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라! (마 18:1-4)

[설교자] 이엘리사 목자

[설교일] 2022년 9월 3일(토) 안식일 예배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1-4)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

 

어느 날 주 예수님께 제자들이 한 질문입니다.

주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주님 말씀에 따르면, 제일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천국에서 누가 큰 사람이냐?’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 입니다. 그럼 우리가 그 천국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우리의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도 상관이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에겐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세상에서, 사회에서 오래 살다 보면 생각하는 게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사회의 일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 천국의 분깃을 소유하려면, 누구든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신앙상 노력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럼,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 어린아이처럼 변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1. 겸손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어린아이의 특색 중 하나는 겸손, 곧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누구라도 어른이 되면 겸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장성한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1)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긴다.

‘내가 온 것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다.’(마 20:25-28)

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겸손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야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됩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길 원한다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겸손해야 합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한다.

주 예수께서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 입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십일조를 드리고 금식기도를 하며 의(義)를 많이 행하는 사람이라고 드러내면서 옆의 세리와도 같지 않음에 대해서도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그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다만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만 하나님께 구했습니다.(눅18:13)

그 두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 주 예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셨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이 세리가 저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그리고 이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8:14)

잘못한 것에 대해 항상 하나님께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살아가는 자!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이게 바로 겸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사람은 회개의 기도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집니다.

어린아이의 특색은 무척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겸손한 사람은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자기 죄를 시인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3) 하나님 말씀을 겸손하게 받고 순종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하나님의 나라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십니다. ’ 이것은 참말입니다. 세상의 학문은 두뇌가 총명할수록 더 쉽게 그리고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진리는 하나님께서 나타내주셔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성경 말씀을 배우는 사람들을 보십시요.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쉽게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 같은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나타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많은 재물, 많은 지식,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 큰 성취를 이룬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럴지라도 만약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된다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가 그랬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병거에서 성경 중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행8:29-30) 그 내시가 대답했습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 (행8:31) 그는 자기가 탄 병거에 빌립을 청하여 가르침을 받았습니다.(행8:35) 이는 그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대단히 겸손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빌립은 그에게 이사야서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주고 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2.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

 

1)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운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1-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면 이제 막 출생한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본능적으로 젖을 찾습니다.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가 젖을 잘 먹으면 부모가 몹시 기뻐합니다. 그 아이의 생명이 점점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울음소리도 커가고 체중도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그러면서 외모도 점점 부모를 닮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젖 먹기를 싫어하면 부모는 심각한 상태라 여기고 걱정합니다. 아기의 생명이 약해지고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출생한 어린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순전한 젖을 먹는 걸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아이가 살고 점점 더 크게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안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난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영(靈)이 살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장성하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부지런히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먹는 사람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영(靈)의 생명이 강건하게 보전됩니다.

그의 속사람이 튼실하게 성장합니다.

그럼으로써 천부(天父)를 닮아갑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주님처럼 공의(公義)와 성결(聖潔), 사랑과 자비, 온유와 겸손의 모습을 갖습니다.

반대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먹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세례받은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고 심지어 30년 혹은 40년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옛사람입니다. 사고방식, 가치관은 물론 성품 역시 옛사람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기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열심히 먹는 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성경 읽는 걸 매우 좋아하고, 말씀 듣는 걸 매우 좋아하고, 하나님의 말씀 생각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면 확실히 그런 사람의 진보는 무척 빠릅니다.

 

2) 개인 성경 읽기와 묵상에 힘쓴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 119:147-148)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길을 가면서도, 잠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을 결코 실망케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39:17)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나의 지식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오늘날 필요한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매우 빠르고 쉽게 아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얻을 수 있느냐입니다.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 139:18)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우리에게 주신 감동을 생각하면 점점 더 많은 걸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는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순전한 젖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에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4-16)

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주님께 나아오자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는 사람으로선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이적(異蹟)입니다. 그 일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이 있어서 이 일을 똑같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기쁨으로 소리 지르며 말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는 대단히 신기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 주님을 기뻐하며 찬양한 것 입이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매우 분노했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찬미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는가요? 그들 서로가 각기 다른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가진 데 비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뜻 입이다.

다윗과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을 때도 그랬다. 많은 부녀자가 나와서 그들을 환영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삼상 18:7)

전쟁터에서 죽인 적(敵)의 수가 천천이든, 만만이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평안을 얻었다는 게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과 다른 마음을 가진 사울은 그 말을 들을 때 기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 대한 적개심을 품었습니다. 그날부터 그가 다윗을 주목해서 죽이려 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고귀함이란 다름 아닌 바로 순수함에 있다는 것을.

 

4. 하나님 안에서 고요하고 평온함을 누린다.

 

우리에겐 한 분의 천부(天父)가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지 알고 있는가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이는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사랑에 비할 수 없고, 부모가 자녀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고 할지라도 하늘 아버지와는 비할 수 없다는 말씀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 안에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어머니에 대해 믿음을 갖고 그 품 안에 있어서 심령이 고요하고 평온한 것과 같습니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131:2-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그걸 확실히 알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고요하고 평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자!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자!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열심히 먹자!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하자!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품 안에서 고요하고 평온함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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