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부자와 거지 나사로

[본문말씀] 16:19-31

[설교자] 정호민 목자님

[설교일] 2024. 11. 09. . 오전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인생,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두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이 두 삶은 굉장히 극적으로 대조됩니다. 바로 부자의 삶과 거지 나사로의 삶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비유로 들려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이 세상에서의 두 가지 삶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부자의 삶입니다. 19절 말씀을 보시면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자색 옷은 왕이나 귀족들만 입는 아주 비싼 옷이며 고운 베옷 역시 매우 비싸고 화려한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호화롭다’는 ‘화려하다, 사치스럽다’라는 의미이며, ‘연락하다’는 ‘기쁘다, 즐거워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보면 날마다 즐기며 호화스럽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부자는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건 무엇이든지 누리며 나를 위한 삶, 내 기쁨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부자와 달리 굉장히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거지여서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헌데를 앓고 있다고 나옵니다. ‘헌데’는 쉽게 말해 피부병을 앓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심지어는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다고 말합니다. 즉, 나사로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당했을 뿐만 아니라 개들에게까지 모욕당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부자의 삶과 거지 나사로의 삶, 두 삶 중에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아마 많은 사람이 부자의 삶을 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전해주시는 비유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세상을 떠난 후에 두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난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첫 번째로 나사로의 삶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22절을 보면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고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표현은 낙원을 의미하는 유대인의 관용어입니다. 따라서 나사로는 낙원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낙원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얻을 영생의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세상에서의 삶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23절을 보면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다고 합니다. 음부는 악한 자가 최후 심판이 있기까지 머물러 있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부자는 불꽃 가운데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자기에게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살짝 찍어 내 혀에 대어달라고 할 정도로 고통받습니다. 세상에서 거지인 나사로가 부자의 대문 앞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그 부스러기라도 먹어 배를 불리려고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와 거짓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사람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납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해 반드시 사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자와 같이 화려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더라도 결국 세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아무리 세상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삶이 반드시 죽음 이후에 화려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롬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마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그 행한 대로 심판받고, 그 심판의 결과는 영벌과 영생입니다. 공통점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사람은 낙원에 들어갑니다.

(눅 16:14)을 보시면, 오늘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오늘 비유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비유 속에 등장하는 사람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부자는 돈을 사랑하며 오직 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실천해야 하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로가 부자의 대문에 누워 있었지만, 부자는 그런 나사로에게는 관심도 없고 그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인 사랑조차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나사로는 병들고 가난하여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런 나사로가 의지하는 단 한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나사로라는 이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한 사람만 이름을 소개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이름이 나사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 도우신다’라는 의미입니다. 나사로는 세상에서 정말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소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나사로는 세상을 떠난 이후에 낙원에 들어갑니다.

성도님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만족하고 무엇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쩌면 나도 이 부자처럼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오직 나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마지막에 기억하시는 이름은 부자의 삶을 살아간 사람의 이름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간 그 한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설사 이 세상에서 정말 괴롭고 슬프고, 때로는 비참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도 나사로와 같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늘나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