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함과 은혜를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무엇을 간증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기도할 때 마다 간증에 대해 고민하며 하나님께 가장 감사함을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 믿음을 잃기 쉬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저를지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참예수교회를 다녔고, 만 6살에 부모님과 함께 한국을 떠나 참예수교회가 없는 사이판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성인이 된 후 한국에 돌아와서 혼자 교회를 오면 저를 기억하시는 어른들이나, 해외에 오래 살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성도 분들로부터 제일 먼저 듣는 질문이 “사이판에는 참예수교회가 있어요?” 이었습니다. 없다고 대답하면 오랜 세월 교회를 떠나 있었는데도 안식일을 지키러 혼자 교회를 찾아오니 믿음이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제가 느끼기에는 하나님께서 제가 하나님을 감히 떠날 수 없도록 제 일생에 걸쳐 그 존재감을 드러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을 간 후 1,2 학년은 공립학교를 다녔지만 제가 믿음으로부터 멀어질까 걱정한 어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크리스천 학교를 다니도록 하였습니다. 특정 교파나 교단의 소속이 아닌 오로지 사회공헌과 선교에 목적을 둔 교회 학교였으며 3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주 4일 성경 수업을 통해 암기와 문제 풀기를 비롯하여 시험을 치고 그에 따른 성적을 받았습니다. 성경 수업이 없는 일주일에 한번은 학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학교의 수업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릴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뒤 부활하였다는 것과, 순종과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비록 학교에는 참예수교회의 진리는 없었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똑같았습니다.
여름이나 겨울방학에는 외할머니나 친할머니가 번갈아 오셔서 가정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양가 할머니들과 화, 금, 토 예배 시간을 통해 안식일, 세례 그리고 성령에 대한 참예수교회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사실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을 안 한 적도 많고, 할머니가 인도하는 가정 예배 말씀은 너무 어려워 많이 졸기도 했고, 할머니가 피곤하여서 화요일 예배를 기도만 하고 끝내면 속으로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핵심만은 기억에 잘 남아 지금의 양분이 된 것 같아, 그 또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것은, 사이판에서는 한인들을 위해 현지 한인회 소식을 전하는 한국방송을 송출하였는데, 저녁식사 시간쯤 되면 어린이 만화방송을 틀어줬습니다. 달려라 하니와 같은 방송을 틀어줄 때도 있었지만, 그 중에는 성경 만화 방송도 틀어주어서 자연스럽게 성경의 굵직한 인물과 사건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 사람의 성장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학교, 친구들, 가족, 심지어 TV 방송까지, 그렇게나 기독교 친화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10대에 무슨 생각을 하든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연관을 지었고, 믿음에 대해 성찰할 시간도 많았고, 식전 기도와 같은 습관도 자연스럽게 길렀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커서 보니 제게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고, 제게는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성경 말씀이 세상에서는 일반상식이 아니고, 죄를 지어도 죄라는 인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몹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저도 모르게 온실 속의 화초 마냥 하나님의 말씀에 둘러싸여, 참예수교회의 진리는 몰라도 하나님을 알고 존경하는 사람들 사이에 두신 것입니다.
물론 진리와 멀어지도록 사탄의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학생 때 저와 가장 친했던 두 친구들은 모두 장로교회를 다녔는데, 월요일만 되면 치사하게 둘이서만 아는 교회 활동 이야기를 나누며 그러면서 저에게도 같이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고 제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세 명으로 이루어진 친구 사이에서 저 혼자 겉돌게 되는 것이 속상하여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어머니에게 교회 다니면 안 되냐고 몇 번씩이나 허락을 구했습니다. 어차피 사이판에는 참예수교회는 없는데 안식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하나님을 믿는 교회니까 다니면 좋지 않겠느냐고 조르기도 하고 설득도 해보았으나, 그럴 때 마다 어머니께서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어머니께서 안식일의 진리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셔서 주일 교회를 다니도록 하였다면, 어쩌면 저는 오늘 날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2006년도 여름방학에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안식일에는 대방교회를 참석했는데, 오전 예배를 마친 후 당일에 대학부 영은회가 있다며 참여 권유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경 공부시간 또는 예배 시간을 따로 갖지 않고 기분 내킬 때만 혼자 성경을 읽거나 짧은 기도로만 신앙생활을 이어왔던 저에게는 한국에 와있을 때 최대한 말씀을 많이 듣고 싶었기에 참석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의 저는 낯가림도 훨씬 심하고 말주변도 없어서, 원래라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그런 합숙 단체 활동은 부담스러워 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그 영은회를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제 마음은 그런 개인적인 감정들보다도 한국에 온 김에 할 수 있는 교회 활동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첫 전국 영은회를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사이판에서는 참예수교회를 아는 사람은 저와 어머니뿐이었는데, 전국에서 모인 참예수교회의 젊은 청년들을 보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중요하니까 어색한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예배에 집중하자는 각오로 왔는데, 제 예상과는 달리 또래 청년들은 저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었고, 뭘 하든 함께 똘똘 뭉쳐 다니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때 까지도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는데, 기도할 때 보니 저 빼고 모두 이미 성령을 받은 것 같아서 위축되기도 하고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이렇게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성령 충만하여 열성적으로 방언 기도를 하니 은혜도 많이 받았는데, 지금 이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지 않으면 왠지 앞으로도 영영 못 받을 것 같은 초조함과 불안함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영은회 마지막 날, 마지막 기도시간에 저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저에게 “성령을 받아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 성령을 받아야한다”고 말버릇처럼 말씀 하셔서 영은회가 끝나고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해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로도 사이판에서, 그리고 한국에 오고 나서도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가장 감사한 것은 당연한 줄 알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믿음에서 멀어질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와 가르침이 당연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심이 가장 감사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 일상에서 하나님을 떠올리는 것이 제게 숨 쉬듯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혼란한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을 삼을 수 있었고, 사사로운 감정이나 일상에서 제 중심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마다 불안해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 치곤 아직 실천하는 면에서 부족함이 많지만 방황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고 이렇게 긴 외국 생활 끝에 참예수교회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와 원주교회에서 안식일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간증을 마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