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내일의 희망을 가졌나요? (렘 32:3~15)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4년 3월 2일

 

(3)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취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 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운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4)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시드기야가 나의 권고할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5) 너희가 갈대아 인과 싸울지라도 승리치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가로되 네가 어찌 이같이 예언하였느뇨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 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땅에 있다는 것은, 부족함이 많고 흠결투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서 소망을 찾으시고, 즐거움을 느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을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격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나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자살을 생각하게 되지만, 같은 사람이 소망을 가지면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언제든지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소망이 있다면 무인도에서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가운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흙탕물 가운데서도 연꽃은 피웁니다. 우리도 연꽃 같은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본문은 희망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렘 32:1)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년 곧 느부갓네살의 제십팔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시드기야의 제 십 년에 하나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포위당한 지 오래되었을 때 이런 멸망의 예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예언으로 인해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었지요.

(렘 32: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렘 32: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렘 32:8) 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하나멜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땅을 팔았습니다. 

 

(렘 32:9~15) (9)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본문은 소망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소망의 교훈

 1.소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멜은 ‘너를 위하여’ 밭을 사라고 했지만, 정말 그는 예레미야를 위해서 파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멸망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멜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 밭을 샀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첫째로, 하나멜을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속은 것이 아니었지요. 살기가 어려워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나 살 궁리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어렵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백성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기가 어려워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고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까지 돌아봐 주실 것입니다. 내 것을 힘써 나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나만 잘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 외면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멜의 삶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렘 32:8)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희망을 잃지 않은 이유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멸망할 나라의 땅을 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해받을 각오를 하고 그 땅을 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레미야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을 보시고 하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큰 축복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3. 내일에 대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렘 32: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내일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왜 예레미야는 명령에 순종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땅 매매를 명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겠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회복해 주시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절망할 거라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어려운 순간에 희망을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에 보약이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 멀리 있을 때 아름다운 것과도 같지요. 축복도 오랜 고통의 시간 후에 오는 축복이 내게 더 축복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눈앞의 축복만 진짜 축복은 아닙니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시련이 있어야 튼튼한 뿌리가 형성됩니다. 시련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삶에 어려움과 고통이 온다고 삶을 포기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꿈이 미완성이기에 자신을 독려하게 됩니다. 꿈을 다 이룬 후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무기력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희망이 중요합니다. 희망을 품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아름답고, 그의 삶이 더 힘찬 것입니다. 희망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희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는 것이 비극적인 일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참된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쇠똥구리는 은하수를 보고 길을 찾아갑니다. 땅에서 똥을 굴려도 그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소망의 근원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연이 연줄에 매여있을 때가 행복하겠습니까, 연줄이 끊어져 하늘로 날아갈 때가 행복하겠습니까? 연줄이 끊어지면 연이 날지 못합니다. 바로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여있는 것을 속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연결된 끈이 있어야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매여있지 않으면 사람도 땅에 처박히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연줄을 끊어버리면 그 연은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바로 땅에 곤두박질치게 될 것입니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들이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소망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을 붙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소망을 노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