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월 16()

설교 제목: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본문: 행20:13-16

설교자: 홍영석 목자님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행20:13-16)

“아전인수”.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자신의 이익 만을 위해 행동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로 ‘자기 논에 물 대기’, 즉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적 이득을 우선시하는 행동을 지칭한다. 이런 아전인수의 사람들은 ‘확증편향’의 사람들로 자기의 신념과 맞지 않는 정보는 차단하고 자신의 신념과 맞는 정보만 받아들여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한다. 신앙 안에서도 아전인수의 신앙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불 신앙과 믿음 없음을 합리화 하는데 사용하고, 욕망을 채우고 성공의 도구로 삼는 취사 선택하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나부터 아전인수의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늘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1.바울은 어떤 결정을 합니까?

3차 전도 여행의 귀환 여정에서 드로아에서 보낸 7일 중 마지막 밤 예배는 바울에게나 드로아교회성도들에게나 신앙의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일 것이다. 드로아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다음 행선지인 앗소로 떠나는 날 나머지 일행은 배를 타고 가지만 바울은 혼자 걸어간다. 이때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 하는 일정이니 심신이 지쳐있을 법도 하고 또한 전날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5시 까지의 강의는 노년기의 바울에게 체력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도 배를 타고 가는 것이 맞지만 왜 걸어 갔을까? 원문을 보면 ‘자기가 걸어가겠다고 규정하였다 ‘라고 하여 확고한 그의 결단을 볼 수 있다.

2.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드로아에서 앗소까지의 거리는 65km로  2-3일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이다.

(행20장22-23절)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성령이 인도하는 예루살렘은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지만 그 길을 가는 것 또한 바울 스스로 결정함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한번도 자신의 욕구에 따라 결정한 적이 없다. 오직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통해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게 함을 훈련 시키셨다. 안식일 지킨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증이다. 또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길이 없는 광야에서 길잡이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훈련을 시키셨다. 이 또한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받음으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길잡이가 되어 주시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그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육체의 욕구에 따라 살아 가며 문제가 생긴다. 과연 성령 받은 자의 증거는 무엇인가? 

(출40:36-37)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출애굽을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순종함을 배웠다. 우리 또한 성령에 매임바 되어 성령이 인도하는 길을 순종 하는 것, 성령이 원하는 길이라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참된 하나님 백성의 삶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육체의 소욕에 따라 선택하는 사람은 과연 하나님의 사람인가, 세상 사람인가? 

(갈5:16-17)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삶의 결과는 멸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3.바울은 어떤 결단을 합니까?

(행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사흘길을 홀로 걷고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으로 가야겠다 라는 결정을 내린다. 그는 어려운 일을 결정하기 위해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단단히 무장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는 것은 환난과 핍박이라고 성령이 얘기한다. 믿음은 해석이다. 동일한 사건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든다.

(행20: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성령을 통해 주신 메세지를 내 앞의 어려움을 피할 길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내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을 은혜라고 해석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전인수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다. 바울을 보며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다.

(마26:36-39)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잔을 피하고 싶은 육신의 마음이 있었지만 땀이 피가 되도록 홀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원하는 뜻으로 행하소서 라는 결론으로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결심하신다. 즉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의지적으로 벗어나 홀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성령이 인도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며 살아가야 한다. 은혜가 아닌 것을 은혜라고 고백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통해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삶이 되길 축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