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일시: 2024년 4월 13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 물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시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과하려 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사마리아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우회해서 갑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마리아는 구약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이곳에 이방인들을 거주하게 됨으로 혈통적으로 섞이게 됩니다. 혈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신의 동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꺼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시려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멸시받고 천대받는 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사복음서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영적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기 위해서, 즉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는 소외 받는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받는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마리아 여자를 일부러 만나 복음을 전하려 하십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자시니라(약5:11)”
# 행로에서 곤하신 예수님을 살펴보다
6절에 보면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한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 힘드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힘든 길을 기꺼이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들을 건져낼지라(겔34:11)”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목자가 자신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찾고 찾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때로는 양이 골짜기나 절벽 위, 혹은 아주 위험한 곳에 있을지라도 목자는 그 양을 찾기 위해서 기꺼이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애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공통적인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주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시되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심으로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여 우물곁에 앉으신 모습은 또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능력을 내려놓으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사40:28)”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아니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피곤을 느끼시며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서 계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케 하고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전8:9)”
# 예수님이 전도하시다
9절에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심을 듣고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넸을 때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짐작하셨겠지만 이렇게 말한 것은 그녀를 전도하려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때 상대방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라(딤후4:5)”는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고난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후의 내용을 보게 되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마리아 여자가 기뻐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의 선물, 성령을 말씀하시다
그럼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 사도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본 시몬이 돈으로 이러한 권세를 사려하자 베드로 사도가 “내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행8:20)”라며 책망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성령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하나님의 선물도 바로 성령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너무나도 좋은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시면서 또한 생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생수는 살아있는 물, 곧 생명수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그런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6-8)”
여기 말씀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 즉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은혜를 받는 사람과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는 언제든지 물을 공급받아 더위가 올지라도 두렵지 않고 잎이 청청하며 가을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마치 더위가 오더라도 그 뿌리를 강변에 뻗쳐 물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 삶에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은혜를 성령을 통해 주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 이러한 물과 같은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11-12절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영적인 진리를 잘 못 알아듣습니다.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느냐”고 말하며 예수님에게 야곱보다 큰 자인가를 묻습니다. 니고데모 또한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거듭남의 진리를 말했을 때 “어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 물으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뜻을 지극히 낮은 우리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듣고 깨달은 자들이 다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도이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샘물 같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보다 더 분명하고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우물을 통해 물을 먹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님이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샘이 되고 그 샘을 통해 끊임없이 생명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수를 마시기 위해 먼저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이것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8)”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다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성령을 주셨고(행1:8)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게 될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요3:34). 그럼 예수님의 증인 된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믿는 자 안에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고 왜 끊임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안다면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샘솟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은혜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의 작은 삶의 습관들이 결국은 우리 삶에 영향을 줍니다. 평상시에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내 마음대로 행하는 삶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게 될 때 우리 삶이 계속적인 성령의 은혜 가운데 있게 되고 성령의 충만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라는 말씀처럼 내 안에는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내 마음과 뜻과 감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성령을 충만히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끊임없이 성령의 은혜를 공급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힘쓰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성령이 샘솟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