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항 성경에 대한 우리의 믿음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임을 믿으며 참 진리의 유일한 근거가 됨과 동시에 신도생활의 기준이 됨을 믿는다.
성경은 현재 2008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6,500여개 언어 중에서 2,479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성경은 세계인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인류의 베스트셀러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안에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로 된 것입니다.
성경은 약 1,500년의 기간 동안 약 40여명의 인간 저자를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그 저자들의 출신, 학문의 정도, 직업, 살았던 시대, 개성 등이 매우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왕족, 제사장도 있었지만 농부, 목동이 직업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마치 한 사람의 저자가 그 내용을 구성하고 기록한 것처럼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 일관된 주제란 바로 인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은 성경의 저자가 눈에 보이는 인간 저자들(이를 제 2저자라고 부름)이 아니라 사실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를 제 1저자라고 부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개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출신, 학문의 정도, 개성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따라서 성경은 단순히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 감동(영감)된 사람들이 기록한 문서’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즉 하나님의 신이 인간 저자를 ‘감동’, 또는 ‘영감’시킨 상태에서 그를 도구로 삼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헬라어 원어의‘감동’ 또는 ‘영감’(inspiration)이란 의미는 ‘신의 바람을 쏘인’(데오스 퓨뉴스토스)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신(영靈, 바람)에 쏘여져 하나님의 도구가 된 자들의 저작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벧후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그와 관련된 일들을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약 성경을 인용하셨다는 것은 구약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합니다(참고. 요5:46). 또 보편적인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토라’(Torah:율법서) ‘느비임’(Neviim:선지서) ‘크투빔’(Kethoubim:성문서)으로 삼분하는데 예수님도 그와 같이 구약 성경을 셋으로 분류하셨습니다. 위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된 글임을 받아들이셨고 그 권위를 인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진실한 분이라고 믿는다면 그분이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듯이 우리도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마땅합니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 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 시대의 ‘성경’은 구약 성경에 한정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시대에는 아직 신약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신약 성경을 기록하신 적이 없고 또 제자들에게 기록하라고 명령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신약이라는 것이 경전으로 존재합니다. 구약 성경은 앞서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인정하시니까 우리도 구약 성경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신약 성경은 무엇을 근거로 기독교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신약 성경은 예수님 승천 이후 교회의 신앙생활의 소산물로 출현했습니다. 신약 성경은 본래 초대 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고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직계 제자나 그에 준하는 자들이 기록한 문서들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직계제자나 그에 준하는 인물들의 저작을 교회 공동체 내에서 일찍이 신령한 문서로 취급했습니다. 그 증거를 신약 성경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언급합니다. 이 바울의 편지가 바로 오늘날 바울 서신이라고 일컫는 신약의 경권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 바울의 편지를 마치 구약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경전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면 안되는 것처럼 바울의 편지(바울 서신)도 억지로 해석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대 교회가 구약 성경을 다루듯이 바울의 편지를 다루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구약 성경을 권위있는 문서로 보듯이 바울의 편지도 권위있는 문서로 본 것입니다. 이는 조금 확대해서 해석하면 사도들의 편지를 구약 성경처럼 새로운 경전으로 삼게되는 근거가 됩니다. 이렇게 권위있는 문서로 인정받은 문서들이 수집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27권의 신약 경전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을 신뢰합니까? 그러면 우리는 신약 성경을 새로운 언약의 경전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벧후 3:15-16)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구약 성경)과 같이 그것도(바울의 편지)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그분의 생생한 교훈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교회는 평소 교훈의 내용을 상기시켜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을 유지하고 가르치는 경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교회 공동체의 동의에 의해 편집이 완료되어 회의를 통해 경전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않아야할 점은 인간이 만든 회의체에서 성경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초대교회가 과거부터 순수한 신앙의 교본들로 삼았왔던 편지들을 회의의 과정을 통해 경전으로 재확인하고 천명한 것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 성경을 신앙의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안에 담긴 교훈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증명하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모두 사람들에게 특정한 유익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사람이 죽은 이후 영생으로 들어가게 할 목적으로 기록된 책은 성경 뿐입니다. 모든 책들 가운데 독특하고도 유일한 목적입니다. 이 성경의 기록 목적은 성경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성경의 목적대로 그 주제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생을 주시고 어떤 과정을 통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지 그 계획과 성취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아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은 모두 장래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행하실 일들의 예표(예언 등을 미리 보여주는 조짐)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애굽 바로 왕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 세상의 노예가 된 인간들을 세례를 통해 거듭나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예표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한 여호수아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을 이끌고 천국을 침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들과 그분이 장차 하실 일에 대해서 예표하는 사건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지어 구약의 모든 내용이 곧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개신교에서는 천주교와는 달리 오로지 구약 삽십 구권과 신약 이십칠 권만 정경으로 인정하며 그 외의 외경(성경외의 경전)이나 위경(올바른 신앙에서 벗어난 거짓 경전)과 같은 것들은 정경(바른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외경과 위경에는 본래의 신앙 정신에서 변질되거나 동방 신비 종교의 영향을 받은 이단적인 내용들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기독교 신앙을 추구한다면 66권의 경권만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것은 성경에 포함되고 어떤 것은 제외하는 문제는 이미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순수한 신앙의 정기를 소유했던 초대교회에서 판단하고 구별하여 정리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동일한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는 육십 육권의 성경만 정경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고후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성경은 신도생활의 기준입니다.
어떤 국가든지 그 나라 국민이라면 반드시 준수해야하는 국법이 있는 것처럼 천국의 시민인 성도도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천국의 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 가운데 가장 상위의 법이 헌법이듯이 천국의 법에서 가장 근본적인 핵심의 법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구원의 과정 즉,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고, 성령을 내려주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모든 과정에 대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란 주님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모든 구원의 과정을 마련해 주셨으니 그 사랑과 은혜를 입은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마땅히 나타낼 성결하고 의로운 삶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성결하고 의로운 삶도 우리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부어주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말씀을 순종하는 실천의 의지가 발휘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나타낸 의로운 삶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릅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추악한 죄악을 제거하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지도록 인도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체를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고칠 수 있게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의한 변화의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없으면 이웃 사랑의 계명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마치 미성숙한 어린 아이는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배려하고 돌보아주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처럼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린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성도를 배려하고 돌보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참고. 고전 1:10-13 3:1-4). 따라서 성도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뜻을 깨닫고 성령으로 기도하여 영혼의 성장과 성숙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지속될 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의 사람으로 점점 변화하게 되고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실천할 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52시간 20분, 신약성경은 7시간 40분으로 육십 육권을 모두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60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성경 전권을 단기간에 통독하는 일도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적은 분량이라도 매일 일정한 분량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말씀을 암송하여 마음판에 새기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암송하면 더 깊은 감동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잠 3: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