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유명한 인물,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마음으로 기념비를 세우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기념으로 일곱 째 날을 구별하셔서 안식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이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이 천지창조 직후 안식일을 정하신 일은 곧 하나님이 천지 만물의 창조주라는 선포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조물주 하나님이 지키신 것처럼 자신도 그 날에 안식하면 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천지창조 때부터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안식일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2,500년 동안 잊혀졌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올 때부터 다시 역사 속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지정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으며 생활하는 동안 안식일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 훈련하시는 방법은 곧 만나를 육일 동안만 내려주시고 제 칠일에는 내려주시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날에는 하루만 지나도 만나가 부패했는데 제 육일에는 이틀치 분량을 거두어도 만나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40년 간 반복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칠일에 안식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을 것입니다.

(출 16: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16:26-27) [26]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칠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 제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이렇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안식일 지키는 일을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 후손들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왕국시대에 이르러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차례로 멸망시키십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혼혈정책과 이주정책에 의해 완전히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로 생활하게 됩니다.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에 대해서 경고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렘 17:27)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겔 20: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바벨론에 70년 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조상들의 과오를 살피고 반성하게 되는데 그들의 멸망 원인이 바로 안식일을 소홀히 여겼던 점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지도 아래 다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킵니다.

(느 13: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그렇게 포로귀환 후 수백년 세월이 흐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나타냅니다. 안식일을 준수하되 그 본연의 목적과 취지에서는 멀어지고 인간을 속박하는 과격한 금지 조항들이 만들어집니다. 그 조항들이 바로 안식일 39개조 금법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장로들의 유전(전통)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금법의 조항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려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하나님이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신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과도하게 속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안식일의 본질에 대해서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막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눅 13: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마 12:1-2)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안식일 준수 문제로 많이 충돌하고 변론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결코 안식일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적 안식일 준수 방법’에 대해서 부정하신 것입니다. 한국의 일반 개신교회에서는 안식일을 율법 시대에 속한 성일이므로 폐해졌다고 여기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고 신약 시대에는 일요일(주일이라고 표현함)을 개혁된 성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시간적으로 살펴볼 때 율법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창조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천지 창조 때부터 세워진 안식일이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존속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종말론에 대하여 교훈하실 때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돌이켜 보면 안식일은 ‘말세의 때’까지 존재한다는 뜻이며 그 때까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