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나를 붙드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제가 살아온 지난날을 한 번 다시 돌아봤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서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자칫 탈선했을 수도 있었던 순간, 큰 사고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순간, 큰 사건에 휘말릴 뻔했던 순간 등 많은 일들 속에서 늘 저를 지켜주시고 내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하셔서 결국은 바른길로 인도하시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사람을 보내셔서 때로는 상황에서 제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향한 의심과 첫 만남

제가 참예수교회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려 보면 누가 순진한 우리 엄마를 꼬드겨서 이런 토요일에 예배한다는 이단 교회에 빠뜨린 건지 내가 가서 엄마를 빼내서 저들로부터 구해야겠다는 큰 사명감으로 호기롭게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난리 한 번 칠 작정으로 딱 갔는데 예배 전에 찬양을 부르는데 아는 곡도 있고 모르는 곡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곡 두 곡을 부르다 보니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냥 주르륵 흐느끼는 정도가 아니고 울컥울컥 올라오는 주체 못 할 울음이 나서 결국 예배 끝나고 인사할 때까지 눈물이 그렇게 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울음이 나왔고 집에까지 가서도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그동안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구나.’ 나도 하나님 믿어야 하는데 생각이 들면서 그날 집에서 엄마한테 사람들이 좋아 보이고, 교회의 규모도 작지도 크지도 않은 것 같아 사람으로 상처받을 일이 크게 없을 것 같으니 계속 교회에 다니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엄마는 저에게 같이 다니자고 하시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펑펑 울고 왔는데 내가 거기를 창피해서 어떻게 다시 가냐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다른 교회 다닐 테니까 엄마만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첫째를 임신했을 무렵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지냈던 행복감 따뜻함 갖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안양에 다닐만한 교회가 없을까 계속 물색하는데 이 교회는 이래서 싫고 저 교회는 저래서 싫고 이러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데 마음 한편에는 하루라도 빨리 교회를 다녀야 할 것 같고 더 늦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신앙을 향한 갈망과 그럼에도 교회로 내딛지 않은 발걸음

그러다가 제가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예수교회 안양교회를 나오기로 결심하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여기도 교회니까 같은 하나님인데 뭐 기도 방식이 좀 다를 뿐이고 성경, 찬송 다 똑같은데 뭐하면서 일단 한번 다녀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도 다니고 말씀 묵상과 기도로 첫째 아이의 태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왕절개 수술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무탈하게 첫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첫째를 낳고 육아하면서 잠을 못 자니까 교회, 말씀, 기도 이런 게 도무지 생각이 안 나고 틈만 나면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 가자는 엄마 말에도 지금 잘 시간이 없어서 살이 빠지고 머리도 빠지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금은 못 간다고 거절하면서도 또 다른 마음 한편에서는 그래도 가야 하는데 우리 첫째를 위해서라도 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 때는 교회에 가고, 또 그런 마음이 약해지면 다음에 가자며 핑계를 대고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회의 참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것을 사단이 당연히 가만두지 않아서 제가 교회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진리에 대해 갈급함은 크게 생기지 않았고 교회를 지금처럼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니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렸습니다.

그렇게 또 참 진리를 알고자 하지 않고 저의 먹고사는 일에 더 집중하면서 안식일에 일하기 때문에 직업상 어쩔 수 없으니 이런 형편을 하나님도 아시고 이해하실 거로 생각하며 일단 내가 먹고살고 나서 하나님인지 이렇게 생각하며 교회를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세례를 앞둔 고민, 그리고 육체적 고난 속에서의 깨달음

다른 또 말씀드리고 싶은 간증은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소중한 생각 없이 교회를 드문드문 나오기를 반복하다가 저와 첫째 아이가 세례를 받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막상 세례식이 다가오자, 마음이 갈팡질팡하며 받지 말까? 하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없음을 알고 사단이 집요하게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전도 임원이 제가 세례식 전날 장염 때문에 계속 설사를 해서 세례를 못 받겠으니, 다음에 받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세례를 받기 싫어 댄 핑계였으니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세례식에 갔고 그때는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많이 모이면 안 된다고 소수 인원만 참석해서 첫째랑 저랑 세례를 받았고 이제는 세례도 받았으니, 교회만 잘 다니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례를 받고서도 교회가 가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회 자매님들이 연락해 와도 잘 받지 않고 문자도 다 지나치고 엄마가 교회 가자고 하면 소리를 지르며 몸이 힘들어 죽겠는데 교회만 가자고 한다며 큰소리치며 급기야 대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이한테도 정리 정돈하라고 짜증을 내고 애꿎은 청소를 시키며 네 살짜리 그 어린아이에게도 이유 없이 화풀이했습니다. 한 번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많은 아이 중 첫째 아이가 장난감 갖고 놀고 나면 정리를 한다면서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 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난 날 밤에 엄청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지금 4살짜리 어린 딸한테 내 몸이 힘들다는 이유를 대며 엄청 짜증을 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너무 앞서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오면 제가 세례를 받을 무렵이 둘째를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신 적으로 피곤하고 아프고 그러다 보니까 자꾸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만 더욱 커졌습니다. 이렇게 힘들 거면 내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것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방금까지 신랑하고 실컷 웃으면서 떠들다가도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고 우울한 생각만 나면서 괴로운 마음만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둘째를 갖고는 말씀 한 구절 안 보고 하나님과 교회를 외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이 없고 딱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교회 한 자매님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고는 했습니다. 이것저것 잔뜩 먹을 거를 사 들고 찾아오면 예상치 못한 방문인데도 싫지 않고 내심 무척 반가웠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기쁘고 반가워서 왜 더 빨리 안 와 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교회를 가야 하고 연결되는 게 그렇게 싫어서 엄마한테 소리까지 질렀는데 교회에서 찾아온 그 자매님은 매우 반갑고 그 마음에 교회도 가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지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둘째가 원래 출산 예정일이 1월이었는데 담당 의사가 둘째 아이고 임신성 당뇨도 있고 하니 좀 빨리 출산 날짜를 잡자고 해서 12월 28일로 잡았는데 12월 초에 검진 날 갔더니 애가 2주 만에 너무 컸다고 했고 다음 주 또 검진 날이 되어 갔더니 이번에는 양수가 또 갑자기 너무 늘었다고 28일은 너무 늦어서 안 되겠다고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자고 그래서 22일 아침에 수술했는데 둘째가 거대아로 태어나고 자가 호흡이 없어서 중환자실로 바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엄마는 당시 담임 목자이셨던 목자님께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도 마취에서 깨자마자 비몽사몽인 중에도 목자님께 전화해 달라고 해서 앞뒤의 설명도 없이 우리 아기가 숨을 안 쉰다고 하며 꼭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목자님께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바로 성도님들께 연락해서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우리 안양교회 성도님들 기도 덕분에 우리 둘째가 살게 된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음날 바로 둘째의 호흡은 돌아왔으나 그래도 계속 둘째의 상태를 관찰해야 해서 중환자실에 더 있어야 했고 이후에도 황달이 또 빨리 와서 계속 중환자실에 더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만 조리원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때 진짜 마음껏 기도하고 말씀도 보고 설교 동영상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새벽에 깼는데 약간의 어떤 묘한 이끌림 같은 마음이 들어서 창문을 열었습니다. 눈이 많이 온 한겨울이었는데도 너무 상쾌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데 춥지도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성령의 체험과 신앙의 변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도하고 싶어졌고 기도하는데 할렐루야 소리가 자꾸 발음이 꼬여서 다른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면서 더 큰소리로 힘을 줘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 뒤로 계속 그랬는데 나중에 목자님께서 성령 받은 것 확인해 주셨는데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성령을 받았던 것 같은데 제가 인지를 못 해서 늦게 알게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니까 목자님께서 영은회 때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하시면서 남은 영은회를 다 나오시라 했는데 그때는 신랑이 교회 가는 거를 싫어해서 눈치를 살피느라 가고 싶어도 결국 못 가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 후로는 교회에 가려고 본격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간혹 집안일을 핑계 대고 안 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막상 안 가는 때면 왠지 불안한 생각과 마음이 들고 결국은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둘째의 세례와 또 한 번의 은혜, 그리고 감사

그러다가 둘째가 세례는 좀 일찍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은 불현듯 들었는데 조금 더 커서 받으면 물에 대한 공포심도 더 생길 것 같고 남편의 반대도 여전히 신경도 쓰여서 둘째의 세례 날짜를 잡아놓고 또 갈팡질팡한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앞둔 한 일주일 전부터 둘째가 갑자기 열이 났는데 처음 병원에서는 모세기관지염이라고 했는데 항생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고 하기를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약이 떨어져서 또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 의심된다고 큰 병원 가라고 했습니다. 마침 시간이 늦어서 중앙대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코로나 검사하고 대기하다가 진료를 받았는데 그때 둘째가 눈도 충혈이 있었는데 충혈 정도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걸 본 담당 의사가 가와사키병이 의심된다고 입원해서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 어린아이한테 가와사키병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들으니 덜컥 겁도 나고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입원 절차 진행하는데 항생제 수액을 놓는 과정에서 혈관을 찾는다고 한바탕 난리 치고 정신 차리고 보니 시간이 상당히 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기로 한 약속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세례를 못 받겠다고 전도 임원께 연락드렸더니 조금 있다가 목자님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습니다. 자매님 입원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세례를 받으려고 할 때는 사단의 방해가 크게 오기 때문에 입원하는 것을 잘 기도해 보시고 웬만하면 일요일에 세례를 받게 하자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확신에 찬 말투여서 바로 저도 순순히 알겠다고 신랑이랑 상의해 본다고 했더니 목자님께서 이거는 자매님께서 굳게 믿으셔야 하고 세례를 받게 해야 한다고 더 힘주어 말씀하셔서 저도 급기야는 “네 알겠습니다.”하고 덜컥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신랑한테 뭐라고 얘기하지? 하나님 나 어떻게요?’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신랑한테 전화했더니 신랑이 그사이 가와사키병에 대해 검색해 본 후였습니다. 눈이 충혈되는 증상과 고열 말고도 혀가 딸기 혀가 되어야 하는 등등 몇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야 진단하는 건데 이 두 가지 증상으로 진단하는 것은 성급한 거 아니냐고 입원하지 말고 오라고 먼저 얘기하였습니다. 부리나케 입원시키라고 한 사람이 바로 집으로 돌아오라고 마음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신랑과 통화하고 바로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지금 맞고 있는 주사까지만 맞고 집에 갈 테니 약을 처방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열이 또 오를 수 있다고 걱정하길래 그러면 그때 다시 오겠다고 하고 바로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안식일이라 교회에 가니 성도님들이 모두 둘째의 상태를 걱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믿음으로 이겨내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다행히 둘째가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고 잘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심 안심이 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식 당일 일어났는데 눈은 더 빨갛지만, 다행히 고열도 없고 컨디션도 좋아 보였습니다. 신랑한테는 세례받는다고 차마 말을 못 하고 삼막사로 교회에서 놀러 간다고 말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아픈 애를 데리고 나간다고 한 소리 하니까 다시 너무 걱정됐습니다. 그럼에도 세례식 장소로 가면서 속으로 제발 별일 없이 더 아프지만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와 첫째랑 세례받을 때와는 달리 이날은 많은 성도님들이 참석했고 물가로 내려가는데 든든한 느낌이 들며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례식 있으면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성도님의 축복 속에 둘째 아이가 무사히 세례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열도 안 나고 눈의 충혈도 서서히 없어졌습니다. 일주일 뒤에 폐렴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더니 상태가 다 괜찮다고 약만 일주일 더 먹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신앙의 동역자로 세워진 첫째 아이

그때부터는 저는 본격적으로 참 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자신의 품으로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시며 살 수 있게 다 계획해 주셨는데 제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며 외면했는데도 끝까지 저를 붙들어 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우 감사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직 신랑이 참 진리를 모르다 보니 저 혼자서 신앙생활을 헤쳐 나가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우리 첫째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신 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북부 연합 찬양 한마당 때 동행이란 찬양을 배우고 연습하느라 매일 들으면서 자는데 첫째가 노래가 참 좋다며 자꾸 눈물이 나오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감수성이 참 풍부하다며 그만 울고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기도하고 잔다고 해서 같이 기도하는데 할렐루야로 기도하던 아이가 기도 소리가 이상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따라 하는 거냐며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그래도 성도님들에게 물었더니 아이들이 방언 소리를 따라 하면서 놀고 그런다고 해서 그래서 못 하게 하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그리고 첫 구역예배에 참석했는데 그날 목자님께서 기도 중에 움직이시는 것을 느꼈고 구역예배도 안수기도 해주시나보다 기다리고 있는데 저한테는 안 오시고 다시 자리로 가시더니 기도가 끝이 났습니다. 그러더니 예배가 끝나고 첫째가 기도를 언제부터 이렇게 했는지 웃으시면서 물으시는데 성령을 받았다고 선언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에이 설마 이렇게 어린데….’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참예수교회 최연소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시니 제가 성령을 받았을 때보다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신랑 몰래 힘들게 신앙생활을 이어 갔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또 붙여주시는 것 같아 무척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버티고 버티며 신앙의 길을 걷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하나님은 순간마다 저를 깨닫게 하시고 결국 하나님 품 안으로 인도하셨고 현재까지 많은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참예수교회 참 진리를 처음 저희 엄마에게 전해주신 김윤* 자매님께 감사드리며 또 우리 한나회 자매님들 저를 포기하지 않아서 또한 너무 감사합니다. 담임 목자님 또한 저와 제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으로 권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참예수교회 안양교회 성도님들 항상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받은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면서 우리 모두 구원의 열매를 맺는 때까지 힘써 살아가기를 늘 소망하며 간증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