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자 사순도
큰 누님이 저에게 “예수님은 우주의 주관자이시며, 모든 세상 사람들이 경배해야 하는 신이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에 저는 큰누나의 지성을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누님은 외국 역사를 공부했잖아요? 예수는 분명 유태인인데 우주의 주재라니요? 우주 만물이 먼저 있었어요?”
이 말에 누님이 어쩔 줄 몰라 하는 틈을 타서 다시 말했습니다. “좋아요.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칩시다! 그 신의 키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뚱뚱한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누님 저에게 말해 보세요.” 그때 누님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 분의 모습을 얘기할 수 있겠니?”
그래서 저는 철학자 같은 말투로 누님에게 말했습니다. “우주에는 신이 없어요. 과학적으로 실증할 수 없는 것은 다 믿을 수가 없으니까요, 만약 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의 양심이 바로 자기의 신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저 자신만 믿을 뿐입니다. 이렇게 토론이 끝나자 제가 이겼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 트집을 잡기 위해 예배에 참석함
며칠 후 큰 누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다닌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성경 지식이 별로 없어 네 의문을 어떻게 풀어 줘야 할지를 모르겠어. 교회에 가면 전도자가 있으니까 그 분이 만족한 대답을 해 주실 꺼야. 오늘 저녁에 나와 같이 가자.” 이 말을 들은 저는 만약 ‘그 전도자가 내 질문에 답변을 못해 쩔쩔맨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큰 누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 날 저녁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설교를 들었습니다. 트집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헛수고였습니다. 설교는 완전히 성경을 위주로 하는 것인데 저는 성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반박할 자료를 얻기 위해 매일 저녁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줄곧 저를 인도하심으로 인해 반박할 생각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가 생기는 것을 느껴 완전히 투항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퇴보인지 발전인지 한동안 저는 단정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단지 저의 관념이 확실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저의 무신론이 뒤집어지고 하나님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180도 대 전환은 저 자신에 대한 회의를 갖게 했습니다. ‘혹시 홀린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저의 의식은 너무나 분명했고, ‘경솔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저의 태도는 너무나 신중했고, ‘내 마음이 약했기 때문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저의 개성은 너무 강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 하면 제가 전에 품었던 문제이며 동시에 큰 누님을 반박했던 문제들이 원만히 해답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人性)이 있고 신성(神性)도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성으로 말하면 그는 유태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시에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신성으로 말하면 만유 위에 계시며, 만유보다 먼저 계시며, 그에 이해 창조되었고, 그를 의지해 섰으며, 그는 영원히 찬송 받으실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18)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5)
15.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5-17)
둘째, 하나님은 영이시고 물질이 아니므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4:24)
크게는 우주에 충만해 있고 , 작게는 사람 안에 계실 수 있습니다.
7.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10.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139:7-10)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4:6)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이 얼마나 키가 크신지, 얼마나 뚱뚱하신지, 어떤 얼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셋째, 성경에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4:24)
과학이 다루는 것은 형이상학적 문제 즉 물질계지만 종교가 다루는 것은 형이상학적 문제 즉 무형적 영계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실증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1:19-20)
넷째, 양심은 하나님의 등불로서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의 깊은 속을 살필 수 있으며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20:27)
옳고 그름을 분간하게 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2:14-15)
그러나 양심 자체가 결코 신은 아니며 사람이 양을 버리고 선을 따르도록 도와 줄 힘도 없는 것입니다.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8-20)
언제나 양심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저는 양심이라는 것이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 것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7:21-24)
구해도 받지 못한 성령
그 밖에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골치 아프게 했던 문제는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미친 것도 아니고, 일부러 꾸며서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도대체 왜 무릎만 꿇었다 하면 온 몸을 떨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일까?’
그때까지 그런 것을 체험해 보지 못한 저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그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이것은 성령 충만을 받은 상태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성령을 받는 것은 천국 기업을 얻는 증거입니다”라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7월 5일 교회에서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세례 받고 주께로 돌아 온 사람은 저 까지 해서 모두 열두 사람이었습니다. 세례를 베풀기 전 모두 서서 기도를 하면서 성령이 친히 인도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 같이 찬송을 부르며 한 사람 한 사람씩 물에 내려 가 세례를 받는데, 그 장면이 아주 엄숙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니 제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볍고, 편안했으며 마음속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오늘부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지금부터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거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계속해서 성령을 구했고 심지어는 금식 기도까지 했습니다. 천국 기업 얻는 증거를 얻고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4)
,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24:49)
이렇게 며칠을 계속했지만, 함께 세례 받은 사람 중 몇 분은 벌써 성령을 받았는데 저는 받지를 못해 거의 절망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신이시며, 사람을 편애하지 않으시고, 저버리지도 않으신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다시 힘을 내 구했습니다.
전심으로 구하니 성령을 내림
7월14일 저녁 집회 후 대부분 신도들이 돌아가고 두 세분의 집사님과 형제가 교회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 기도실에 들어 가 하나님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은 다음 두 손을 모으고, “할렐루야! 주님, 저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기도하면서 오늘 저녁에 성령을 받지 못하면 날이 샐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한 두 시간이 지나자 두 다리가 나무처럼 뻣뻣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힘이 위에서부터 나를 누르더니 마음이 뜨거워지며 전신이 떨렸고 혀도 움직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던 분들이 저의 모습을 보고는 “성령을 받았다!” 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저에게 와서 안수를 하자 성령이 한층 더 충만해지면서 방언 하는 소리도 커지고 몸도 훨씬 더 심하게 떨렸습니다. 그런 중에 한 줄기 빛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성령을 받을 때의 의식은 또렷했으며,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안에서부터 솟아 나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영적 기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전 처음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의 글 가운데 “저는 본래 이성으로 신앙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신앙은 체험으로 오는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번 경험의 가장 훌륭한 주석이 됐습니다.
예수님은 떡 빌리는 비유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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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 (눅11:8-13)
제가 이번에 체험한 것은 주님의 말씀 ―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다 ― 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할 것입니다. 아직 성령 받지 못한 분들은 낙심치 마시고 믿음으로 열심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 안에서 기쁨을 누리실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