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동부교회에 다시 출석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인사말을 하기까지 무사히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1년 10개월 군 생활을 끝으로, 무사히 전역하여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다시 뵈니 마음속 깊은 곳부터 익숙함과 포근함이 가득 차 올랐습니다. 이 행복함을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건 19년 10월이었습니다. 지원 후 언제 입소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한 신청에 받은 입소 날짜가 덥지 않은 선선한 날씨라서 쾌적한 상태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감사드렸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책 두 권입니다. 훈련소 첫날 보급 받은 물품들을 정리하던 차, 답답하게도 입소할 때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압수 당해, 심심해하던 손에 들어온 것은 제 선임 기수가 관물대 속에 몰래 남겨두고 간 두 권의 책이었습니다. 속옷 보관함 구석에 숨겨져 있던 덕분에 훈련소 관리병의 눈에 띄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고 마음속으로 이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짧은 기도를 드린 후 바로 책 제목을 확인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차마 신이 없다 말하기 전에’라는 제목이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훈련소 교회에서 훈련 3주차에 나눠 주는 책이었습니다. 이후 훈련소를 수료한 후 만난 선임들의 말로는 분대 별로 1~2 권이 숨겨져서 남아있는데 마침 제자리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잘됐다 싶어서 펼쳐보니 왜 기독교가 종교 중에 가장 정답에 가까운가를 설명해 놓은 만화책이었습니다. 만화로 그려 놓은지라 짧은 시간 내에 읽고 내려놓자, 주변에 있는 동기들도 심심했던 모양인지 자신들도 봐도 괜찮겠냐고 해서 돌려보게 되었습니다. 취침 시간이 되자 각자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오후에 읽은 책 때문인지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동기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다른 종교는 몰라도 교회 만큼은 가기 싫다‘는 이유였습니다. 가장 다수를 차지했던 이유는 주말 아침에 돌아다니시는 흔히 말하는 ‘좋은말씀 전하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동기들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일주일 동안 쌓였던 피로도 풀 겸 푹 자고 있는데, 주말 아침마다 방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상황은 요즘은 보기 힘든 포교 방식이지만 현재도 기독교인이 타인 앞에서 혹은 타인에게 하는 행위들이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매일의 행실에 대해서도 더 꼼꼼히 반추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첫 종교행사 시간 놀랍게도 훈련소 교회에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성경을 나눠주었는데 마침 시편, 잠언, 전도서를 하나로 묶은 책이었습니다. 훈련 중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을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틈틈이 읽던 중, 지금까지 읽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특이한 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잠언에 정확히 똑같은 두 문장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21:2)

이 순간 이전에 동기들과 밤에 나누었던 대화들이 떠오르며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평소 하는 행실들도 정말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 확실한가?’  ‘그저 하나님 앞에서 공치사 받기 위해서 내 노력 만을 보이기 위한 행위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올랐기에 순간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이에 일상의 매 행동에 있어 진실 되게 살기 위해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 가지기를 구하자는 결심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몸이 교회에서 멀어져 해이해 질 수 있는 상황에 경각심과 더 거룩하고 새로워 질 수 있게 계기를 주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연찮게도 두 번째 책 또한 기독교 서적이었는데,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창세기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해본 책이었습니다. 이미 입대 전부터 ‘창조 과학’이라는 학파의 주장을 접해보았으나 편향적 사고와 과학계에 대한 맹목적 비난으로 실망하였기에, 일부 주장을 제외하곤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게 된 상태에서 접한 지라 크게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불쾌한 감정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를 살펴 주셔서 책을 주신 것 까지는 좋았는데 왜 하필 이런 주제일까?‘라는 불경한 생각에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첫 장을 읽으며 느낀 점은 ’창조 과학‘을 강연하고 가르치는 사람 중에 이렇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편협함과 교만함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편견을 접고 책에 빠져들자 ‘창조 과학’에 무관심했던 사이 학계 내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고, 자정 작용도 있었으며, 새로운 발견과 주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세간의 역사서와 여러 천문학적 기교들이 접목되어 더욱 설득력 있고 일관되는 주장의 근거들을 제시하게 되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훈련소를 마친 후 복무 기간 내내 정리한 내용들을 사회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전할 수 있었기에 이 책을 접하게 해주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훈련소 생활일 수 있지만, 작은 상황 하나하나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두신 안배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훈련소 내에 돌았던 수두와 수인성 전염병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육체적 훈련을 받는 내내 부상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상황에서 각각의 성도를 기억하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각 가정에 사랑과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소원(삶의 작은 일에도)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길!
그 좁은길로 가기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 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 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 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길 원하네    한웅재 작사작곡 

위의 찬양은 박한훈 형제님이 군대 입대전 송별회때  청년부에서 부른 찬양입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군생활하며 삶에서 하나님을 느끼며 기억하는 삶이 되었던것 같고 ,  군생활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