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희준 형제)

 

안수를 받기 위해 걸어 나가는 길. 저의 발걸음마다 눈물이 터졌습니다.  뜨겁고 묵직한 것이 복받쳐 오르며 모든 성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흐느껴 울게 했습니다. 고작 몇 걸음이지만 거북이 엉금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오는 제 모습에 많은 자매들이 “얼마나 아프면..” 했습니다. 너무나 쉬웠던 이 예배의 자리에 간절함으로 다시 서게 해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증하고자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사건 

지난 3월이었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 평소와 같이 일요일에 출근하였습니다. 저는 일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바쁜 일상 중에 운동도 챙겨야 하기에 일요일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일과 운동까지 해결하곤 했습니다. 안양천을 따라 구로 사무실로 이동하던 중. 자전거를 탄 어린아이가 아주 갑작스럽게 저의 자전거 앞에 가로질러 끼어들었습니다. 힘을 다해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저의 자전거는 앞으로 쏠려 엎어지고 말았고, 제 머리는 바로 땅에 받아 버렸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날 쓰고 나갔던 고글에는 피가 맺혔었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무사하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급히 응급차를 불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함은 다시 막연함으로 

일요일의 응급실은 혼잡하고 대기 시간도 길었습니다. 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제를 맞고 호흡은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걷기가 힘이 들었지만, CT 촬영 후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퇴원 조치를 하였습니다.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근육이 놀라서 그럴 것이라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란 생각과 달리 새벽에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침만을 기다리다 인근 병원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전문의는 엑스레이에서 등뼈에 뼈가 뭉개져 있는 것을 어렵게 발견했습니다. 상태가 심각하여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심각했다면 곧장 하반신 마비가 되었을 텐데. 아주 다행인 줄알라고 했습니다. 큰 대학병원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 작은 병원에서 발견해 준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함과는 달리 의사 선생님과 대화는 항상 쉽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인 대화 유형이었고, 저의 질문과 의견 등에 냉담하셨습니다. 의사의 처방은 3개월간 침대에 누워서 통나무와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생활이라 실감 되지 않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뭐든 감수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MRI 촬영 후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수술의 필요가 있지만, 수술하기에는 위험하고 본인은 할 수도 없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고민 끝에 전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기약 없이 긴 시간

수술과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병원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가까운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이동했지만, 응급실 대기만 12시간 이상 되어 입원이 불가했습니다. 다시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또 이동했습니다. 응급실에서 MRI를 확인한 전문의는 환자분은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는 수술할 전문의가 없으니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막연함 속에서 그토록 듣고 싶던 똑 부러지는 표현이었습니다. 명확한 의견만으로도 저희 부부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천 받은 한 척추 수술 전문병원으로 또다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동한 병원에서도 MRI 상태를 보고서 의사들끼리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위험해서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 줬습니다. 아침에 나섰던 길인데 시간은 저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엠블런스(구급차)를 타고 이동한 지라 어지럽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행히 이 병원에서는 입원 수속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병실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운동복 차림의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서둘러 수술을 해야겠다고 하셨고, 간호사 선생님께 곧장 스케줄을 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응급수술로 다음날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휘파람 불며 할 수 있는 수술은 아니지만 못할 수술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마음 졸여온 저에게 의사 선생님의 표현은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

수술은 아주 이른 아침에 잡혔습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수술 후에 대한 설렘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히 주님께서 잘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저는 비닐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도통 알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잠시 후 우주복을 입은 간호사가 와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리셨어요!”  황당하게도 나 홀로 코로나 전용 병실에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렸던 거 아세요? 우리 병원이 피해가 막심합니다.”  코로나 신속 항원 결과에서는 음성이었지만, 수술 들어간 후 아내에게 맡겨 둔 휴대전화로 코로나 정밀검사 결과 문자가 왔습니다. 김희준 양성. 수술 후 병원은 난리가 났습니다. 병원 장비들도 못 쓰게 되었답니다. 법적으로 코로나 환자는 수술할 수 없으니 만약 수술을 조금이라도 늦췄거나 양성 문자가 조금이라도 빨리 왔다면, 이날 수술은 못 하게 되었을 테고 골든타임(적기)을 놓쳤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천운을 타고났다며 말씀하셨습니다. 천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심에 설레는 하루하루 였습니다. 고통 중에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은 정말 빨랐습니다. 수술한 지 불과 2주 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감정

퇴원 후 안식일이 되어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느낄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먼저는 다시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는 순간에 벅찬 감정과 하염없이 흐느껴졌던 마음은 아직도 무어라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흐느낌 속에는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성도들의 그 온기와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하염없이 이곳, 저곳 병원을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수술실에 있던 시간에도, 모든 성도님이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의 위로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냈던 주님 안의 형제·자매의 사랑을 아주 충만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벅차게 제 온 마음으로 가득가득 안겨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사랑이 가득한 성도님들이 모인 거룩한 성전이라는 마음 또한 생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렇게 흐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연이 아닌 섭리 

병원 생활을 하면서 기도와 묵상 가운데 지난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기도 합니다. 그 고난을 잘 이겨내고 나면 결국 우리가 깨달을 것을 깨닫게 되며, 바로 세울 것은 바로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안일하였습니다. 보기에 평범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켰고 봉사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지 않았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다른 마음을 찬찬히 보게 되었습니다. 일 욕심이 많은 저에게 신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안식일을 지킬 때도 많았습니다. 안식일 예배 때도 머릿속으로는 일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고, 안식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안식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사고 당일도 호렙산 연습이 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하루였습니다. 일이 중심이었던 삶. 저에게는 일이라는 우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라며 합리화하며, 정당화 시키며 일이 중심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선순위라는 작은 그 것에 제 신앙을 갉아먹는 아주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바로 외식하는 자구나” 함을 뼈가 저리게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깨우칠 기회가 없었겠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내가 빠져 들고 있었구나! 하나님은 이 것을 깨우치기 위해 기회의 시련을 주셨구나. 그 안에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주셨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 하신다는 것을 정말 등뼈가 아프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배의 소중함, 안식일의 소중함, 신앙생활의 소중함, 교회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망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와 걱정 많으셨던 부모님 앞에 죄송스럽지만 “이 사고가 나길 잘됐다”라고 저는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앙생활에 경건히 임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이번 사고는 워낙 크게 맞은 지라 깨달음과 변화됨이 오래 갈 것이라 기대하지만, 나약한 인간으로서 흐트러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술 후 등에 박힌 핀은 이제 평생 박힌 채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평생 간직할 이 등에 꽂힌 핀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증표라 생각합니다. 소망이 흐트러지는 매 순간 그때의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등에 박힌 핀을 증거 삼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고는 나에게 재앙이 아닌 참 평안을 얻게 하였고, 참된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기회를 주시고 참 소망 안에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서 29장 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