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만 따뜻했던 대만신앙여행
하남교회 전*성 형제
할렐루야!
저는 약 35년간 참예수교인으로 살았으나 지난 20년 동안은 먹고사는 문제에 빠져서 신앙 생활에 소홀 했고, 1년 전부터 하남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대만 신앙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개인적 경험을 주관적 입장으로 서술한 글입니다.
교회에서 대만으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은퇴 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대만 신앙 여행”이었다.
여기서 나는 “신앙”이라는 단어를 간과하고 “여행”이라는 단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었다.
여행 스케줄 책자를 받았을 때 내가 이 여행의 목적성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두 군데 대만의 유명한 참예수교회를 방문하고 나머지는 멋진 곳에서 여유 있게 따듯한 나라를 경험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었다.
일정이 일주일 내내 거의 온통 교회 방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강남, 거제, 안동, 하남교회 합해서 28명의 성도들이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어린 아이들부터 70대 까지 다양한 나이 대의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여행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 상 돌이킬 수 없었다.
일정표를 찬찬히 들여다 보니 3일차에 아리산 일출보기와 푸예 온천리조트 방문, 4일차에 종이 상자 창의 파크 방문, 5일차에 야원 허브 팩토리와 잉거 도자기 박물관, 6일차에 타이페이 101 빌딩 방문 등의 관광지 투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교회로 이동 중 잠시 들리는 코스여서 이것들 중 어떤 것도 나의 관심을 끌지 않았지만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나의 신앙은 부끄럽게도 아직 많이 크지 못했다. 아직도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에 머물러있다.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때로 두려운 존재이기도, 때때로 감사와 사랑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 간의 교류도 많지 않아 관념적으로만 형제, 자매일 뿐 아직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나 삶을 살아오는 동안 겪어온 여러 가지 사건들이 그 당시에는 우연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과 섭리였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도 하나님이 이 여행을 통해 나에게 깨닫게 하실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이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5박 6일 하루에 2곳 씩 총 11개의 교회 방문 – 강행군이다.
1일차 – 1월 10일 금 8pm : ‘위엔린’교회 도착
비행기가 2시간 지연되어 예정보다 늦게 교회에 도착했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고, 통역을 통해 듣는 예배는 익숙치 않았다.
2~3곡 준비한 찬송을 했다.
대만의 겨울은 15도 ~ 20도 정도로 따듯하다고 한다. 그러나 감기 기운이 있었고, 잠자리는 추웠다.
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2일차 – 1월 11일 토 : ‘추커우’교회 – ‘러예’교회 방문
드디어 밝은 낮에 대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성도들은 친절하다.
원주민들의 모습은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 검은피부, 인도인과 비슷해 보인다.
아이들끼리는 벌써 친해져서 함께 어울려 농구도 하고 재미있게 지낸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거침없이 마음을 터 놓고 친해질 수 있는지 아이들이 존경스럽다.
1시간 30분정도 이동해서 고지대에 있는 ‘러예’교회에 도착했다.
날씨는 흐려졌고 고지대의 차가운 공기로 더 추웠다.
피곤함과 감기로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성스레 준비한 식사에 감동했다. 몇 시간 씩 바비큐를 준비해 주셨다.
그러나 역시 음식의 향이 거북했고 감기가 심해져서 식사 후 바로 잠들었다.
잠깐 씩 잠이 깨었을 때 늦은 시간까지 찬송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찬송 시간이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다고 한다. 조금 아쉽다.
3일차 – ‘시먼’교회 – ‘지아이’교회 방문 – 푸예온천 리조트에서 숙박
교회에서 교회로의 이동은 주로 2시간 정도가 걸렸고, 피곤함과 감기 때문에 주로 잠을 잤다.
이동하는 동안 보이는 대만의 풍경은 별로 색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로수들도 정리가 안되어서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방문하는 교회마다 벅찰 정도의 환대에 감사함을 느낀다.
교회의 위치와 규모와 그리고 나의 입맛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준비는 정성이 가득했다.
처음으로 교회가 아닌 리조트에서 가족 별로 방을 배정 받았다. 대만에 온지 만 3일 만에 따듯하게 샤워 할 수 있었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점점 성도들이 익숙해져 가고 함께 고생(?)을 하고 나서 인지 동지애가 생겼다.
식사할 때도 한국에서 각자 가져온 고추장, 김, 멸치 볶음 등을 함께 먹으며 즐거워진다.
4일차 – ‘화탄’교회 – 총회(북대중)교회 방문
화탄교회에서 중식을 하고 오후에 총회에 방문했다. 총회 건물은 7층이며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엄청 컸다. 총회가 주는 분위기는 다른 교회와 조금 달랐다. 성도들의 태도도 엄숙하고 진중해 보였다. 또한 모든 교회에서도 그랬지만 총회 성가대가 준비한 찬양은 완벽하고 아름다웠다.
20대에 호렙산성가대에서 찬송을 연습하고 준비하던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하다.
낯선 사람들 앞에 나가서 준비한 찬송을 할 때마다 느꼈던 어색함이 조금씩 사그러 들었고 모두 다 같이 멋진 찬송을 전달하려는 의지들이 점점 커져가는 듯하다.
잘 올라가지 않던 높은 음의 찬송도 주변 사람들의 열정 덕분인지 쉽게 올라가서 신나게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신기했다.
밤에 아내와 외출, 주변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믹스를 사려고 했는데 대만 커피 밖에 찾을 수 없었다. 작은 팩으로 사서 마셔봤는데 실망스러웠다. 교회에 기증.
대만에 방문하려면 꼭 한국에서 커피믹스를 준비해 가야 할 듯.
5일차 – ‘치딩’ 교회 – ‘싼시아’ 교회 방문
치딩 교회는 최근에 건축 해서 밝고 깨끗했다. 감기도 잦아들고 음식도 익숙해져서 오랜만에 식사를 제대로 한 것 같다. 여유 시간이 있어서 식사 후 몇 몇 신도들이 통역 어플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한 치딩 교회 청년(남성)이 피아노를 치며 찬송을 했는데 너무나 곱게 잘해서 감동을 주었고, 한 자매님이 사위 삼고 싶은 마음에 작업(?)을 걸었지만 따님의 거부로 실패.
5일 동안 매일 대만 성도들을 만나고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함께 식사를 해서 일까 그들이 이제 외국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교회를 떠날 때 마다 아쉬움이 조금씩 쌓인다.
도중에 들른 ‘야원 허브팩토리’는 실망스러웠다. 이렇다 할 허브도 없고, 꽃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규모도 크지 않았다. 그저 잠깐의 여유만이 그곳이 줄 수 있는 모두였다.
커피를 파는 곳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주문을 했지만, 다 마시지 못했다.
커피다운 커피를 마시고 싶다.
싼시아 교회에서 대만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저녁 식사 후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 해서 모두 외출했다. 기대한 만큼 멋지지 않았고, 거리의 냄새가 취두부 등 길거리 음식과 어우러져 불쾌했지만 우리나라 70년대와 비슷해서 그때의 추억을 돋게 하였다.
싼시아 교회는 유일하게 히터가 나와서 따듯했다. 그래서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6일차 – ‘딴수이’교회 – ‘빠떠우’교회 방문 – 귀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바람이 많이 분다.
딴수이 교회는 유럽 식의 건물로 유일하게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교회다.
한 청년이 3곡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려주었다. 교회에서 주로 피아노 연주만 듣다가 파이프 오르간으로 찬송을 들으니 웅장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성도는 700명 정도라 한다.
이렇게 크고 신도가 많은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우리 교회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러한 비교가 마음 한 켠 아쉬움으로 밀려온다.
교회에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 소개를 하고 찬양을 교류한다.
우리가 먼저 2곡 정도의 찬송을 하면 대만 교회 성도들이 답가를 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준비해간 찬송들이 익숙치 않았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나가서 찬송을 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긴장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나에게 용기를 준 것은 우리 아동반 어린이들(5명)의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거침없이 앞에 나가 율동과 찬송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답가로 들려주는 대만 성도들의 찬송은 듣기 좋았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로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되지 못했지만, 우리는 찬양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함께 찬송을 부르는 동안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한 울타리에 있음이 느껴진다.
회를 거듭할수록 우리의 찬송은 완벽해졌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서로 합을 맞춰볼 수도 없었던 한국 성도들의 찬송은 높은 천정을 가진 대만교회의 회당을 가득채웠고, 이를 바라보는 대만성도들의 얼굴에는 경이로운 표정이 드러나곤 했다.
(그저 내 느낌일 수도)
15일 늦은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서로의 짐을 찾아주고 공항을 나서면서
우리는 처음 출발할 때의 낯섬과 어색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뭇 헤어짐이 아쉬운 동지애가 묻어 나고 있었다.
서로의 교회를 방문하기를 기약하면서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이 지나 이 글을 쓰는 동안 지난 여행의 과정에서 나에게 주된 이미지로
무엇이 남아있을까 생각해본다.
신기한 것은 분명 여러 가지 힘든 점이 있었지만 힘들었던 느낌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대만 성도들의 선한 모습, 진심 어린 환대, 정성껏 준비해 주신 음식들…
그 중에서도 서로 선물처럼 나누던 찬송…
떠올려지는 따뜻한 느낌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빠듯한 일정 속에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했지만 강남, 거제, 안동, 하남교회의 성도님들의 얼굴이 명확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순간 순간 빛나던 기쁨의 표정들이.
이번 여행은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시작했지만 감사함과 따듯함으로 끝난 듯하다.
며칠 간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하면서 평상시에 느끼지 못했던 형제 자매라는 단단한 연결 고리가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완성되어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전보다 지금 나는 그들과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하나님이 계획한 것이 그것이었을까?
덧붙여 이번 여행을 이끌어 주셨던 유요한 목자님과 여행 내내 통역과 안내를 맡아서 애쓰셨던 최*선 자매, 그리고 대만여행을 총괄, 인솔해 주셨던 대만 임직원 목자님과 형제 자매님들의 수고와 봉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