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6일 (토) 오전예배
설교제목 : 이것까지 참으라
본문말씀 : 눅 22:47-53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 그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핍박자였다.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에게까지 호의를 베풀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마땅한 형벌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교훈을 주시고 계신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4)
(44-45) 먼저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기도하셨다. 십자가 고난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피할 수 있길,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길 기도하셨다. (42)
(47-48) 기도를 하자마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다.
그는 예수님이 처음 부르신 12제자로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자였다. 그러나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려고 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심해야 한다.
(고전 10:2) 마귀에게 틈을 주는 순간 넘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47) 체포하러 온 사람들을 본 제자들은 검으로 무장하였다.
검으로 치다 = 파라소(헬)
매우 살벌한 단어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호해야겠다는 충성심에 칼을 무장한 것이다. 그 중에 성격이 가장 급한 자는 베드로였다. (요 18;10)
말고는 왜 오른편 귀가 떨어졌을까? 말고는 검을 피하다가 귀가 떨어진 것이다. 만약 반대로 피했으면 목이 잘렸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요 18:11) 예수님은 검을 가진 자는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서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하나만 알아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하시던 말씀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어떻게 대처할지 알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늘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5:44)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있었다.
베드로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훼방꾼이 될 뻔 했다.
사실 칼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한다.
베드로의 충동적인 행동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눅 22:51)
(51) 이것까지 참으라
참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전 13장)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예수님께서 참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전도하는 과정에서 조롱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참아야 한다.
만약 참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참는 것에 영혼구원이 달려있다.
예수님께서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신 것은 사랑으로 했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업이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허망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참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참으셨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참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도 조심히 해야 한다. 참지 못하고 한 말이 누군가의 목을 베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참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