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나의 첫 신앙 지인 남원교회는 성 춘향과 이 도령의 이야기가 있는 광한루 옆을 흐르는 요천을 가로지른 다리 건너 동부 노암동이었다.

요천 옆 산에는 일제 강점기의 신사를 원불교에서 교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건물 앞 넓은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가끔 집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는 장로교회에 다니다 중3 때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남원교회에 발을 들였다.

당시 허야곱 목자님이 계셨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는 학생들을 보듬어 주시고 신앙인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시려고 애쓰셨는데-

영은 전도대회를 앞두고 새벽에 인근 산에서 모기에게 물려가며 기도했던 일, 여름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일박하며 기도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 특별한 놀 거리가 없는 우리 들은 학교에서 오면 교회로 모여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아동반 주보, 전도지 등을 등사기로 밀어 만들면서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순수한 마음이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다면 아마도 그때 형성되었기 때문이리라.

몇 년 후 야곱 목자님 후임으로 오신 이 빌립 목자님은 청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가까이하는 분이셨다.

70년대 말, 청년들이 주축이 된 신앙모임 ‘밑거름’ 회가 조직되고 활동 중 하나로 교회당 이전이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현재의 남원교회는 성도 한 분이 부지를 헌납하고 모든 성도의 건축헌금과 기도와 땀으로 세워졌다.

직장이나 학업으로 외지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휴일에 내려오면 인근 요천 냇가에서 교회 건축자재로 쓰일 돌들을 리어카로 실어 나르곤 했다.

모래는 신기하게도 교회 건축 터에서 나와 충당되었다.

1981년에 교회당에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랫동안 기다렸던 발령 소식을 받아 춘천으로 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듬해에 허애숙 자매와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꾸렸다.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예배에 참석할 수 없으니 안식일에도 가정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동부교회에서 우리 가정이 춘천을 떠나 수원으로 올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은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목자님들, 성도님들이 심방을 오셨다.

당시에는 교회에 차가 없어 청량리에서 기차를 이용해 오셨으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지금은 소천하신 오충도 목자님은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해 주셨고, 소천하신 한마리아 집사님은 항상 동행하는 수고를 하셨다.

우리 가정은 춘천에도 집회소가 세워지기를 소원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수원으로 오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진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함께 해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하셨다.

되돌아보면 나의 발이 미끄러져 수렁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붙잡아 주셨다.

하나님의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