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올라가는 노래(형통한 사람)
[시편 122편 1절~9절]
글 : 전홍희 목자(정출부 이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성전 중심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일곱 절기와 다섯 제사를 주시며, 백성들이 언제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성전에 올라오지 않는 자들은 공동체에서 끊어질 만큼, 성전 중심의 삶은 절대적인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으로 하여금 순례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순례란 ‘찾아가서 경배하는 행위’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믿음으로 부르심을 따라가는 나그네입니다(벧전1:17). 이 순례의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그분의 백성을 온전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순례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딤후4:8).
오늘 시편121편은 형통한 성도는 어떤 마음으로 성전을 찾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기쁨으로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입니다(1~2절)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는 말을 들을 때 시인은 기뻐하였습니다. 성전에 가는 일이 의무나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라는 고백에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감격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에게 성전은 속죄와 예배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였습니다. 오늘날 성도에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교회에 들어설 때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더하십니다.
2.성전에서 서로 연합하며 감사하는 사람입니다(3~5절)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예루살렘은 “조밀한 성읍”처럼 서로 연결되어 세워진 공동체였습니다. 각 지파가 하나 되어 올라가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성전은 흩어진 백성을 하나로 묶는 연합의 자리였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다윗 집의 보좌가 있어 공의가 시행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배의 자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세워지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말씀과 성령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 되고, 진리로 다스림을 받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3.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6~9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시인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권면하며, 그 성을 사랑하는 자가 형통하리라고 선언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공동체의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의 평안이 거져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으로 오듯이, 사랑한다면 묵묵히 맡겨주신 일을 감당해야하는 것입니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라는 축복처럼, 하나님은 성전을 사랑하는 자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오늘날 말세에 주님께서 당신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기뻐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그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을 누리게 됩니다.
결론
시편 122편은 성전을 향한 기쁨, 하나 됨, 그리고 사랑의 기도를 가르쳐 줍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기쁨이 되고,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복이며,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형통합니다. 인생의 길에서 교회를 소홀히 여기는 순간, 우리의 신앙도 약해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백성들처럼 믿음으로 성전에 올라가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은혜의 자리이며, 평안의 근원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형통한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