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과부의 두 렙돈
누가복음 21:1~4

옛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어리석고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해도, 그들은 늘 예수님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며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시며 다시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에수님을 걱정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에,

예수님을 감동시킨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그 여인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왜 과부를 칭찬하셨을까요?

오늘은 그 이유를 알아보고 우리 모두 그 모습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눅 21:1~2)

헌금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받은 은혜를 재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겁니다.

 

가난한 과부가 아주 적은 금액의 헌금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헌금하는 모습과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 금액이 크든 작든 하나님께선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옛날의 과부는 오늘날의 과부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의 과부는 절대로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입이 전혀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따라서 굉장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부가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돈의 단위인 렙돈은 ‘가장 적은 단위의 돈’ 입니다.

이 시대에는 한 렙돈을 절대로 헌금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작 작은 단위의 돈이기 때문에 헌금으로써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한 렙돈이 아닌, 두 렙돈을 헌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도 헌금을 하고, 가난한 과부도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가난한 과부가 많은 헌금을 하였다’ 고 말씀하셨다.

 

(3) 심지어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모든 사람들 보다도 많이 헌금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일반적인 생각을 해본다면 상식적이지 않은 말이다.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는 받은 은혜가 적기에 적은 금액을 헌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잘못 생각하면,

“아!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만 좋아 하시는 구나” 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적은 헌금을 칭찬 하셨을까?

 

지금의 가치로 환산해본다면, 이 가난한 과부는 약 1달러가 되지 않는 금액을 헌금한 것이다.

그런데 왜 칭찬을 받은 것일까?

 

(4) 예수님께선 두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다른이들은 풍족한 상황에서 헌금을 했고,

가난한 과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헌금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부가 생활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속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바로 그녀의 믿음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예수님께 복을 구하면 구했지 자신의 전부를 드릴 생각은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주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엘리사와 과부가 등장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공급이 중단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엘리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땅으로 가라” 그리고 엘리사는 그곳에서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그 과부에게 먹을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과부는 자기와 자기 아들이 먹을 것 밖에 남지 않았고,

그것을 먹고 이제 삶을 끝내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하나님을 믿고 자신에게 그 음식을 줄 것을 권했습니다.

과부는 믿음으로 그렇게 행동했고,

놀랍게도 그 과부와 자식들이 여러날을 먹을 음식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여러분은 시간이 남아서 교회에 오십니까? 돈이 남아서 하나님께 헌금을 하십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것이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속에서 중요한 시간을 내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을수록,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때로 적은 능력과, 적은 축복을 주실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예수님의 큰 뜻이 있는 것이며, 큰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때마다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정 하실 때, 세상에서 보는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자도 아니었고, 지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고,

능력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믿음”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셨을때 모든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자세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것을 예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부족한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당시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에게 큰 충격과 가르침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과부는 “전부”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일부”를 헌금했고, 과부는 “전부를” 헌금했습니다.

즉, 이것은 최선을 다했는가? 나의 온 마음을 하나님꼐 드렸는가? 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과부에게 2개의 동전은 하루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돈이었습니다.

자신의 하루, 자신의 삶을 전부 드린 것입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은 하나님 앞에 “일부” 를 바치고 있나요? 아니면 “전부”를 바치고 있나요?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돈과 명예에 집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가난한 과부처럼 예수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합니다.

“저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다니!, 저것은 낭비다” 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바라볼 때 결과를 봅니다.

잘 했는가? 결과물이 훌륭한가? 완벽했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예배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rizeF92a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