무 느낌도 없으시다면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셔도 돼요.”

아버지는 “그래 아들아 내가 너를 위하여 그렇게 하마” 라고 말씀하시며 동의하셨다. 그 날 밤 조카가 아버지 방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소리쳤다. “할머니 할아버지, 누가 날 죽이려고 해요 !! “

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셨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 때 그것이 아버지의 정령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다음 날 그 사실을 내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버지께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명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하며 아버지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옛 것을 버리다

그 다음주 금요일 성경 공부시간에 아버지 방에 있는 모든 불교용품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들은 나에게 일단 기도하고 그것을 모두 다 치워 버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감히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그것을 다 치운단 말인가?

아버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며 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음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 뿐이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 주 토요일에 아버지는 교회에 나오셨다.

기도 후 난 아버지께 느낌이 어떻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춥고 몸이 떨린다고 했다. 난 그것은 좋은 반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아버지는 큰 부처 머리 형상의 목걸이에 목에 두르고 있었다.

난 아버지께 말했다. ” 바로 그것이 문제에요. 그 목걸이를 갖다 버리셔야 해요… 만일 아버지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면, 아버지 방안에 있는 모든 다른 것들도 다 갖다 버리셔야 해요… “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버지는 목걸이와 그 외 모든 불교용품들을 다 제거하셨고 매일 밤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새로운 생명

다음 안식일날 아버지는 교회에 나오셔서 무릎꿇고 다시 기도하셨다. 난 아버지에게 성령을 받으면 어떤 느낌인지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었다. 기도 후 아버지는 온 몸이 얼얼한 느낌이라고 하시며 그래도 너무나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난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런데 그 주, 아버지의 왼발이 굉장히 아프기 시작했고 심지어 걸을 수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교회로 가는 길에 아버지는 나에게 “만일 네가 믿는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께서 나의 발을 낫게 하시겠지… 기다려보자.” 라고 말씀하셨다. 난 “하나님 이제 아버지가 하나님께로 나아 오셨습니다” 라고 마음으로 말했다.

아버지는 말씀하는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발을 꼭 치료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 이었다. 1주일간 아버지는 다리가 아프셨다. 어느날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 밤에 자다가다 깨어나 울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어 나셨을 때 아버지는 어떤 힘을 발에서부터 무릎까지 임하는 것을 느끼셨고 후에 아버지는 걸을 수 있게 되셨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이야기 하셨고, 난 너무나 기뻤다.

교회 형제 자매들도 아버지를 위하여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다음 안식일 교회에 가는 길에 아버지는 “아들아 나도 너의 믿음을 따르겠다. 난 이미 너의 엄마에게 너의 믿음과 너의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고 하셨다.

난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따라 불교를 숭상하셨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까지도 안식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우리가 신실함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통하여 진실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영광과 찬송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출처: Manna 31호

우리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함(My Family’s Conversion to Christianity)

간증자 제임스 리(James Lee) / 말레이시아 수방 자야(Subang Jaya) 교회 / 안효상 역

도교를 따르다

28년전 우리 가족은 말레이시아 페락주의 작은 마을인 시티아완(Sitiawan)에서 살았다. 대부분의 중국 복주 이민자들은 시티아완(Sitiawan)으로 이주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도교를 믿었고 조상신을 숭배했다. 나의 어머니는 조상신을 모시는 제단에 매일 음식을 올려놓는 일을 절대 잊지 않으셨다. 어린 소년이었던 나는 조상신에게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 제단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난 우상이 바라보는 그 표정도 무서웠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벌을 받을 것이 무서워 우상을 숭배했다. 나는 예수라는 신이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는 오직 서양 사람들만을 위한 신이라고 생각했다.

1981년 6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데 갑자기 굉장히 어지러웠다고 한다. 어지러움이 너무 심해 자전거를 타기도 힘들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너무 피곤했고 입맛도 없으셨다. 즉시 병원에 가셨지만 의사도 어머니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열성적인 도교 신자여서 무당에게 상담 하려고 절에 가셨다. 무당은 40년전 우리집 앞에 있던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한 남자의 영혼이 어머니에게 들어갔다고 했다. 어머니가 집 앞에서 빨래를 말리고 있을 무렵 이 귀신이 어머니에게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어머니가 그의 혼 때문에 아프기 시작했다며 부적을 태워 물과 함께 마시라고 말하며 부적을 건네주었다. 그는 이것이 어머니의 몸 안에 들어간 귀신을 내 쫓을 수 있다고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는 무당의 말을 따라 조심스럽게 불에 태운 부적을 물에 타 어머니께 마시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더욱 괴로워하며 잠도 못 잤고 계속 오한에 시달렸다. 어머니의 가슴이 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이 때 어머니는 계속 하늘에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누구에게 부르짖는지는 몰랐지만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 마음으로 외쳤다고 한다. 3개월 동안이나 병이 계속되자 어머니는 집안 일 대부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설겆이나 마루닦기 등 7살 짜리 아이가 하기에는 힘든 집안 일들을 해야했다. 아버지는 타피오카 농장을 관리하셨기 때문에 굉장히 바쁘셔서 곧 우리는 할머니께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병에서 완전히 회복하다

외할머니는 바로 옆 마을인 수가이 시푸트(Sungai Siput)에 살고 계셨다. 외할머니댁에는 전화가 없어서 아버지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외할머니께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이모는 참예수교회의 성도였다. 이모가 어머니의 병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몇 분의 교회 집사님을 모셔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어도 괜찮겠냐고 물으셨다. 절망스러웠던 우리는 비록 예수님이 서양의 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별 방법이 없어 이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몇일 뒤 이모는 두 분의 집사님과 함께 집에 오셨다. 집사님은 어머니를 위해 약 30분간 기도하셨고 안수도 하셨다. 처음에 우리는 집사님들이 큰 소리로 방언기도 하는 것을 듣고는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그 분들과 함께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난 후 우리는 어머니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더 이상 창백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심지어 집사님들과 이모에게 점심을 드시고 가라고 권하셨다. 식사 때도 어머니는 음식을 다 드셨다. 그날 단 한번의 기도로 어머니는 완전히 낳으셨고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 오셨다.

참교회에서 세례받다

우리 가족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했고 시티완(Sitiawan)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캄풍 코(Kampung Koh) 참예수교회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여동생과 나는 곧 아동반 종교 교육학습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나는 성경 이야기와 어린이 찬송을 부르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약 3개월간의 예배 참석 후 어머니는 우리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셨다.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일어난 기적을 경험한 후 세례 받는 것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으셨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조상신을 숭배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생각하셨고 그럼으로써 부모님께 자식된 도리를 한다고 생각하셨다. 특히 친할머니께서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반대하셨기에 아버지는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을 망설이셨다.

이모는 싱가폴 참예수교회에서 연말에 열리는 영은회에 참석해 세례를 받는 것이 어떻냐고 하셨다. 우리는 아버지만 그냥 말레이시아에 남겨둔 채 싱가폴에서 열리는 3일간의 참예수교회 영은회로 향했다.

영은회에서 우리가 받을 세례식은 일요일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영은회 저녁에 어머니는 갑자기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날 밤 어머니는 꿈을 꾸셨다.

꿈 속에서 어머니는 불빛이 희미한 어느 방안에 계셨는데, 갑자기 토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토하려고 할 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는데 손에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어머니는 그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불빛쪽으로 걸어가셨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본 것은 몇 달 전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먹었던 부적이었다.

그 꿈 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시고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머니는 참예수교회가 참된 교회라는 믿음을 갖으셨다.

뜻밖에도 세례받기 바로 전 안식일에 어머니는 성령도 받으셨다. 성령을 받으실 때 느꼈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느껴졌다고 한다. 다음 날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나는 세례를 받았다. 난 비록 7살이었지만 세례를 받고 난 뒤 더 이상 죄 없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평안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다

세례를 받은 후 어머니의 병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배에 참석했다. 아버지는 친할머니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걱정하여 세례받기를 망설이셨지만 어머니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설득하셨다.

어머니는 참예수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참된 교회라고 말하며 이미 (아버지께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으니 세례 받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정말 삶을 모두 다 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매일 매일 어머니는 아버지를 전도하려고 힘썼다. 3년 후 아버지는 친할머니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세례 받으실 때 드디어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친척을 포함한 우리가족 모두가 다 모였을 때에는 아버지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기쁨이 조금 덜 했다.

나는 할머니께서 제삿상에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올린 후에야 우리의 식탁에 음식을 올리시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이 우리 넷이 먹을 수 있게 남겨졌다. 영혼의 날 (또는 묘를 다듬는 날 이라고도 한다 ) 삼촌과 이모는 부모님이 제사에 참석하지도 않는 불효자라며 부모님을 모욕했다. 나는 친척들에게 그런 모욕과 질타를 듣는 것이 굉장히 괴로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우리 가족은 친척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평안을 얻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요14:27)

몇년 후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에 걸리셨다.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가셨고 더 이상 혼자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9명 자녀들이 각각 3개월씩 돌아가며 할머니를 돌봐 드렸다. 그러나 한 번씩 할머니를 돌본 후 모두들 할머니를 돌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예수님께 인도한 것에 대하여 여러번 엄마를 욕하셨지만, 어머니는 마치 친어머니처럼 할머니를 정성스럽게 돌보셨다. 결국 어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4년간을 정성껏 돌보셨다. 삼촌들과 고모들은 엄마가 보여준 진정한 효도에 크게 감동하셨다. 그 후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핍박하지 않았다.

난 하나님께서 우리가족에게 어렵고 힘든 시간 중에도 힘과 평안을 주시며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내가 참교회 안에 있다는 것과 교회 안에서 자랐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진정한 축복이다. 천국에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내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의의 면류관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신분을 귀히 여기고 복음을 전하기를 소망한다.

할렐루야! 아멘.

믿음으로 전진하자 축복이 임하다

간증자 양점례

남편은 결혼 전부터 교회에 다녔고 저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저는 많은 제사를 지내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종가집 큰며느리로 시집을 와서도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제사는 어찌나 많은지 한 달에 2-3번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신앙적인 이유로 거기에 참석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시아버님과 자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침묵하고 시아버지는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이 교회에 가려고 하면 못 나가게 하면서 “혼자서만 교회 가실 겁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참았다가 그후에 나랑 같이 교회에 다니다 하늘 나라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생각해 주는 척 하면서 못 나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제가 집안 일을 하는 동안 성경책을 살짝 밖에 내놓고 기회를 봐서 몰래 교회에 갔습니다. 집에 있는 척 하다가는 모르는 사이에 나갔고, 새벽에도 자다가 깨어 보면 없었습니다. 새벽 기도하러 교회에 간 것입니다. 이렇게 둘이서 매일 숨바꼭질하다시피 했습니다.

아들의 귓병이 나음

그런데 시아버지가 워낙 강하게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한동안 남편이 교회를 못 나갔습니다. 이때 삼계교회 김디모데 목자님이 심방을 오셔서 예배를 보았는데 이것을 본 아버님이 “나 죽으러 간다”며 두루마기를 입고 나가셨습니다. 아무리 만류하고 붙들어도 소용이 없어서 저도 아버님 뒤를 따라 갔습니다. 홧술을 들고 오신 아버님은 남편에게 “식구들에게 돌아가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라”, “교회 안나가겠다고 해라” 하며 남편에게 요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녁 내내 강요를 해도 남편은 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속상해서 아버님 앞에서 대신 무릎 꿇고 빌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님이 고모님 댁에 제사를 지내고 오시는데 동네밖에 빨치산들이 사람을 산채로 묻었다는 개울가 근처에서 귀신을 만났다고 하시고, 그해 9월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낙심을 해서 교회를 몇 년간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 해에 아들을 낳았는데, 백일부터 귀가 아프기 시작해서 네 살이 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귀에 고름이 흘러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잠을 못 잘 정도로 한쪽 귀가 아팠다가 괜찮아지면 또 다른 쪽 귀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모르던 때니까 점을 치러 다녔는데, 점쟁이들은 다 제 아들이 병신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네 살이 되는 해에 남편이 “내가 교회도 못 나가 이래도 죄짓고 저래도 죄지으니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광수(큰아들) 데리고 나가세요. 만약 광수가 나으면 나도 나가고 안 나으면 나는 안나가겠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정월에 어떤 약을 가져다 귀에 발랐는데 그렇게도 낫지 않았던 아들의 귀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한번도 귓병을 앓은 적이 없습니다. 그전에도 온갖 약을 다 쓰고 백방으로 치료했는데도 낫지 않던 귀가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아이의 귓병이 나으면 저도 교회를 나간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남편의 의지가 너무 굳어서 제사 지내는 문제로 자꾸 다투고 충돌이 있기 때문에 ‘가정이 화목하려면 같은 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이 다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남편이 6대 종손이었기 때문에 굉장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종손이기 때문에 친척들이 제사 지내라고 준 전답이 있었는데, 10월 시제만 지내면 나머지 수확은 모두 우리 집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때 그것을 내놓으면 생활을 못할 만큼 우리 집안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온 집안이 예수를 믿기로 하면서 닥쳐온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그런데 논둑 가에 있는 공간에 콩을 심었는데, 평소에 너마지기에서 3-4말 나오던 콩이 한 가마나 나왔습니다. 그리고 벼농사도 그렇게 잘 될 수 없었고, 늦게 심은 채소도 잘 자랐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 믿어서 저렇게 잘 된다”고 말하기도 했고, 이웃에서도 저희를 보고 “저 집안 예수 믿고 복 받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지켜 주심

그리고 큰아들 광수가 자라면서 사고가 많이 났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장사를 하며 살아갈 때, 광수는 중학생이었는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친척들과 함께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가 와서 받았는데 두 사람은 병원으로 실려갈 정도로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광수는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내려왔는데도 하나도 안 다쳤습니다. 사람들이 사고 날 때는 괜찮은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지만 그후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광수에게 또 한번의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광수가 다리를 절길래 “너 왜 그러냐?”고 하니까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광수 괜찮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사정을 들어 봤더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었는데,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몸은 몸대로 공중에 떴다 내려왔답니다. 그런데도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주로 제가 믿음이 약해져 교회를 멀리할 때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여지없이 아들을 쳐서 제 마음을 바로 잡아 주셨던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찾은 우리집

간증자 서순애 자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1)

발걸음을 인도하심

저는 1954년 김제에서 태어난 서순애입니다. 30여년동안 천안 구성동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참예수교회 천안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교회에 다니게된 동기와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신 것을 증거하고자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도록 이끄신 주님의 인도와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4살정도부터 부모님을 따라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머님부터 가진 처음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로 옮길줄은 한번도 생각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던 중 집안에 큰 시련이 찾아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을 때 오귀은 사모님을 통해 참예수교회를 알게되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영은회를 한다기에 자리만 채워달라는 사모님의 권유로 당시 5살짜리 손자인 성찬이를 데리고 구경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참예수교회에 갔을 때 그곳 교인들의 따뜻한 인사와 관심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다짐하기를 참예수교회는 영은회 할때만 가고 절대로 교회는 옮길 수 없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끌렸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손자 성찬이가 갑자기 이제는 참예수교회가 아니면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택시를 타고 다니던 교회를 가는데 성찬이가 기사님에게 참예수교회 쪽으로 가달라고 길까지 알려주며 소리질러 재촉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많이 복잡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 주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놀라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남

성찬이 때문에 참예수교회를 계속다니면서 마음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적은 성도들의 찬양이지만 듣고 있노라면 왠지모를 마음의 감동이 밀려들어 스스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전에 성경말씀도 나름대로 많이 통독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참예수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을 받아주신다면 이곳에서 몸을 담고 열심히 헌신하며 살겠노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지 오래지않아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도 방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마음에 큰 성령의 감동과 뜨거움이 느껴지며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주님 속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성경말씀대로 세례를 받고 온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심장 혈관이 막힘

성령을 받고 약 1년이 되었을 2012년 10월말쯤이었습니다. 심장에 부정맥 증세가 있어서 순청향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심장 한 곳이 완전히 심하게 막혀서 급하게 시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12월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저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며 날짜를 미루어 왔습니다. 이제 나는 죽어도 주님의 자녀, 살아도 주님의 자녀이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겠지 생각하며 주님께 맡기고 자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안수기도를 받고나면 늘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계속적인 증상과 가족들의 독촉등으로 시술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2013년 3월 27일 입원을 하여 다음날 시술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입원을 하니 저도 사람인지라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님들이 합심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목자님이 저녁 시간에 병문안을 오셔서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안수기도를 해주실 때 온 몸이 사정없이 떨리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끼며 감동 또 감동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수없는 벅찬 감격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남

다음날 오후 1시에 수술에 들어가는데 간호사가 곁에 있던 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이 시술은 위험하니 어머님께 잘 격려해주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 저 두렵지 않아요. 저의 생명이 다 되었다면 어쩔수없겠지만 조금더 넉넉하게 배려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하며 울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시 점검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시작되었습니다. 잠시동안 요란한 소리가 나고 마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담당 교수님이 급히 저를 깨웠습니다. “서순애 환자 눈을 떠보세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막혔던 혈관도 뚤렸고 예전보다 더 깨끗하고 강심장이 되었네요” 의사도 믿기지 않는듯 놀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보다고, 당신의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며 부모님께 잘 해드리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큰 기적을 체험함으로 제가 찾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주를 주관하시고 섬세하게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굳세게 했습니다. 저의 믿음을 정금처럼 연단하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실천하는 좋은 자녀로 남은 삶을 살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성찬이 뿐만아니라 제 며느리도 함께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날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아멘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

간증자 천안교회 차정운 자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1)

할렐루야, 저를 이곳까지 인도하여 주신 나의 주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과정을 짧은 글이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되돌아보면 모든게 주님의 은혜요, 인도임을 생각해볼 때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가정에 닥친 큰 시련

저는 1953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정은 조상 때부터 절실한 불교집안이었습니다. 남편 또한 불교에 심취하여 승려증까지 받고 오로지 부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줄로만 알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1996년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이 부도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법당에 가서 무릎에 피가나도록 삼천배의 절까지 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애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드린 모든 정성이 헛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엄청난 부도와 가정파탄이 발생하였고 가족들은 모두 헤어져야만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억울한 누명까지 받게 되어 법적처벌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죄없는 어린 두 아들마저 그때부터 고아 아닌 고아의 생활을 해야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우수했던 자녀들이었지만 큰 시련으로 인하여 대학의 꿈마저 접어야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부모로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큰 추락사고를 당하여 심한 척추손상으로 하반신 장애가 되고 말았습니다.

삶을 포기하고자 함

정말 그때는 하늘도, 부처님도 다 소용없고 또한 세상 모든 것이 야속하여 날이 갈수록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습니다. 호전되지 않는 남편의 긴 투병생활을 간호하면서 결국 저의 몸과 마음조차 점점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이 생겨서 독한 약을 의존해야 했습니다. 또한 목과 허리에 협착증이 발생하였고, 퇴행성 관절 증세까지 나타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고통의 나날 속에서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남편께서 애절한 표정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수는 없으니 차라리 우리 가족 함께 죽음을 택하자고 말씀하시며 우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삶에대한 미련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죽음이 행복한 길이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남편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죽을 방법으로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계속 모아 가며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참예수교회를 찾음

그러던 중에 참예수교회 오귀은 사모님을 요양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주시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저에게 전도를 해주시고 또한 간절히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인도로 인하여 정말 갈급했던 제 마음에 마지막 기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죽음을 선택하느니 하나님이 계심을 체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 회당에 들어가 당시 윤득도 목자님께 안수를 받던 순간 무엇인지 모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호흡이 막히는 것 같았고, 정신도 혼미하고, 감당하기 힘든 오열이 속에서부터 터져나오더군요. 그런 체험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심과 제 자신이 큰 죄인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후로부터 안식일마다 너무나 참기 힘든 오열을 쏟아내며 하나님께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이 죄인을 그래도 사랑으로 용서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나같은 죄인도 결국은 버리지 않고 사랑과 용서로 받아주시더군요.

현재 천안교회를 시무하시는 전홍희 목자님이 천안교회로 처음 부임해 오셔서 드리는 안식일 예배시간에 앞에 나가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불덩이가 들어와 가슴에서 터져나가는 것같고 나도 모르게 방언을 하며 충만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세례를 받아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느껴짐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얻음

지금은 10년을 넘게 먹었던 우울증 약도 끊었습니다. 몸도 많이 건강해져서 삶의 희망이생겼습니다. 남편도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머지않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두 손자도 함께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간절하게 구하는 자에게는 꼭 기억하시고 결국 구원해 주심을 저는 체험했습니다. 주님이 구원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의 삶은 없었을 것입니다. 죄많은 저에게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저에게 하나님을 알게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모든 천안교회 성도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