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마9:35-38)
주님께서는 암8:11에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을 듣지 못한 갈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눅12:42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진실한 청지기를 찾으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깊은 기갈(飢渴)은 결국 사람의 기근입니다. 사람은 있는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진실한 청지기 찾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관심을 보면, 예수님의 온 관심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던 무리를 보실 때마다 그들을 늘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서 전체에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무리를 보실 때 왜 늘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오늘 마태는 그 이유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憫惘)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牧者)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여 죽게 되었음이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은 더 정확한 우리말 어감으로는 “애간장이 녹으셨다”라는 말입니다. 왜? 예수님이 무리를 보실 때마다 애간장이 녹으셨나요?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무리가 목자(牧者)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였고, 유리방황하다 기진하여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 떼를 돌보아 줄 목자(牧者)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간장이 다 녹으실 만큼 그 마음에 민망해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은 2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주님의 심경은 어떠실까요? 이 땅에 남겨진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그런 민망함은 떨쳐 버리셨을까요? 주님은 어쩌면 지금도 2000년 전에 가지셨던 그 안타까움을 가지고 지금 다시 당신의 마음으로 양 떼를 맡아 줄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하겠어! 그런 큰일은 큰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나처럼 보잘 것도 없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해. 누구누구가 해야지.
사실 우리가 위대한 일, 큰일을 말하지만, 일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이 위대해 본들 얼마나 위대한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다고 한들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 해도 그 손길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로 따져서는 누구도 큰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그저 작은 몸부림에 불과 한 것입니다.
우리가 큰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감당하는 그 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든든한 우리의 청년들 속에서 예수님의 복음 정신을 가진 일군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저들이 이 마음을 품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몸부림치며 고뇌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 시대를 향한 고뇌를 품고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교회의 미래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총회는 이 시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신학생 모집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하게 선발하지 못하고 추가 모집을 하고 있고, 그것도 여의찮을 상황을 대비하여 장로/집사 중 목자 선발 방법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시기가 어려운 때인 것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가 기근의 때에도 좋은 씨앗은 먹지 않고 씨앗으로 뿌리는 것은 풍성한 소출의 때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좋은 씨앗을 심고 기다려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의 날이 올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오늘 주님은 주인에게 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일군, 주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내 자녀가 그 길을 가려 할 때 용납하고 금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눅18:15-17) 믿음의 역사는 언제나 사랑의 헌신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말씀하셨고, 요 4:35도 주님께서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틈나는 대로 복음 전파의 시급함을 말씀하셨는데 언제나 일꾼이 부족한데서 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사시렵니까? 지금은 마지막 추수의 때입니다. 6.25로 인해 신앙의 열기도 떨어지고 전도자도 없어 침체상태에 있는 교회를 보면서 박필선 목자님께서는. [내가 사회에서 이렇게 지낼 것이 아니다] 분연히 일어나 전북지방 전도를 위해 자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예수교회의 목회자는 세상에서 데려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을 보내 주셔야 하고, 여러분이 자원해 주셔야 합니다. 4명, 아직도 채우지 못한 신학생의 숫자입니다. 당신이 그 자리를 채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