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마 24: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마 24: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마 24: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마 24: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 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며칠 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깨달아라! 왜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라고 추가했을까? 모두가 깨닫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깨닫다’라는 표현은 ‘마음’에서 나온 단어이다. 마음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 깨달음이라고 했다.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다니엘 9장 27절에서 보면 미운 물건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 다니엘서에 세 번 등장한다. (11:31, 12:11)

[계 17: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계시록에도 가증한 물건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사람들에게 육적, 영적인 음행을 하게 하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일들을 하게 하는 존재가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루살렘 성전?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없다. 지금 거룩한 곳은 바로 교회이다. 그리고 말세에 성령의 전인 성도들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교회 안에 세워지고, 성도들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인 생명을 잃게 되고 세속화되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교회 안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끝이 임박했하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절대적인 진리를 고집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서로 서로 좋은게 좋은 시대를 살아간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라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면 그것이 진리가 될 수 있는가? 절대 아니다.

 

교회에 가증히 여기는 것이 서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멀리 떠나야 한다.

교회를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는 자리에서 피하라는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쳐야 한다. 가족, 목자님 어느 누가 멸망의 가증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 때는 각자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다. 그리고 승리가 정해진 싸움을 싸운다. 결국 죄악된 세상과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운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계19장의 승리의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미리 말씀해 주시고 깨달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때가 되었을 때 우리로 당황하고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그렇게 준비시키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만나든, 예수님 곁에 항상 붙어서 인도함을 받고 결국 영원한 안식과 영광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