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제목]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히 11:20)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10월 8일(토) 안식일 예배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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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일생은 평범한 삶이었다. 특징적인 믿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삭에 대해서는 이 짧은 구절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삭은 믿음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삭의 일생 가운데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축복을 후손들에게 이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을 통해서 배워야 할 믿음이 이것이다. 후손을 믿음으로 축복했던 믿음이다. 이삭의 특별한 믿음 세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믿음이다

이삭이 자녀들을 축복한 것이 믿음이었는데,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이런 축복을 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서도 축복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삭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기에 자녀들을 믿음으로 축복할 수 있었는가? 이삭은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녀에게 축복할 수 없다. 이삭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는가?

“(창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계시다. 언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이다. 이삭은 자신의 죽음 직전에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말씀을 체험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하나님의 축복의 말이 이삭의 마음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되고,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이다. 즉, ‘씨’에 관한 말씀이다. 이는 이삭을 말한다. 이삭은 이 말씀을 알아들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그 말씀이 이삭에게 매우 강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게 된 것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복을 계승하였다.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복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이 자녀에게 축복한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아버지 이삭이 아들 야곱을 축복한 내용이 무엇인가? 그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말씀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이삭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인식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즉,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축복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복의 근원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복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4: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자기 존재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에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복음을 위해 자신있게 살았던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도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삭과 같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자녀들에게 축복하며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믿음으로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후손을 축복하는 일은 특정한 사람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복의 근원이고, 우리가 이것을 믿으며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이 이렇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싶은가? 자녀를 믿음으로 축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녀에게 전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권세이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권세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권세로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삭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었다.

 

둘째로, 이삭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 아래 자신의 뜻을 두는 순종의 믿음이었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이삭은 자기 뜻을 하나님 뜻 밑으로 두었다. 이삭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결단의 믿음이 있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누구나 에서가 장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에서가 먼저 축복받아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과 에서’로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삭이 리브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다. 리브가 뱃속의 아이가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지만 이삭은 둘째인 야곱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생각하지 않았다. 에서를 더 사랑했다.

“(창 25:28)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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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특별히 사랑하여 복주기 원했다. 자기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에서를 사랑하고 축복하기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에서를 축복하려하는 것을 리브가가 알고 야곱을 변장시켜 대신 축복받도록 종용했다. 이삭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다. 진짜 에서가 돌아오자 이삭은 이렇게 말했다.

“(창 27: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을 직역하면 큰 두려움으로 떨었다는 뜻이다. 이 ‘떤다’는 것은 ‘전율했다’는 의미이다. 이삭이 전율하며 떤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큰 뜻을 저버릴 뻔 했다는 것에 대한 전율이다. 아마도 이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을 수도 있다.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뜻에 순종한 것이다.

살면서 내 뜻과 하나님 뜻이 충돌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만약 하나님 뜻과 내 뜻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내 인생에서 이어주신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경을 넓혀주시리라는 믿음이었다. 이삭의 축복에는 이러한 믿음이 담겨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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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바라보던 일은 어떤 것인가? 장차 오는 일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받은 땅의 축복이 있었고, 자손에 대한 축복이 있었다. 그러나 이 축복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자신이 그 축복을 이어받았지만 이 축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잘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자녀를 축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자녀를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삭이 믿음의 사람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첫 임지에서 교회 성장에 대한 꿈이 있었으나, 현실 속에서 만나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러면 첫 소망을 다시 가질 수 있는가?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 우리 현실에도 불구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꿈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꿈은 현실 속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이기 때문이다.

“(학 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이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가?

“(학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보잘것없는 현실 앞에 있을지라도 이 꿈을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학 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학 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꿈을 지금도 계속 가져야 한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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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계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 교회를 통해 이루실 약속이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약속에 근거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꿈을 꾸어야 한다. 이 소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소망의 근거는 내게 있는 것도,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이삭은 그 믿음이 있었다. 이삭에게 있는 최고의 믿음은 장차 올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삭은 자기 신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뜻 앞에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았으며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내 뜻을 돌이켜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축복의 통로로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 이삭과 같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고 선포하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릍 통해 그 약속을 이루어가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 믿음 속에 그 축복을 담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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