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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 112:1~3)

 

저는 김학정 집사님과 하명순 자매님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가정을 꾸리실 당시에 어머니는 비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세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참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 속한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큰 자비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교회 출석에 대한 기억이 참 많습니다.

당시 주 6일제여서 토요일에도 등교하고 출근을 하셨지만 저녁 예배, 안식일 예배를 꼭 참석했습니다.

1) 성균관대역 근처 4층 건물에 교회가 세워졌던 것

2) 저희 아버지 첫 차가 르망이었는데 미선이네 가정 혹은 세광 집사님 가정을 카풀해서 교회 다녔던 것

3) 어린 나이이지만 저녁 예배 꼭 참석하고 떠들면 혼났던 것

4) 당시 북부 찬양 한마당 비슷한 행사가 있었는데 드레스 입고 나가서 상을 탔던 것

5) 송년의 밤 때 앞에 나와서 암송 성구들 외웠던 것

6) 옥상에 아동부를 위해 가건물을 지어주셔서 실컷 놀았던 것

7) 예배 끝나고 교회 앞 슈퍼에서 게임하거나 한나 언니네 집 놀러가서 같이 놀았던 것

8) 사촌 동생들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안식일 점심에 항상 추가로 차량 운행을 맡아 하셨던 것 등이 있는데요.

이런 어린 시절 교회 출석에 대한 많은 기억들은 저로 하여금 예배 참석은 참 소중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교회 출석이 형식적이고 맹목적인 스케줄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린 시절 예배 참석에 대한 이러한 부모님의 노력들 덕분에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시간이 되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신앙을 갖게 되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는 바입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삶의 터전은 교회와 가까워야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명기가 태어나고 기존의 집이 너무 좁아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인데

당시 저희는 세상적으로 살기 아주 좋은 인계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사 장소를 고민하던 중 부모님께서는 교회가 오목천동임을 고려하여

다른 후보지보다 교회에서 더 가까웠던 호매실동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지금은 호매실동 역시 많이 발전하였지만, 당시에는 정말 논과 밭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 때 이런 촌동네로 갑자기 이사온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인계동에 계속 거주하는 것, 혹은 집값 상승 기대지, 학군지로 이사하는 것이 더 좋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교회를 가까이 두고 살겠다는 부모님의 결단으로 인해

저는 신앙을 지키면서도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더욱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음악에 대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 반주 봉사에 대한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를 반주 봉사자로 육성하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매일 2~3장씩 통합찬송가 1장에서 끝장까지 악보 그대로 치는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만약에 178장 찬송가가 4절까지 있으면 악보 그대로 4번을 쳐야 인정입니다. 이 연습을 몇 바퀴를 돌리셨습니다.

뭐든 연습은 생각보다 지루합니다. 하기 싫어서 피아노를 쾅쾅 내리친 적도 있고, 피아노 뚜껑을 세게 닫아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키시니까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어렸음에도,

실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교회에서 반주 봉사를 권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방법이 너무 싫었는데, 돌이켜보면 적어도 저에게는 그것이 정답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다른 악기도 운지법만 배우면 바로 원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교회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제가 따로 음악 전공을 하지 않았는데도

음악적 소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작용했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이렇다 할 대회 한번 나간 적 없고 체르니,

소나타 이런거 친거 기억 하나도 안 납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음악적 재능을 칭찬하고 어떻게 해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하나님 뜻에 맞는 부모님의 소망 덕분에 귀한 달란트를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학업 성적에 대한 욕심이 남 못지 않게 많습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공부량도 많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많은 시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제가 원하는 진로는 법대에 입학하여 사법고시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권하셨습니다.

교사 중에서도 초등교사가 되기를 권하셨고 고 2 직전까지 의견에 분분하다가 결국 교대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당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기가 많아, 교대에 입학하기 위해선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만 했습니다.

상위 1%의 성적을 낼만큼 열심히 했지만, 결국 수능에서 처음 받아보는 점수로 고배를 마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청주교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대학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제가 2학년 2학기 때 학점을 최고점으로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나라에서 지방대 인문계열 인재를 육성한다며 새로운 장학제도를 신설하였습니다.

지방교대 문과 계열도 이에 해당하였고 학교당 1명만 해당했기에 1등만 주는 제도였습니다.

사실 제가 그동안에는 그렇게까지 성적이 좋진 않았는데

학생처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그 장학제도의 수혜자가 되어 저는 남은 2년의 대학 학비 전액을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는 정기가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교대 학비가 타 대학에 비해 크게 비싸진 않지만

이런 모든게 맞아 떨어지는 과정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큰 축복을 주신다고 느끼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정은 어려울 때 함께 기도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엄마 아빠의 기도 소리가 저의 모닝콜이었습니다.

임용 준비 시절에는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 20분씩 매일 1시간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구성원간의 대화도 많고 더욱 소통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공무원 외벌이로 자녀 셋을 키우시면서 많이 어려우셨겠지만 저는 커가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오히려 조금 부족할 수 있으나 각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꼭 갚아주시고 인도해주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믿음을 원하시고, 그 속에서 개개인에게 역사하신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리신 이런 축복들은 비단 저 혼자의 기도와 노력이 아니라

믿음 하나로 살아가려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구성원간의 믿음과 소망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주고 성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분명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제가 올해 결혼 5년차인데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도 매일 저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입니다.

제 평생의 큰 기도 제목이 될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면서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두려움도 많지만

매일 맞닥드리는 사소한 성장에 감사하기도, 부족한 실수에 회개도 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 가정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며 오늘 저의 간증이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께 은혜로운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편집 : 안희수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