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본문말씀] : 눅 19:1-10

[설교자] 정호민 목자님

[설교일] 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오전예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삭개오는 부자였기에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풍요롭고 행복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는 왜 삶에 만족하지 못했을까요? 왜 예수님을 찾아갔을까요?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에게 어떤 말씀으로 은혜를 주셨을까요?

 

삭개오에게 없었던 것은 관계입니다.

먼저, 삭개오는 이웃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세리장이라는 일을 하는 가운데서 로마를 위해 일을 했지만 동족을 배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을 보면 의로운 자, 성결한 자이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온갖 부당한 편법으로 자신의 배를 불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관계는 삭개오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삭개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가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수라는 자가 여리고 성에 들어온다는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들어오시기 전 한 소경을 고쳐주셨다는 것과 유대인들은 같이 있으려고도 하지 않는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자를 통해서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데 방해하는 장애물이 2가지 있었습니다.(3)

첫 번째로는 삭개오는 키가 작았고, 두 번째로는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때 삭개오의 판단은 포기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달려가 큰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에게 분명한 문제를 느끼고 있었고 예수님을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키가 작은 것, 사람이 많은 것은 그에게 큰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표면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 과정 가운데서 이웃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삶의 특징 중 한가지는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풍요로운 삶과 텅 빈 마음이 대조가 되면서 괴리감이 생겨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더 큰 돈을 구하지만 돈으로는 그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풍요를 누렸던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12:8)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고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풍요를 누렸든 간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찾으시는 날 내가 그동안 누렸던 모든 풍요는 이 세상에 두고 내 영혼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참된 풍요가 있는지, 참된 기쁨과 행복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 마음의 참된 기쁨과 행복은 사람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이 두 관계 중에서 우리가 먼저 바로 세워야 할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으로 내가 내 마음의 풍요로움과 행복을 느끼게 되고 더 나아가 그 풍요로움, 참된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교회에 나오기에 힘써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이라는 시간에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만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근데 우리가 교회에 나오려고 하면, 하루를 보내는 가운데 기도와 말씀생활을 하려고 하면 무엇을 만납니까?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나 자신이 가진 내부적인 장애물과 나와는 무관한 외부적인 장애물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삭개오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앞으로 열심히 달려나갔습니다. 앞으로 달려나간다고 해서 삭개오의 키나 예수님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가 달려나갔을 때 그 앞에는 커다란 뽕나무가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나갔을 때 예수님께서 길을 예비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장애물이 만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은 갈급함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갈급함 안에는 공허하고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를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가 됩니다. 그런 갈급함이 내 앞에 있다면 우리가 만나는 장애물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게 됩니다.

 

(시 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의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의 상태를 바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저 겉으로 드러난 풍요로운 삶에 도취되어서 메말라 죽어가고 있는 영혼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를, 예수님과의 만남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론 너무나 쉽게 다음에, 내일하면 된다며 그 기회를 넘깁니다. 그러나 그 누가 내일을 장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잠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서 ‘세월’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의미합니다. 또 ‘아끼라’는 구속하다, 값을 치루어 사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라는 말이 아니라, 값을 치러서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예배에 나아가야 하고,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을 만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교회 안으로는 섬김의 기회를 붙잡아야 하고, 교회 밖으로는 전도의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시며 (5)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7)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삭개오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삭개오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부를 포기합니다. 삭개오의 텅 빈 마음은 예수님으로 인해 꽉차게 됩니다. (9) 그리고 그동안 무너졌었던 삭개오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은혜로 주시는 기회를 붙잡아 참된 행복을 나누는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