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항 안식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은 하나님께서 복주신 거룩한 날임을 믿는다. 단, 이 날을 은혜아래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념하고 내세의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지킨다.
안식일은 천지 창조의 시기부터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육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을 안식일로 지정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안식일을 주셔서 안식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도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현재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며 초대교회가 지켰던 본래의 기독교 성일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을까요? 또 안식일을 지키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1)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기념일입니다.
사람들이 유명한 인물,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마음으로 기념비를 세우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기념으로 일곱 째 날을 구별하셔서 안식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이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니이 천지창조 직후 안식일을 정하신 일은 곧 하나님이 천지 만물의 창조주라는 선포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조물주 하나님이 지키신 것처럼 자신도 그 날에 안식하면 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천지창조 때부터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안식일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2,500년 동안 잊혀졌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올 때부터 다시 역사 속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지정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으며 생활하는 동안 안식일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 훈련하시는 방법은 곧 만나를 육일 동안만 내려주시고 제 칠일에는 내려주시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날에는 하루만 지나도 만나가 부패했는데 제 육일에는 이틀치 분량을 거두어도 만나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40년 간 반복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칠일에 안식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을 것입니다.
(출 16: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16:26-27) 『[26]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칠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 제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이렇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안식일 지키는 일을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 후손들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왕국시대에 이르러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차례로 멸망시키십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혼혈정책과 이주정책에 의해 완전히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로 생활하게 됩니다.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에 대해서 경고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렘 17:27)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겔 20: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바벨론에 70년 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조상들의 과오를 살피고 반성하게 되는데 그들의 멸망 원인이 바로 안식일을 소홀히 여겼던 점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지도 아래 다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킵니다.
(느 13: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그렇게 포로귀환 후 수백년 세월이 흐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나타냅니다. 안식일을 준수하되 그 본연의 목적과 취지에서는 멀어지고 인간을 속박하는 과격한 금지 조항들이 만들어집니다. 그 조항들이 바로 안식일 39개조 금법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장로들의 유전(전통)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금법의 조항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려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하나님이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신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과도하게 속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안식일의 본질에 대해서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막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눅 13: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마 12:1-2)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안식일 준수 문제로 많이 충돌하고 변론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결코 안식일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적 안식일 준수 방법’에 대해서 부정하신 것입니다. 한국의 일반 개신교회에서는 안식일을 율법 시대에 속한 성일이므로 폐해졌다고 여기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고 신약 시대에는 일요일(주일이라고 표현함)을 개혁된 성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시간적으로 살펴볼 때 율법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창조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천지 창조 때부터 세워진 안식일이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존속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종말론에 대하여 교훈하실 때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돌이켜 보면 안식일은 ‘말세의 때’까지 존재한다는 뜻이며 그 때까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2)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는 집안의 종이나 가축 심지어 나그네까지 포함됩니다. 안식일 준수의 범위가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피조물의 입장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의 주인이라는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창조 질서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역대하 성경에는 심지어 토지가 안식년을 누림 같이 70년간 그 토지가 황무했다고 기록한 곳도 있습니다.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3)사람의 육신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몸은 너무 많은 일을 할 수도 없고 너무 오래 일할 수도 없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일하면 면역력도 떨어지고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사람은 육신으로 노동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노동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근심하고 염려하고 불안하고 불만족한 순간들이 더 많습니다. 사람은 삶 속에서 책임감, 좌절감, 절망감 등을 느낄 상황을 만나면 많은 피로를 느낍니다. 몸의 휴식이 필요하듯 마음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영혼과 육체가 쉴 수 있는 은혜의 창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세상에 속한 육신의 일을 잊고 몸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출 20: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 23:12)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4)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 5:17)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명령하신 일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그것은 천지창조 때 아담에게 명령하셨고, 출애굽 사건 때 선민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선민 이스라엘도 더 이상 바로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새 신분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새 생명, 새 신분의 선물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의 구원받은 성도가 새 피조물이라면 마치 새롭게 창조된 아담처럼, 새 신분을 얻은 출애굽 백성들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새 피조물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과거 천지창조의 시대에 아담과 하와에게 요구하신 것과 같고,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과 같습니다. 먼저 창조의 은혜를 주시고 나중에 안식일 준수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는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5)하나님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범죄한 인간은 부정한 존재입니다. 구원이란 부정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거룩이라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 쉼을 통해 부정한 것이 정화되고 회복되고 마음도 쉼을 통해 세속적인 욕망, 근심, 감정이 정화되고 새롭게 됩니다.
(겔 20:12)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6)영원한 내세의 안식을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천국을 시간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영원한 안식입니다. 성도가 지상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바로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영원한 안식과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땅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자는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땅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리는 자만이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땅의 성도는 안식일에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선행에 참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장차 우리가 하늘에서 영원히 누릴 안식의 연습이요, 훈련입니다.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은혜의 안식일을 이렇게 지킵니다.
위에서 살펴 본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요? 느헤미야 시대 이후 유대인들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과격한 적용을 통해서 안식일 39개조 금법이 형성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엄격한 금지 조항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목적과 취지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안식일의 노예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큰 전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참예수교회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유대인들이 지켰던 ‘율법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비와 사랑의 정신 아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씀에 따라 ‘은혜의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성일로 지키는 타 교단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본회의 안식일 준수의 모습은 미흡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성일로 주장하면서 정작 잘 지키지 않는 교회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안식일’이 아닌 ‘은혜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배에 참예하셨고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선행에 힘쓰셨습니다. 본 교회는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보여주셨던 모습대로 은혜 아래서의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시까지 현대 이스라엘인들을 지키는 것과 동일한 시간대에 안식일을 지킵니다. 세속적인 오락과 노동을 삼가고 가족들과 함께 예배에 참예합니다. 또 성도들은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분담하여 봉사합니다. 또 안식일에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연약한 신도들을 방문하고 교제합니다.
(사 58:13-14)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사 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