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요12:27-33)
일시: 2025년 2월 1일 안식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27절)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마음이 민망하다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고뇌하였지만, 이때 예수님은 많은 기도를 통해 시험을 이기고 결국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기도 생활의 필요성
이처럼 사람이 정말로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깁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는데 성령을 받은 우리는 그럴 때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제자들에게도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 역시도 아주 힘든 상황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시험에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원이라도 육신이 약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마음은 정말 원하는데 육신이 약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더라도 의지가 약해서 실행할 수 없게 되는 지경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몸이 너무 아프게 되면 하나님께 의지하여 기도하고 치유와 회복을 구하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으로 이어지는 시험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마음이 약하고 육신이 약해서 우리가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만, 이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셔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계속 지게 되어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을 통한 기도의 중요성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27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우셔서 이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지만, 지금은 이거를 지금 감당하시며 순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기도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교훈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27절 말씀에서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신다는 뜻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마음과 힘이 약하여 있다가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기도하고 나면 힘이 생기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려는 생각이 생깁니다. 이것이 성령의 도우심이고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들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삶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의 본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한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이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모습대로 살아가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면 그 인생은 분명히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우리 인생은 우리를 스스로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주셔야 합니다. 내가 복을 받고 싶다고 해서 내가 복을 쫓아가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정말로 복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고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삶을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솔로몬을 통해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삶의 결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이든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때 솔로몬은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그런 재판을 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솔로몬이 구한 것이 주의 마음에 맞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솔로몬은 자신이 재판을 잘하여 백성을 잘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전에도 후에도 없을 만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광도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구했고 행하려는 마음 또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이 소리가 우레가 울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했다. 여러 말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소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되었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31절) 하고 말씀하시는 데 이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가지시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상의 심판이 일어나서 결국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세상의 왕인 마귀가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4~15)”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마귀를 없애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단을 가리켜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사망은 죄의 대가로 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대가인 사망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면하게 하려고, 즉 사람들이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이 관계를 끊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사단이 죄로 인한 죄의 삯인 사망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사단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이 되십니다. 이것을 이루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죄 사함의 은혜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죄에 대한 삯을 다 지불하게 되어 이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에서 다 벗어난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겁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믿는 자들에게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 은혜를 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죄 사함, 즉 구속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풀어졌다는 뜻으로 죄에서 풀어졌다는 뜻입니다. 풀어졌다는 것은 흑암의 권세에서 있던 자를 건져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삶
그런데 우리는 이 죄 사함을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세례를 통해서 받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 구속받아서 죄와 사망의 권세인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이제 죄의 종노릇 하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죄의 종노릇 하는 죄의 권세에서 나오지 못하는 그래서 죄에서 얽매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다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으니 예수님 안에 있어야 우리가 계속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0: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너희가 만일 하나님께서 쫓겨나서 이방 나라 안에 거할 때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 있든지, 이스라엘 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도저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돌이키셔서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내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이 은혜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여 애굽의 땅이 아닌 이스라엘의 땅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회개의 삶입니다. 회개의 진정한 모습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로 계속 돌아오는 삶을 사는 것인 우리가 해야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그분의 삶과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 힘쓰시는 우리가 모두 되길 바랍니다.
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