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제목: 더욱 간절히 주의하라 (히 2:1-4)
설교자 : 이요셉 목자
설교일 : 2024년 4월 27일 안식일 오전

 

본래 히브리서의 제목은 ‘히브리인들에게’ 이다. 히브리인은 ‘건너온 자들’이란 뜻이다. 최초로 히브리인이라 불린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강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3절의 ‘우리’는 신앙의 2세대를 말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이 전하는 것을 들은 이들이 ‘우리’인 것이다. 우리는 신앙의 몇 세대인가? 가정에서 몇 세대인가? 이 세대들이 신앙 안에서 건너는 자들이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넘어서야 하는 문제들이 있고, 넘어온 문제들도 있다. 어떤 문제에 걸려있으면 신앙이 성숙할 수 없다. 당시 히브리인들은 어떤 문제들을 넘어서야 했는가?

(1:4, 3:2) 이때의 성도들은 천사를 너무 크게 여겨서 숭배하려 했었다. (계 22:8-9) 요한 사도도 천사를 경배하려 했었다. 경배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히브리인들은 이런 신앙의 문제에서 넘어서지 못했다. 현재 우리는 이런 걸림돌은 없다. 오히려 지금 성도들은 천사를 우습게 보기도 한다.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우리도 넘어서야 할 문제들이 있다. 돈의 문제, 관계의 문제, 성공의 문제, 이성과 정욕의 문제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넘어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히브리인 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신앙의 2세대들로 보자면, 시대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도교회의 시작은 찬란했으나, 끝은 초라하였다. 신앙이 전파되었을 시기에 사단이 틈을 타고 있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로 이를 알 수 있다. 이 일은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했다. 교회가 이렇게 된 일이 그저 사도가 잘못했기 때문일까? 사실 교회가 부패한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던 일이다. 개개인 모두에게 넘어서야 하는 숙제가 있다.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더욱 간절히 주의해야 한다. 신앙에서 서서히 멀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은 왜 사도교회 같은 일이 없나? 우리가 대단하기 때문이 아니다. 계시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잡아 두셨고, 사도시대처럼 전면적으로 미혹하지 못하게 하셨다. 개인적으로 실족하는 일은 있으나, 전면적으로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 끝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시대는 이와 같다. 우리가 받은 것은 큰 구원이기에 이를 등한히 여기서는 안 된다. 신앙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22:5) 자신의 상업을 위해 하나님의 초대를 등한히 여기는 부분이 나온다. 우리가 얻은 구원의 은혜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생업의 중요성은 비교적 작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창세 전부터 준비하셨다. 내가 얻은 구원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언약을 맺었나? 하나님께서는 죄사함,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셨다. 이 언약을 맺는 것조차도 희귀한 일이다. 우리가 이 언약을 얼마나 귀하게 여겨야 합당할까? (갈 3:19)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율법을 가벼이 여겼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다. 천사들을 통해 맺은 이 율법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안다면, 하나님과 직접 맺은 언약은 얼마나 더 중요한지 알 수 있다. (3-4)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성령과 간증, 기적들을 생각해보라. 이는 틀리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