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말하랴”

저는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지난날이 스치며 그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아 주고 계셨던 것이 느껴져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유년 시절 저는 숫기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탓에 지방에서 서울 도심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다가서기가 어려웠고 늘 외로움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고 저는 미션스쿨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토요일 1교시는 항상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찬양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 배웠던 찬양들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등) 여전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때 그 찬양들은 숫기 없던 저의 외로움을 늘 위로 해 주었습니다. 찬양을 좋아하고 그에 위로를 얻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방학 때는 고향인 시골에 가서 그 곳의 교회를 다녔지만 방학중 잠시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잘 몰랐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신앙에는 무관심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참예수교회를 접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언니가(정효정 자매)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형부(김용주 집사)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참예수교회(대방)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의 인생에 참신앙을 만나게 된 사건이었지만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교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 또한 결혼의 시기가 다가왔고 청첩장의 문구를 고르던 중 이유는 모르겠지만 “믿음으로 만나”라는 문구가 너무 좋아 보여 청첩장의 문구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주례 선생님께서 저에게 교회에 다니냐고 물으셨지만 그때도 저는 하나님을 여전히 몰랐었습니다. 그동안에 언니는 저에게 계속해서 함께 교회 나가기를 수없이 권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흔히들 얘기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토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과 그 교회를 권면하는 언니조차도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때의 저는 참 곤고 하였습니다. 마치 벼랑 끝을 걷는 듯 위태롭고, 버거움에  지쳐있었습니다.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여유가 전혀 없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맏며느리로 맞벌이 하며 두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모두 힘든 시기이겠지만 저 또한 그 시간이 너무 고되고 힘이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10년 만에 또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때도 저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늦둥이 막내를 낳고서도 맞벌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여전히 여유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토요일도 출근을 했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덕에 큰애들은 주말마다 육아를 도왔습니다. 큰애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언니가 토요일이면 막내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돌봐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와 큰애들을 비롯해 모두에게 잠시 평화로운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교회로 향하는 저의 발걸음이라고는 토요일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얼마 후,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암에 걸려 투병하고 계실 때 언니와 형부는 매일 저녁 퇴근길에 아버지께 들려 기도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버지께 찾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 너희 다니는 교회 갈란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믿기로 하셨지만, 그때에도 저는 여전히 감흥이 없었습니다. 점차 병세가 깊어져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고 입원(2015.5.6) 날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연휴를(5.1/근로자의날) 이용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고향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모두가 안타까움으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언니가 “아버지 세례를 받으셔야 하겠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언니의 말을 듣고서 아버지가 너무 걱정되며 언니에게 화가 났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4월이라도 계곡물은 얼음같이 차가웠지만 세례식 일정은 잡혔고(4.26) 저의 염려와 화나는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척척 진행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몹시 불편하였고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세례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례식 당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감격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세례받으시던 그 순간 바로 옆에 있던 복숭아나무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아버지께 꽃비가 펄펄 내렸습니다. 광경을 지켜보던 저는 마음에 걱정이 있었나 싶도록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세례를 받았고 거듭났으니 더욱이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으시고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실 때만 해도 아버지는 기력이 많이 쇄약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신 후에도 매번 예배에 출석하셨습니다. 때마다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하셨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는 아버지를 눈물 나게 하였고, 눈물 흘리게 하였지요. 눈가가 헐어 진물이 나기까지 참회하셨고 어머니께도 그동안의 고생을 감사하시며 화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갓집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이제 제사 지내지 마라! 모두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저희에게 매우 어려운 숙제가 될 큰일을 순조롭게 잘 정리 해 주셨지요. 아버지는 그렇게 1년 쯤 잘 보내셨고 이듬해 (2016.6.6)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힘겹게 사는 저를 보시며 아버지는 “뭐가 걱정이냐!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계시다는 것을요.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남은 시간이 고작 3개월이라고 선고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선고와는 달리 1년 동안을 더 지내셨습니다. 아버지가 더 지내신 1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두 달 후(8월) 아버지가 보여주신 믿음대로 저와 막내아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함이 한없이 부끄러우나 얼마 후 제게 뜨거운 성령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마음이 뜨거운 것이 매우 기쁘고 자꾸 감사가 넘쳐 눈물이 흘렀습니다. 보잘것 없는 저를 나의 존재를 하나님의 영을 통해 귀하게 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나의 자녀! 너는 귀하다.” 하시며 뜨겁게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3년 후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며 구원파의 분파로 알려진 새생명 말씀선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저는 “엄마가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 권면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목자님 말씀을 들어보고 판단해서 결정하겠다”고 하며 순순히 응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참예수교회 진리를 공부하게 된 둘째 아들은 마침내(10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성령도 받았습니다. 두 아들들과 성도님들 앞에 나와 찬양하던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허락 해 주신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현재는 안타깝지만 둘째 아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막내아들이 아동부로는 마지막 초등부 영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영은회 기간 3일 중에 이틀만이라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중학생 되면 교회 못 간다”며 남편은 아주 단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말에 불만이 많았지만 싸우고 싶지 않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영은회 이틀째 되는 날 감사하게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더욱더 하나님께 의지할 순간이 많아지게 될거라 생각했지만 믿음이 없는 아빠는 저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빠의 반대에 의해 아이는 지금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미처 모르는 것 들을 다 예비해 두셨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아멘!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가족들은 어려움 앞에 하나님께 매달려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남동생이(43살) 혈액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시 하나 되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기도의 능력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매달렸습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성도님이 함께 기도해 주셨습니다. 동생은 현재까지(만 4년째) 잘 이겨냈고 병세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부터 인도해 오신 것처럼 남동생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 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해야 할 순간에 기도로 매달리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능력과 은혜는 진행중 입니다. 저는 직장 때문에 안식일 오전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언니는 고민의 여지가 없는 권면을 했습니다. “기도해. 오전예배 드릴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해 주시라고”라고 했지요. 저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저의 형편에 따라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그 직장에서 주 5일 근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저 보다 더 열심을 다해 기도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일들도 많았지만 잘 된 것 인지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부분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순간을 이끌어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뒤늦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삶은 힘들고 고단한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힘들고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희 신도회(유니게회)를 통해 저를 위한 기도를 허락하셨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숫기가 없어 친구도 사귀기 어려워했던 저에게 교회 공동체 안에 진정 귀한 저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에 기억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9~20절)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어버지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제 소견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해 주신 경험들이 있습니다. 평소 저는 남편과 데면데면하여 얘기도 잘 못하곤 합니다. 어떤 상황에 남편이 제게 뭐라 이야기했을 때, 제가 남편의 어깨를 지그시 만지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제 말과 행동에 저조차 깜짝 놀랐습니다. 또 한번은 시어머니께서 일하시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해 허리에 병이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 스스로가 느껴졌습니다. 쉽지 않은 이 과정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이끌어 주심을요. 이어서 시어머님은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을 지갑에 넣어두셨는데 시장에서 잃어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그 큰돈을 왜 한 번에 들고 나가셨을까 잠시 원망이 되었습니다. 사실 일이 바빠서 어찌할지 걱정할 틈도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이미 포기하시고 병이 나 계셨습니다. 그런데 퇴근 무렵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허락하셨지요. 퇴근길에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분실신고를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분실 접수된 시어머님의 지갑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시어머니께서 방문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산재 신청에 이어 하루 만에 지갑까지 찾아준 제게 고맙다며 “네 덕분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께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어머니 형편을 아시고 찾아주신 거에요. 하나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지 않았다면 저는 전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입니다. 오랜 시간 가족으로 살아 왔으니, 저 스스로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겠지요.

믿음이 없는 남편과 시어머니께도 하나님을 통한 은혜를 전할 수 있게 해주심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제가 힘없이 낙망하던 모든 순간이 돌아보니, 은혜였습니다. 모든 순간순간 지켜보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