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에 “말 무덤(言塚)”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생긴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약 500년 전 그 마을 문중 간에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원인은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낸 해결책이 미움, 원망, 비방의 말들을 사발에 담아 묻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후로 평화로워졌다고 합니다. 무덤 때문이 아니라 이후로 마을 사람들이 말조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미움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교훈입니다. 오늘 가르침을 통해 미움과 미움에서 나오는 말을 다스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미움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군가 미워하면 마음에서 그 사람을 밀쳐 냅니다. 반대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끌어옵니다. 그래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 형제를 마음에서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건 그럴 수도 있는 문제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요일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원인이고 그 결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것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지금 형제를 사랑하고 상태는 그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즉, 생명 안에 있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죠.
왜 세례 받은 사람은 형제 사랑할까요? 16절에서 보듯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사랑할 만한 사람을 골라서 목숨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죽으심을 알기 때문에 그로써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도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형제를 미워한다고 그 형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밀쳐내면 영적으로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를 일시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속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사망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늘 말씀으로 경고하십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세 사람이 나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 라가라 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 뒤로 갈수록 이들이 받는 벌이 갈수록 중해집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표현이야 어떻든 미워하는 마음을 그대로 두면 그에 대한 벌도 커집니다. 미움은 내가 알면서도 잘 멈춰지지 않습니다. 미움이라는 감정에 붙잡힌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책임에 붙잡힙니다.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미워하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무서운 또 하나의 미움이 교회를 분열시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게 와서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을 이간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귀에 필터가 잘 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말들은 교회 공동체에 틈이 생기게 합니다.
(민 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민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일로 인해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했습니다. ”비방“했다는 것은 건설적이고 건전한 책망이 아니라 미움이 담긴 말입니다. 이 말을 누구에게 했을까요? 2절 보면, 모세가 아닙니다. 전체 백성 또는 지도자들 앞에서 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독점적 권위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마침 트집을 잡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미움을 대중 앞에 드러냈습니다. 모세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7일간 진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미움은 문둥병과 같습니다. 공동체 안에 둘 수 없어 격리해야 합니다. 공동체에 틈이 생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움이 교회 안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나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서 기도 중에 누군가 나를 원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어떤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이 오해하거나 맘이 상해서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먼저 가서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예배보다 우리의 화목이 더 중요합니다. 나로 인해 그 형제가 죄를 지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는 많은 사람이 서로 미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갈수록 미워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미움이란 감정에 붙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만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숙해져야 합니다. 먼저 생각난 사람이 화해와 손을 내미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