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제8항 안식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8항 안식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은 하나님께서 복주신 거룩한 날임을 믿는다. 단, 이 날을 은혜아래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념하고 내세의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지킨다.

안식일은 천지 창조의 시기부터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육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을 안식일로 지정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안식일을 주셔서 안식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도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현재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며 초대교회가 지켰던 본래의 기독교 성일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을까요? 또 안식일을 지키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1)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기념일입니다.

사람들이 유명한 인물,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마음으로 기념비를 세우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기념으로 일곱 째 날을 구별하셔서 안식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이날에 안식하셨습니다.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니이 천지창조 직후 안식일을 정하신 일은 곧 하나님이 천지 만물의 창조주라는 선포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조물주 하나님이 지키신 것처럼 자신도 그 날에 안식하면 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천지창조 때부터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안식일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2,500년 동안 잊혀졌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올 때부터 다시 역사 속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지정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으며 생활하는 동안 안식일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 훈련하시는 방법은 곧 만나를 육일 동안만 내려주시고 제 칠일에는 내려주시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날에는 하루만 지나도 만나가 부패했는데 제 육일에는 이틀치 분량을 거두어도 만나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40년 간 반복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칠일에 안식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을 것입니다.

(16: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16:26-27) [26]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칠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 제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이렇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안식일 지키는 일을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 후손들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왕국시대에 이르러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차례로 멸망시키십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혼혈정책과 이주정책에 의해 완전히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로 생활하게 됩니다.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에 대해서 경고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7:27)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20: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바벨론에 70년 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조상들의 과오를 살피고 반성하게 되는데 그들의 멸망 원인이 바로 안식일을 소홀히 여겼던 점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지도 아래 다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킵니다.

(13: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그렇게 포로귀환 후 수백년 세월이 흐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나타냅니다. 안식일을 준수하되 그 본연의 목적과 취지에서는 멀어지고 인간을 속박하는 과격한 금지 조항들이 만들어집니다. 그 조항들이 바로 안식일 39개조 금법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장로들의 유전(전통)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금법의 조항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려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하나님이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신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과도하게 속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안식일의 본질에 대해서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13: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2:1-2)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안식일 준수 문제로 많이 충돌하고 변론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결코 안식일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적 안식일 준수 방법’에 대해서 부정하신 것입니다. 한국의 일반 개신교회에서는 안식일을 율법 시대에 속한 성일이므로 폐해졌다고 여기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고 신약 시대에는 일요일(주일이라고 표현함)을 개혁된 성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시간적으로 살펴볼 때 율법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창조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천지 창조 때부터 세워진 안식일이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존속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종말론에 대하여 교훈하실 때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돌이켜 보면 안식일은 ‘말세의 때’까지 존재한다는 뜻이며 그 때까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2)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는 집안의 종이나 가축 심지어 나그네까지 포함됩니다. 안식일 준수의 범위가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피조물의 입장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의 주인이라는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창조 질서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역대하 성경에는 심지어 토지가 안식년을 누림 같이 70년간 그 토지가 황무했다고 기록한 곳도 있습니다.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3)사람의 육신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몸은 너무 많은 일을 할 수도 없고 너무 오래 일할 수도 없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일하면 면역력도 떨어지고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사람은 육신으로 노동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노동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근심하고 염려하고 불안하고 불만족한 순간들이 더 많습니다. 사람은 삶 속에서 책임감, 좌절감, 절망감 등을 느낄 상황을 만나면 많은 피로를 느낍니다. 몸의 휴식이 필요하듯 마음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영혼과 육체가 쉴 수 있는 은혜의 창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세상에 속한 육신의 일을 잊고 몸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20: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23:12)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4)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 5:17)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명령하신 일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그것은 천지창조 때 아담에게 명령하셨고, 출애굽 사건 때 선민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선민 이스라엘도 더 이상 바로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새 신분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새 생명, 새 신분의 선물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의 구원받은 성도가 새 피조물이라면 마치 새롭게 창조된 아담처럼, 새 신분을 얻은 출애굽 백성들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새 피조물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과거 천지창조의 시대에 아담과 하와에게 요구하신 것과 같고,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과 같습니다. 먼저 창조의 은혜를 주시고 나중에 안식일 준수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는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5)하나님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범죄한 인간은 부정한 존재입니다. 구원이란 부정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거룩이라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 쉼을 통해 부정한 것이 정화되고 회복되고 마음도 쉼을 통해 세속적인 욕망, 근심, 감정이 정화되고 새롭게 됩니다.

(20:12)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6)영원한 내세의 안식을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천국을 시간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영원한 안식입니다. 성도가 지상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바로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영원한 안식과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땅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자는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땅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리는 자만이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땅의 성도는 안식일에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선행에 참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장차 우리가 하늘에서 영원히 누릴 안식의 연습이요, 훈련입니다.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은혜의 안식일을 이렇게 지킵니다.

위에서 살펴 본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요? 느헤미야 시대 이후 유대인들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과격한 적용을 통해서 안식일 39개조 금법이 형성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엄격한 금지 조항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목적과 취지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안식일의 노예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큰 전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참예수교회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유대인들이 지켰던 ‘율법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비와 사랑의 정신 아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씀에 따라 ‘은혜의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성일로 지키는 타 교단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본회의 안식일 준수의 모습은 미흡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성일로 주장하면서 정작 잘 지키지 않는 교회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안식일’이 아닌 ‘은혜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배에 참예하셨고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선행에 힘쓰셨습니다. 본 교회는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보여주셨던 모습대로 은혜 아래서의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시까지 현대 이스라엘인들을 지키는 것과 동일한 시간대에 안식일을 지킵니다. 세속적인 오락과 노동을 삼가고 가족들과 함께 예배에 참예합니다. 또 성도들은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분담하여 봉사합니다. 또 안식일에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연약한 신도들을 방문하고 교제합니다.

(58:13-14)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안식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은 안식일은 율법과 함께 폐지되었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안식일을 반포하시는 것은 맞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명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20:8)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신5:13)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할 것은 안식일은 율법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정하신 날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1-3)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할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24:2)

따라서 안식일은 구약시대에만 한시적으로 지켜야 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변함없이 지켜야 하는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3)

많은 주일일 준수자들은 기독교인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음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1)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의 피와 주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3:25,28)

2) 성도는 십계명을 폐할 수 없고 계명을 범해서도 안 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3:31)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6:15)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7)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7:19)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2)

율법의 규례는 십자가에 의해 폐해졌으므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2:15)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2:14)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2:16)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9:10)

우리는 형식적인 방식으로 의식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완성은 십계명을 제거하거나 오용하거나 왜곡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율법의 ‘정신’을 지켜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지키는 것은 율법의 형식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문자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새겨진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7-18)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마5:21-23)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8: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약2:10-12)

3) 성도가 은혜 아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약에서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출35:1-3)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 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찌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니라 (민15:32-36)

은혜 아래서의 안식일 준수는 속박과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12:1-2)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3:1-2)

에덴동산에서처럼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치료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안식일을 통해서 주님이 공급하시는 영육의 축복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출16:23-25)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눅12:9-13)

  (요5:1-18)

주일 준수의 시작이 언제인지 알고 계십니까?

주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았다면 누가 폐했다는 말일까요? 어떻게 ‘주일’이라고 부르는 일요일이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대치했을까요?

1) 로마 카톨릭이 안식일을 변경할 권한을 주장함

➀ 로마 카톨릭에서는 “하나님의 교회(즉 카톨릭 교회)는 안식일 성회를 주일(일요일)로 분별해서 변경할 권한이 있다.”고 했다(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Donovan translation, 1829, p. 267)

➁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 일요일 휴무로 변경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가 이양된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개신교가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Mgr. Segur, Plain Talk About the Protestantism of Today, p. 213).

2) 일요일 준수가 시행됨

➀ A.D. 321년 3월 콘스탄틴 황제의 포고에 의해 정해진 굴욕적인 일요일 제정은 기독교 세계에서 계속 시행되었다.

➁ 일요일을 일컫는 ‘주의 날’이라는 용어는 A.D. 387년까지 첫 법령 이후 두 세대 동안 공식적인 결정이 나타나지 않았다(“Sunday,”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Vol. 11, p. 147).

➂ 일요일 준수는 세속 권력의 공식결정에 의해 일요일 활동이 규제됨으로써 점차적으로 기독교계에 자리잡게 되었다.

3) 주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없음

➀ “안식일 대신 일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서 준수하라는 어떤 명령이 존재하는가? 전혀 없다. 그리스도도, 사도들, 그리고 사도교회 성도들도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대신해서 일주일의 첫날을 기념하지 않았다”(New York Weekly Tribune, May 24, 1900).

➁ 에드워드 히스콕스(Dr. Edward T. Hiscox) 박사는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날은 일요일은 아니다. 그러나 부활의 개선과 함께 안식일은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전환되었다고들 흔히 이야기한다.…… 그런 전환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는가? 신약 성경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The New York Examiner, November 16, 1893).

4) 카톨릭이 십계명을 변경함

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제 사계명을 변경하여 안식일을 폐하고 일요일을 성일로 대치했다”(N. Summerbell, History of the Christians, p. 418).

➁ “일요일은 천주교의 관습이다. 그래서 천주교의 원칙에 입각해야 이 날의 준수를 변호할 수 있으며 ……성경은 시종 주마다 드리는 대중예배를 매주의 끝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하는 것에 변호하는 구절은 단 한 마디도 없다”(Catholic Press, Sydney, Australia, August 25, 1900).

➂ “카톨릭 교회는……신성한 사명에 의거하여 토요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였다”(Catholic Mirror, Baltimore, September 23, 1893).
➃ “질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대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질문: 왜 우리는 토요일을 지키고 않고 일요일을 지키는가?

대답: 라오디게아 회의에 의해(주 후 364년) 천주교회가 이 의식(儀式)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고쳤기 때문에 우리는 일요일을 지키고 토요일을 지키지 않는다.”(Rev. Peter Geiermann, C.S.S.R.,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 3rd edition, 1913, p. 50, a work which received the “apostolic blessing” of Pope Pius X, January 25, 1910).

➄  “일곱째 날인 안식일은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폐하는 것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에 의해 지켜졌었다. 라오디게아 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주의 날을 준수할 것을 결정하였다”(Prynne’s Dissertation on the Lord’s day, pp.33, 34, 44).

5) 카톨릭은 계명을 변경할 권세가 없다.

“질문: 로마 카톨릭이 축일의 계율을 제정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는가?

대답: 로마 카톨릭이 그런 권세가 없다면 모든 현대의 맹신자들이 동의하더라도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카톨릭은 일곱째 날인 안식일 준수 대신에 첫째날인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 성서적 권력은 없다”(Rev. Steven Keenan, A Doctrine Catechism, p. 174, New York: Edward Dunigan & Brothers, 1851).

사도들은 안식일을 준수했습니까?

많은 교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을 폐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폐했다는 성경적 증거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과 주님의 제자들은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킨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17:1-2)


1)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13:14-15)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 13:44)

2)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행 16:13)

3)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실라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 17:1-2).

4) 고린도에서 바울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 18:4)

5) 예루살렘 총회에서의 야고보

야보고는 총회에서 증거하였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행15:21)

6)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24:20)

주 후 70년경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주님은 제자들이 여전히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참예수교회는 왜 주일대신 안식일을 지키나요?

성경의 초대교회(사도교회)가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입니다(행20:7). 안식일은 일곱째 날이며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1-3)

, 로마력에 따르면 현재의 토요일입니다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눅23:56-24:2)

많은 교회들은 여전히 일요일을 준수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초대교회에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지킨 증거는 없습니다. 아래의 성경본문은 일요일 준수의 증거로 인용되는 말씀이나 사실은 일요일 준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19)


(요20:19)은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단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숨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주일의 첫날에 제자들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히 주님이 팔일 뒤에 제자들 앞에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요20:26)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행1:3)

2)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7)

초대교회에서 떡을 떼는 날이 정해진 것이 아니었고 성전에서 매일 성도들이 모여 떡을 떼기도 했으며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6-47)

집회가 길어진 것은 바울이 다음 날 떠나고자 했기 때문이고 밤중까지 말을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7)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행20:11) 이것은 송별예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어떻게 제자들이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준수했다고 주장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안식후 첫날이라는 표현은 안식일을 준수했다는 의미입니다.


3)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전16:2)

자세히 분석하면 논리의 비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 구절은 일요일에 집회를 했다거나 헌금을 드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일주일 동안 얻은 소득에서 헌금을 모아둠으로써 바울사도가 왔을 때에 연보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4)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1:10)

자세히 살펴보면 ‘주의 날’이란 주님이 부활한 날(일요일)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의 주의 날은 마지막 때와 관련된 특별한 날을 가리킵니다(살전5:2)(살후2:2)(벧후3:10).

주 예수는 일요일 준수를 명령한 적이 없으며 일요일을 ‘주의 날’로 거룩하게 지켜야 되는 성경적 근거도 없습니다. 반면 주님과 사도들은 은혜 아래서의 진정한 안식일을 지키고 준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