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1-36)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4년 8월 31일(토) 안식일오전예배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오늘 말씀은 자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역사 이래로 사람들이 자유를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자유라는 것은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삶을 우리가 상상해 본다면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런 자유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은 참 자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참 자유가 필요하고 참 자유를 우리가 누려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자유’, ‘참으로 자유하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1.예수님 말씀에 거하여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라!
31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성경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라는 것에 대하여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유대인들에게 바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을 믿어도 참 제자가 아닐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 안에 거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거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거한다’는 ‘산다는 것’입니다. 즉 거주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 속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우리 삶이 ‘말씀을 따라가는 삶’ 이것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참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인정하신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라서 실제 살아가는 삶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이고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을 보시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 있고 죽어 있는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만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은혜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믿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난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까’라고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제자 그리고 ‘살아있는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겠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 말씀에 거하여 진리를 알아라!
본문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삶을 살 때 진리를 알게 된다는 말씀에 진리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적용한다면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아갈 때 누구를 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표면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냥 표면적으로 아는 경우가 있고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잘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런 것들을 다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우리가 알아갈 때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 말씀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갈 때 은혜와 평강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은혜와 평강이 더욱 더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을 우리가 알면 `아! 예수님이 참 좋으신 분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예수님을 우리가 더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믿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따라갑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면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더욱 더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고 예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써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더욱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통한 은혜와 평강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따라 행할 때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말씀에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알고 이런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더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말씀을 따라간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말씀을 다 따라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비록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하더라도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그런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고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따라 살아 가는게 쉬워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힘들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에 따라 사는 그런 삶을 살아갔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멍에라고 하는 건 뭐지요? 두 마리 소가 함께 뭔가 무거운 것을 지고 그걸 끌고 가는 것이 멍에지 않습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무거워 보여 저렇게 가게 되면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게 되면 그래서 말씀에 따라 행한 삶을 살게 되면 사실은 그렇게 무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실제로 그렇게 메다 보면 그렇게 무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멍에를 메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 봐야 어! 별로 어렵지 않네! 별로 무겁지 않네! 그리고 그런 것에서 뭔가 쉼을 그리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될 때 비로서 그 가운데서 마음의 쉼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이런 평안과 쉼은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진리’ 즉 예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바로 하나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거하고 따라가는 삶을 살 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말씀을 우리가 진짜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믿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대충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정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평안과 은혜를 주는 말씀인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정말로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해 봐야만 비로소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많은 하나님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이 아무리 들어도 이 말씀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그런 가운데에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깨닫게 되고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말씀을 따라서, 더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2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은 굉장히 유명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어떤 대학에서는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네 교명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굉장히 유명한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 있는 말씀을 인용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이 언제 이렇게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가운데 있을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혹은 그 말씀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어떤 자유를 말하는 걸까요?
3. 모든 사람은 죄의 종이라!
33절, 34절 입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니까 유대인들이 아니 우리가 누구에게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이렇게 말하느냐고 했을 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실 때는 그 말씀이 진짜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말씀이 진짜죠, 진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이 표현을 쓰신 것은 그만큼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죄를 짓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종이면 자유가 있습니까?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종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종이다’, ‘당신은 종입니다.’ ‘당신은 죄의 종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때 그것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 또는 바로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보면 그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라고 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이런 자유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죄로부터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그래서 로마서 7장에 보게 되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내가 정말 이런 죄 가운데서 자유하다면, 내가 죄를 짓고 싶지 않다면 죄를 안 지어야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어야지’라고 죄를 짓는게 아니라 내가 죄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의 종이고 죄에 대해서 자유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자유는 바로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라는 말씀을 보게 되면 우리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이렇게 되는 이유가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않고 악은 행하는 것, 내가 그 죄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속에 거하는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기 해당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결국 다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은 다시 말하면 노예입니다. 그럼 노예의 삶이 어떨까요? 실제 노예의 삶을 살아보진 않았지만 노예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노예의 삶 자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모든 삶이 다 죄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가 내가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매일 매일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상시는 모르다가 내가 이거 해야 되는데, 내가 선을 행해야 되는데 그렇게 할 때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원하는 어떤 선한 일, 하나님께서 보시기 기뻐하는 그런 일을 하려고 할 때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자유가 없이 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는 그 죄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의 종의 모습입니다.
그럼 그럴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괴롭지 않습니까? 평상시 우리가 어떤 선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 가운데서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정작 내가 선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고 내가 더 많은 선을 따라 행하는 하나님이 더 기뻐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죄의 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유하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때 일까요? “내 말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즉 예수님께서 혹은 말씀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진리가 그 죄 가운데 살아가는 그 사람을 여기서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죄에서 벗어나 선하게 살아가려는 우리 믿는 사람들, 더 하나님의 그런 뜻을 따라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셨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을 따라서 오늘 우리들은 죄로부터 자유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어디도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잘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럼 분명히 이 말씀대로 여러분 삶 속에서 진리가 여러분들을 그 가운데서 자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4. 생명의 성령의 법을 너희 안에 기록하라!
자 그러면 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왜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죄의 종이 되는 걸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죄에 지니까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은 진리가 죄를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혹은 하나님 말씀이죠, 그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절 말씀을 보면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 자기 마음에 두었다고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에 둘 때 그 말씀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죄의 소욕, 즉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죄의 소욕을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무엇으로 비유합니까? 칼, 검이라고 비유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말씀을 통해서 쪼개는 것입니다. 쪼개고 죽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기록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고, 죄의 소욕을 죽이고 결국은 죄를 이기게 해서 죄를 짓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기 때문에 어떤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한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날 해방한다는 것은 이 성령이 죄의 힘, 죄의 권세로 부터 우리를 이기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지지 않게 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거듭나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이 어떤 삶이라는 것이냐 하면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요한 8장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게될 때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런 가운데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실질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럴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시게 되서 우리가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고 그럴 때 성령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에스겔 11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스겔 11장 17절에서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찌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목요일 기도회 시간에 말씀드렸던 본문의 말씀인데요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올 때 18절 말씀을 보게되면 그들이 다시금 돌아와서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다 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다 제하여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우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고 우상을 섬기는 가운데 있을 때 결국은 그 우상숭배 때문에 이들이 나라가 망하게 되고,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에 사로잡혀 가서 그곳에서 종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종과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그곳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하시는데 나오게 하겠다는 건 바로 종에서 나오게 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신을, 새 영을 그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영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거기서 나오게 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나올 때 우상을 재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게 된 그들이 그곳에서 종으로, 노예의 삶을 살게 된 근본적 이유가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이고 그 우상을 제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이 우상을 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스스로는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우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힘이 너무나 크니까 상대적으로 그들은 너무나 힘이 약하다 보니까 그 우상숭배라고 하는 죄로부터 스스로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영을 주셔서 그들을 그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8장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성전으로 데리고 오십니다. 그리고 성전 뜰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에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담을 헐라고 하십니다. 담을 헐었더니 그 안에 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 안에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또 들어가서 보라고 말씀합니다. 들어가서 보니까 뭐가 보입니까? 각종 우상들이 즐비하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는 모습이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표면적으로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실제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 삶 가운데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거기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은 그 죄 가운데서 나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서 사로잡혀 있던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 성도들도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지만 실제로 내 깊은 곳에서 내가 섬기는 건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상을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우상이 뭐라는 것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하는데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계속해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나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명예든 혹은 내 자녀든, 좀 더 들어가서 보면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것, 근본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내 욕심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결국 내 욕심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씀드렸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지 않고 내 욕심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약속하신 것이냐면 바로 성령을 약속하신 것이고 근본적으로 이 죄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영적인 우상숭배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자유하도록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 백성 되도록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이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죄로부터 그리고 큰 유혹의 권세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성령이 언제 우리를 도우시고 언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게 하라라”는 말씀을 따라서 우리 하나님께 순종할 때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이 이 안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는 성도들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려고 하고, 순종하도록 힘쓰는 가운데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전 로마서 8장 1절, 2절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에 힘을 쓰면 힘을 쓸수록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말씀을 더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라 것입니다. 이걸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결국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이유입니다.
요한 8장 35절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보시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죄의 종 되고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거기에 매이게 되서 우리 성도들이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정말 노력하셔야 됩니다. 죄와 싸워야 됩니다. 물론 내 힘으로 된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입어야 되죠.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게 집니다. 그러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성령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면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5.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
35절을 보시면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종이 주인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까? 잠깐 잠깐 들어올 수 있지만 말 그대 그냥 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그 집에 계속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말씀은 아들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되어야만 그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주인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 집이 그 아들의 집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종은 그 주인의 집이지 이 종의 집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걸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게 뭘까요? 우리가 종으로 살아가면 영원히 하나님 집에 거하지못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 아니라 아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바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되고 그런 아들이 영원히 하나님 집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으로 살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받았지만 여기에 만족하시면 안됩니다. 실제 우리 삶이 하나님 아들의 삶,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 아들의 삶,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가는 그런 삶을 실적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아들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럴 때 말씀처럼 영원히 하나님이 집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6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한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오 오셨으니까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이런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고 또한 부족하다 보니 완전히 죄로부터 자유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죄 의 종된 삶에서는 벗어나고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삶, 바로 영원한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말씀이 각자에게 큰 깨달음이 되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죄로부터 자유하는 진정한 은혜와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