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제목]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1:1-9)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6. 2. 6

 

할렐루야, 성도님들 평안하십니까? 새롭게 발령을 받은 부임지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새롭다’라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고 설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약간의 두려움도 느끼게 됩니다. 저 또한 기대도 되고요, 한편으로는 ‘아, 제가 잘 감당해야 할 텐데’라는 어떤 그런 걱정 아닌 걱정도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새로운 상황들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생각하지 못했던, 내 힘으로 뭔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내일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지 못한 채, 우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사명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려다 보니 때로는 그런 상황들 속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는 거죠.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 개인, 가정, 교회가 이러한 삶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1:2)”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광야라고 하는 두렵고 무서운 이곳을 지나게 하신 다음에,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입구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서 모세는 죽고 그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로 이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굉장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을 들어간다는 것은, 그 땅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곳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는 훨씬 더 신장도 크고 힘도 강했던 가나안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약 38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여기 가나안 땅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는데 그 땅을 정탐해 보니 자기들보다 너무 강해 보이는 족속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와 같이 보였습니다. 너무 겁을 먹은 것입니다. 사실은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하셨고, 8년이 지난 다음에 이제 다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쉽지 않지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이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사명은 사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를 위해서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롬15:4). 우리 신약 시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을 통해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 바로 우리가 장차 가야 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이자 명령이며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도 있고 또 동시에 사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지금까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침노해야 합니다. 침노라고 하는 것은 싸우는 겁니다. 싸워서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은 이와 같이 싸워서 차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후의 말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과 전쟁을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얻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말씀 보면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며, 이제 마지막에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여정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기 위해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이런 삶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 그곳의 족속들과 싸워서 그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했던 바로 그런 과정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혼자서만 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넓혀 가야 합니다.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처음에 여리고부터 시작해서 점점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로 확대해 가지 않습니까?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말합니다. 전도를 통해 그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고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는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를 얻고 확장해야 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3절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그 땅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너희 밟는 곳을 다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이란 걸 생각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미 얻은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 그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는다면 순종하겠죠.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대로 행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모든 성경의 말씀이 다 그와 같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말씀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그렇게 믿음의 본질은 바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주었다”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싸운다면 하나님께서 그곳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해서 그 땅에 들어가지 않거나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 말씀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뒤의 말씀이 바로 그런 내용인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고 그 믿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문제가 될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훨씬 강한 아낙 족속이나 하더라도 하나님하고 상대가 안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나와 함께하셔서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신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내가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만 하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도 사실 그런 의미입니다. 양이 목자와 함께 있다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가 양이 필요한 것들을 다 제공하고 쉴 만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심지어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곳을 지난다고 하더라도 목자가 함께 만 있다면 양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십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의 지경, 즉 범위가 나옵니다. 이 범위는 사실 굉장히 넓은 지역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가나안 지역, 실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은 그들이 얻었던 곳보다 훨씬 더 큽니다. 지도를 보면 거의 한 열 배 정도 차이가 날 만큼 굉장히 큰 범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약속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밭 밑에 어마어마한 보화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고 큰 은혜인가를 알게 된다면 내 모든 소유를 다 판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요. 실제로 성경에 보게 되면 이 하나님 나라를 깨닫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동안 정말 중요하게 여겼던 걸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는 바울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릴 때는 가치를 잘 모릅니다. 막 지폐도 가위로 자르기도 하죠. 그러나 크면 가치를 압니다. 신앙에서 성장하면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앙이 성장하지 않으면 이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잘 모릅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나 혼자 누리기 너무나 아쉬워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 줍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누리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세상의 삶을 마치게 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삭제?

 

우리가 믿는 목적은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천국을 가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천국에 왜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냥 좋으니까”라고 답할 수 있겠죠.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 삶 속에서 많이 경험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내가 많이 경험해야 “이게 정말 가장 좋은 것이구나”를 알게 되고 더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려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능히 당할 자 없게 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떠나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 무슨 말입니까? 믿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눈에 보이는 건 힘센 가나안 족속들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그런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겠죠. 하나님께서 왜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하셨을까요?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테니 내가 준 명령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나 그런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통해서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매번 필요한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러면 성도는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가시는 곳은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죄의 유혹과 사탄의 방해뿐이기에 그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됩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무리를 걸어오셨고, 베드로도 용기를 내어 물에 발을 내렸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물 위를 걷게 되었죠. 그런데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빠져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잡으시며 “의심하는 자여 왜 믿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가면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기적이 뭘까요? 병이 낫는 것도 기적이지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적 아닌가요? 주변에는 평안함이 없어서 늘 불안해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아무 걱정이 없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평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7절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말씀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지만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건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중심의 신앙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말씀이 중심이 안 되면 그 신앙은 금방 무너집니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을 늘 가까이해야 합니다.

 

8절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동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말씀을 암송하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날마다 추구한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힘듭니다. 당연히 힘듭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처럼 힘든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내 노력과 정성을 쏟는 만큼 나에게 돌아오게 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담되고 행하기 어려운 말씀도 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부담되시죠? 하지만 힘들수록 그 안에서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힘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순종하라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무리한 요구처럼 보여도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행하기 전에는 피곤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해서 행하게 되면 그 안에서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내가 명했으니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저 역시 오늘 처음으로 청주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주어진 시간 동안 이 곳에서 목회를 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걱정도 되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많은 성도님을 어떻게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을까 고민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저도 그 말씀을 믿고 그렇게 하려 합니다. 성도님들도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믿으시고, 그 말씀을 따라 힘써 행하는 삶을 사신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열심히 순종하는 우리 청주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ryNq6qEbYX0?si=WsDDc7K9DzgSLdii

글작성 : 장종규 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