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의 섭리(막 15:16~23)

일시: 2026년 2월 14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자: 김세한 목자

뜻하지 않은 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

우리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면 처음에는 뜻하지 않은 일처럼 보였던 사건들이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만남이나 운명적인 연결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믿는 자의 고백은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대학 시절 한 여학생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려 애썼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나는 장차 남편의 신앙을 따르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남편이 천주교인이면 천주교로, 불교인이면 절로, 기독교인이면 교회로 가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권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학생은 교회에 다니는 가정과 연결되어 결혼하게 되었고, 결국 교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과정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었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미 준비된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계획이었고,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선택

우리의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모태신앙으로 자라났고, 어떤 이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교회를 선택하여 들어왔습니다. 시작의 모양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극적인 회심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더 나아가 에베소서에서는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 속에 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이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 바로 구레네 시몬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관정에서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한 사람이 억지로 그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고, 자원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로마 군병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밤새 심문을 받고 채찍질과 조롱을 당하며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부터 수모와 고통이라는 또 다른 십자가를 지고 계셨습니다. 그 무거운 가로대를 대신 지게 된 사람이 바로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라는 표현 속에는 저항과 불쾌함이 담겨 있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피 묻은 십자가를 만졌으니 율법적으로 부정해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계획이 망가졌다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억지의 순간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단순히 구레네 시몬이라고 하지 않고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그의 아들들이 초대교회 안에서 알려진 인물이었다는 뜻입니다. 로마서에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구레네 시몬의 가정이 신앙 안으로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잠시 억지로 감당했던 십자가가 한 가정의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억지로의 신앙이 주는 세 가지 교훈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드러납니다. 첫째, 억지로의 신앙에도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언제나 자발적인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권면으로, 배우자의 요청으로, 친구의 인도로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상황에 끌려온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동적인 참여 속에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둘째, 억지로의 참여는 시간이 지나 기쁨으로 바뀝니다. 처음에는 부담이었고 불쾌였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그것은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길에 함께한 기억은 결코 수치가 아니라 은혜의 표지가 됩니다. 셋째, 억지로의 신앙에도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짧은 만남, 잠깐의 순종이 한 가정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던 자리 속의 하나님의 계획

이와 같은 원리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신앙과 멀리 지냈던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사업이 기울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인천으로 내려왔고, 다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의 기초도 부족했고 성경책도 없던 상태였지만 교무 임원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를 쓰시려면 성경책 한 권만 사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두고 간 지갑을 정직하게 돌려주었고, 감사의 표시로 받은 돈으로 가족 수에 맞게 성경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교무로서 교회 안의 갈등을 중재하고 화합을 이루는 데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이었고 억지처럼 느껴졌지만,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위기 속에 숨겨진 은혜

또 한 형제는 결혼을 통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고, 신앙도 아직 깊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경제 위기로 실직을 당했습니다.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을 단기신학에 참여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받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실직은 실패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신앙을 깊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억지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사례가 공통적으로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억지로 시작된 신앙일지라도, 억지로 맡은 직분일지라도, 억지로 맞이한 위기일지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억지의 참여는 한 가정의 구원으로 이어졌고, 감당할 수 없던 직분은 교회를 세우는 통로가 되었으며, 실직이라는 위기는 성령 체험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눈앞의 상황이 억지처럼 보일지라도, 그 너머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이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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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