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참예수교회로 개종하다
서도교회 고 장달순(영명: 장안나) 집사님이 저희 친정 작은 어머니에요. 저를 임신했을때까지 장로교회를 다니셨고 제가 태어나서 몇 살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예수교회로 개종을 하셨어요. 제가 살던 곳이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라는 곳인데 작은 어머니 계실때 교회가 세워졌어요. 돌아가신 허야곱 장로님이 시댁 작은 아버지인데 작은 어머니랑 교회에서 심방 다니셨던 것이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제가 7세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도 아마 교회를 다니셨을 거에요.
저의 친언니는 고 권묘남씨인데 어릴 때 저랑 같이 믿었어요. 교회 다니다 보니 제사라든지 그런 걸 몰랐어요. 항상 어머니가 교회 가시니까 어려서부터 열심히 다녔고 엄마 옆에 앉아서 예배 드렸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
그때는 영은회를 1년에 한 번씩 한게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3년에 한 번씩 했어요. 전체 영은회였어요. 14살 영은회때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 받고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았어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일찍 성령을 받아서 다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저는 그날 한꺼번에 다 받았어요. 세례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늦게 받았어요.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 간 언니집에서 많이 지냈거든요. 형부가 군대 가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영은회 참석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제 친구 황남옥 자매라고 지금 강남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그날 같이 세례를 받았어요. 성령도 같이 받고요. 세례를 주신 목자님은 누군지 생각이 안나요.
교회 앞에 물이 있는데 세례받기가 좋았어요.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고 방언이 나오더라고요. 그당시 우리 또래들이 상당히 많았었어요. 지금 서도교회 이정을 장로님이 나보다 한 살 어려요. 같이 컸어요. 근데 저보다 성령을 미리 받았어요. 세례식 끝나고 교회로 와서 다 함께 또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그치지를 않았어요. 방언이 나오면서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구요.
성령 받은 후 황남옥이라는 친구집이 노봉 교회에서 오리쯤 되는데 밤에 그 친구랑 산길을 둘이 손잡고 찬송 부르면서 가고 새벽에 또 기도하러 노봉 교회까지 오고 그랬어요. 어떤 찬송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그 친구랑 그렇게 찬송부르며 새벽기도하러 갔던 일이 생각이 나요. 교회 다니면 성경도 순서대로 노래로 배우잖아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그걸 외워놓으니까 성경 찾기가 좀 쉬웠어요
♣작은어머니에 대한 추억
제 기억으로는 노봉교회(서도교회 전신)에는 저희 작은어머니가 유필순 집사님과 사택에서 살고 우리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우리 집에 가마솥이 있으니까 교인들 밥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어요.
저희 작은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우리 강아지 강아지!” 그랬어요. 제가 성령 받았을 때도 “아이고 내 강아지 성령 받았네!”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지요. 작은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자주 함께 잤어요. 교회 와서 자면 새벽에 작은 어머니가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다 큰 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시며 “내 새끼 일어나! 일어나! 기도하자. 엄마랑 기도하자.” 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난 저는 작은 어머니처럼 기도를 오래 하진 못했어요. 작은어머니는 하루 2시간씩 아침에 일어나시면 성령으로 기도하셔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내일이 토요일이면 오늘 금요일 아침에 밥 먹고 나면 토요일 오전 예배 끝날 때까지 금식기도를 했어요. 그때는 오전 예배만 드렸잖아요.
금식 기도도 작은어머니 따라서 하게 되는 거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 오래 하시고 기도 시작하기 전에 “너는 조금만 하고 가서 자라.” 그러면 저는 “그래 나 조금만 하고 잘게!” 작은엄마는 보통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셔서 저를 깨워요. 교회에 괘종시계가 딩딩 치잖아요. 작은 어머니는 6시 될 때까지 기도하셔요. 그러고 기도 끝나면 “성경 읽자! 몇구절만 성경 읽자.” 그러면 또 같이 성경 읽고…
저는 작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했어요. 작은 어머니가 자손이 없어요. 그래서 조카딸들한테 엄청 잘했어요. 저는 오빠 하나에 딸 다섯으로 6남매에요. 근데 작은 어머니가 다 그렇게 예뻐했어요. 어딜 다녀 오시면 신발도 사다 주시고 옷도 사다 주시고 ….
작은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작은엄마는 34세쯤 혼자 되셨대요. 과부로 사시면서 조카들에게 사랑을 쏟으시고 교회 열심히 봉사하신 분이죠. 세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불쌍하지요. 시집 와서 남편 여의고 자식도 하나 없고 그렇게 혼자 사셨잖아요. 나중에 돌아가실 무렵에는 저희오빠집에 와서 지내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영석이와 영근이가 오빠의 자녀들이에요. 제 조카들도 지금 교회를 안나오고 있어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이사하다
15살 되던 11월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오빠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장동으로 이사했어요. 고 고정희 모친이 저희 오빠의 아내이니까 올케에요. 옛날에는 차편도 불편하니까 마장동에서 철둑가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죠. 제가 저희 어머니 손잡고 모시고 다녔어요. 어머니가 앞을 잘 못보셨어요. 살다가 중간에 눈이 어두워지셨어요. 그런데 안식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못 간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마다 못 갔던 것 같아요. 그무렵 큰언니가 퇴계원으로 이사를 왔어요. 저는 언니랑 나이 차이가 10년이에요. 저는 조카들을 돌봐주면서 언니 집에서 지냈어요. 조카들이 어리니까 언니도 저도 교회를 자주 못갔어요. 회기동 교회 정은진 목자님이 가끔 심방을 오셨어요. 그리고 교회를 한 번씩 갈때는 조카를 업고 다녔어요. 이강분 자매 동생 이명숙 조카를 포대기로 업고 갔어요. 어떨때는 오빠네 집에서 하루 저녁 자고 토요일 날 명숙이를 업고 교회를 갔어요.
♣믿음결혼을 하다
시골에 형부가 계시는데 저에게 시골 가서 뭐 좀 배우라고 내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산지 얼마 안되어 작은 어머니한테로 가서 작은집에 가서 지냈어요. 우리집 아저씨가 총각때 객지 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고 제대후 집으로 좀 와 있어서 전주교회를 다녔나봐요. 그때 작은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는데, 어느날 대구를 갔는데 대구 기차 역전에서 우리 집 아저씨를 알아 봤대요. 어려서 봤으니까 얼굴이 남아있으니 알아본 거예요. 그때 인연이 되어 저를 소개시켜 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믿음 결혼을 하게 된 거지요. 결혼식은 서도교회에서 했어요. 김디모데 목자님이 주례를 보셨어요. 그 당시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무 생각 없었던거 같아요. 신혼 살림은 전주에서 시작했어요.
♣시댁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마음 내려놓기
남편의 어머니는 계모였고 남편과 잦은 갈등이 있었어요. 시어머니랑 남편이 싸우는걸 보면 저는 자리를 피했어요.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한동안 소화를 못시켰어요.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 왔어요. 오빠네 집으로 와서 3개월 살았을 거예요. 방을 얻어서 나갈 때까지 교회를 못나갔어요. 항상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은 있었지만 결혼후 현실적인 생활이 신앙생활을 가로막았어요.
저는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라고 늘 생활신조처럼 생각하고 살았어요. 교회를 다닐때도 ‘이 사람 때문에 나 교회 못 나가.’ 그런 마음이 전혀 없고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잘해야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해도 내가 안 들은 것 같이 생각하면 되지.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렇게 말을 해?’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남하고 말다툼을 해 본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배려를 해서 그런지, 받아들여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왜 그래?”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우리 집 아저씨와도 싸울 일이 있으면 말을 안했어요.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 안하고 그걸 속으로 다 삭히느라 그런지 소화가 어느 날부터 안 되고 밥을 먹으면 체해서 구토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증상이 없어졌어요. 속이 편해졌어요. 자녀들이 다 장성하고 신경 쓸일이 적어지니 괜찮아진거 같아요. 교회는 결혼하고 3년 정도 못나간거 같아요.
♣자녀를 낳다
제가 딸을 22살에 낳았는데 딸 낳기 전쯤 다시 교회를 나갔어요. 두 달된 딸을 세례를 바쳤어요. 제가 교회를 어려서 다녔던 믿음이 있어서인지 교회를 항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살았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딸을 정월 초에 낳았는데 낳은지 20일쯤 되어서 세례를 바쳤어요. 굉장히 작은 갓난아기 핏덩어리를 세례를 바쳤어요. 세례바치고 아기를 안고 물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둘째 용환이는 조금 커서 3살쯤 돼서 세례 받았어요. 셋째 정환이가 못 받았어요. 정환이를 29세에 낳았는데 그때 살기는 어렵지는 않았었는데 무슨일 때문인지 교회를 좀 못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으면 세례 바쳤을 거에요.
큰딸 은순이가 시집을 갔는데 시댁이 워낙 불교가 심하니까 신앙생활을 못했어요. 어릴 때 중학교 다닐 때까지 교회 다녔을 거에요. 혜영 사모님이랑 잘 알아요. 같이 교회 다녔어요. 제가 집에서 조금씩 부업을 했는데 셋이 학교 다니니까, 직장을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못나간거 같아요.
♣신앙을 회복하다
몸은 못가도 마음은 항상 교회에 있었어요. 부천에 살았는데 양봉도 목자님이 거기까지 심방을 와주셨어요. 두내외분이 오셨어요. 그날 직장 쉬는 날 오셨더라고요. 심방 예배때 405장을 부르는데 마음이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이 찬양은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되었어요. 교회를 갈 수가 없었는데 제 쉬는 날 심방 오시고 전화를 자주 해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 신앙이 점차 회복되어 간 거 같아요.
목자님이 전화도 자주 하시고 어려서부터 우리 작은어머니 밑에서 커서 믿음이 있어서인지, 항상 ‘내가 교회를 가야지, 나 교회 안 나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살기 어렵고 입는것도 여의치 않아서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던거 같아요. 언니가 교회를 더 잘 다니면서 교회 소식을 저한테 많이 전해줬어요. 언니는 저보다 열심히 더 다니셨어요.
♣친정어머니에 대한 추억
저의 성격은 친정어머니 닮은거 같아요. 모든 걸 다 삭히고 참고 인내했던거 같아요. 어머니랑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는 옛날 얘기 같은 걸 잘해 주셨어요. 누가 집에 뭐 팔러 오면 어머니는우리 올케한테 “그 아지매~ 물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여서 보내라. 내 집에 온 사람 그냥 보내는 거 아니다.” 하셨어요. 밥 꼭 챙겨주라 하고 시골에 살 때도 장사하러 오는 사람 있으면 우리 집에 다 재워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다 자고 갈 줄 알았어요.
♣서도교회 나들이
한 3년 전쯤에 동부교회에서 목자님과 한나반, 다니엘반이 서도교회, 남원교회, 전주교회로 나들이 간적 있었는데 한가지 후회되는게 있더라고요. 옛날 서도교회를 뜯었더라고요. (우리 작은어머니 당시 지은 노봉교회) 옛날에는 흙집이었잖아요. 그게 흙집인데 그걸 다 뜯었더라고요. 건물 지을때 상량 올린다고 그러잖아요. 가운데 나무에 교회 지은 년도가 아마 써 있었을텐데 나무 뜯은 걸 쌓아놨는데 상량을 보고 왔더라면 몇 년도에 지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쉬움이 좀 남더라고요. 그때는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후회되더라고요.
♣나의 신앙생활
예전에는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안 가면 마음이 답답하고 교회 안가서 어떡하나? 다음에 교회가면 기도를 뭐라고 하나? 이런 마음이 있었으나 요즘은 몸이 아프니까 안수기도를 좀 받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안수기도 받으면 눈물이 너무 나와서 받을 수가 없어요. 눈물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나와요. 눈물 나오면 좀 힘드니까, 마음이 울컥하고 기도하면 눈물이 나고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러는 거겠지! 믿음이 강하면 그러지 않겠지!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요.
제가 어릴 때 외운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 구절이 항상 머릿속에 담아있어요. 어렸을 때는 한 4~5번만 외우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그래요. 올해 내가 81살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그냥 많이 안 아프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어요. 많이 아프면 애들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고 저녁에 잘 때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제가 7개월을 교회를 못 나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유튜브로 예배는 드렸어요. 아들이 아이패드를 사주어서 저녁에는 유튜브로 예배하고 있답니다.
♣큰딸 은순이
제가 요즘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음이 제대로 안 걸어 지거든요. 예전에는 계단 80개는 손도 안 잡고 올라갔는데 지금 1개도 못 올라가요. 제가 딸과 함께 걷다가 딸에게 “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나 이렇게 니 손잡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냐.” 그랬더니 딸이 “엄마 희망사항이지 뭐.” 하길래 “그렇게 말하지마! 그렇게 될른지 몰라. 그렇게 얘기해야지.” 했어요. 우리 딸도 참예수교회에서 학생때까지 신앙생활 했기때문에 항상 마음은 있더라고요. 참예수교회가 참 좋았는데…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큰아들 용환이
가끔 용환이한테 “어떻게 내가 죽을 때 유언을 해야 교회로 올 건가?” 그렇게 얘길하면 “엄마는 참~ 내가 가게 되면 가는데 뭐 그렇게 말을 해.” 영은회가 돌아오는데 용환이가 이달 말일까지 엄청 바빠서 엄마집도 못온다고 하네요. 건강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할텐데……교회 동욱형제와 같은 나이면서 생일도 똑같은데 우리 아들은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가끔 애가 타서 아들에게 “나 살아있을 때 교회 가는것을 좀 볼 수 있을라나, 없을라나.” 하며 말을 붙이곤 하지요.
♣작은아들 정환이
작은 아들은 내 성격을 좀 닮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는 좀 뭐든지 다독이고 누르는 성격이거든요. 정환이한테 신앙적인 말을 하면서 “너는 내 말 듣냐? 내 말 한 번에 들어본 적이 있냐?” 그러면 아들은 “ 내가 엄마 말 안 듣고 누구 말 듣고 컸어요? 엄마 말 듣고 여태 크고 장가 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했지. 엄마 말 잘 들었지. 어디다 써놓질 않아서 보여주질 못하겠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들딸에게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나쁘면 다 나쁜 거야. 형제를 잘 챙기고 형제 의좋게 살아라.” 라고 해서 그런지 의좋은 모습 보면 감사해요. 아이들 어릴때 맘대로 못 먹이고 항상 안쓰럽기도 했지만 야단치지 않고 기를 정도로 착했어요. 자녀들이 착하게 커줘서 사춘기라는 걸 모르고 컸어요. 부모 속을 안썩이고 말 잘 듣고 순순하게 잘 커준 자식들이 고마워요. 지금도 3남매가 의좋게 사는 모습이 감사해요.
지금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신앙생활 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부군 살아생전 함께 찍은 사진
*아드님이 사 주신 아이패드로 성경도 보시고 유튜브 설교도 들으신다고 하심
*교회 활동 모습 / 해마다 성경 통독 하시고 사진 찍으신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