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설교자] 이엘리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시편 90편의 표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 시대에 영성이 높은 사람에게 주어졌던 칭호입니다. 모세가 그중 한 사람이며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 사람입니다.

오늘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그가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시90:3-11)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 것에서 부터 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생에 대해 바르게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올바른 데서 벗어나 제각각이 됩니다.

시편 90편 1절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는 모세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유를 매우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훗날 창업해 사장이 되는 걸 꿈꾸고 자녀들은 장성하면 집에서 나가 독립하려 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삶에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걸 좋아합니다. 이러한 관념이 확장되면 신앙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자(信者)가 되면 자유를 잃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면 자기 일생이 그의 속박 아래 놓여 마음껏 죄를 지으면서 살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기에 말이나 행사에 모두 능했습니다.(행7:22)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자기 삶에서 성취한 이력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40세까지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40년은 양을 쳤고 그의 마지막 생애 40년은 광야 길을 걸었습니다. 실로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해 내린 최후 결론이 있는데 사람에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셔서 우리를 주관하며 관리하셔야 하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 ‘하나님은 나의 주(主)이십니다.’

“주는 대대에”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회성으로 짧게 끝난 게 아니라 대대로 계속 이어져 온 것입니다.’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핵심 근거가 되시는 분입니다.’

“주는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의 부모, 배우자,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모세의 이 기도는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은 완전히 나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인생이야말로 가장 의의가 있고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後)

영원 전에도, 영원 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비하면 사람의 삶은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릴 정도로 매우 짧고 지극히 미세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는 말입니다.(약4:14)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시90:2前)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창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① 무소불능(無所不能) –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② 무소부지(無所不知)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③ 무소부재(無所不在) –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자신의 주재(主宰)로 삼는 것은 은혜이며 복입니다.

시편 90편 3-11절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우리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매일의 생활 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主, Lord)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의 모든 단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목(眼目)으로 본

인생의 실상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90:3)

하나님은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의 가치가 티끌과 같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느 날엔가 티끌로 돌아갑니다. 사람마다 육신을 갖고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리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핀다 할지라도 그 몸은 끝내 티끌로 돌아가고 맙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지난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생은 그렇게 짧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시90:5前)

폭포수의 물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쏟아져 내린 물, 한번 지나가 버린 물은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 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사실상 두 번째 기회란 없는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때 그때 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다 갈 뿐입니다. 세상 삶의 종착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남아있는 삶의 시간은 점점 더 짧아져 갑니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시90:5後)

잠은 자는 것은 밤에 꿈을 꾸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때 우리가 잠을 자면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그게 단지 꿈이었다는 걸 알고 허탈감을 느낍니다. 사람은 청소년 시절엔 나름 높은 이상(理想)을 갖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을 돌아 보면 그게 한낱 꿈에 불과했음을 깨닫습니다.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는 대단히 큰 괴리가 있습니다. 우리 삶이 잠깐 자는 것과 같다는 건 그래서입니다.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5後)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시90:6)

꽃이 왕성하게 피어난 때에는 최고로 가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꽃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전성기에 있을 때가 실은 쇠락기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 풀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크고 귀한 것을 성취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떨어져갑니다.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버립니다. 누구든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시편 90편 7-9절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걸 대다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시90:8)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데,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란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지은 죄이기에 그걸 다른 사람이 알아채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어떤 죄라도 밝은 빛 가운데 모두 드러내십니다.

사람의 죄가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시90:7)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시90:9)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최고로 두려운 날을 맞이합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이며, 하나님의 분노를 대면하는 날입니다.(고후5:10, 계6:15-17)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시90:10前)

인생의 년수가 70, 80에 불과하다면 자랑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는 수고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체가 매우 고생합니다.

둘째는 슬픔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에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서 70, 80년이 지나면 최후엔 무엇을 얻을까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後)

이게 바로 우리 인생의 실제 모습입니다. 누구도 그걸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6가지 사항

이렇게 인생의 실상을 똑바로 깨닫는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모세는 시편 90편 12-17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6가지를 알려줍니다.

  1.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라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는 ‘우리 날 계수함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거리는 보통 km, 마일(mile) 등으로 나타냅니다. 그에 비해 인생의 거리는 년수로 계산합니다. 50년, 70년, 100년 등으로 사람의 일생 여정을 표시합니다. 공통점은 그 여정마다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인생의 종착지,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바로 천국입니다. 중요한 건 그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처,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천국(天國)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과 ‘성령 기도’입니다.

이 지혜는 GPS처럼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참 지혜가 목적지를 향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수시로 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끝까지 가다 보면 하나님의 거처, 우리 목적지 천국(天國)에 들어갑니다.

  1.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시90:13)

둘째는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면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1.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사람마다 일평생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에 대한 방향을 잘못 잡습니다. 물질적 조건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족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주의 인자(仁慈),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셔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 평생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1.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5)

이는 우리 인생이 직면하는 현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곤고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 120년의 세월 중에 80년 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에는 죄로 인해 겪는 것이 있고 의로 인해 겪는 고난도 있습니다.(벧전2:20) 그 어느 것이든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왕궁을 떠났을까요?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무슨 이유로 광야 길을 걸었을까요? 당대에 그가 사명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히11:24-26) 이것이 그가 80년 동안 고난의 삶을 산 이유입니다.

시편 90편 15절에서 모세가 기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곤고케 한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면 고난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삶의 기쁨은 이렇듯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면 고난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면 고난도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인생은 모세의 인생과 같습니다. 훗날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에게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함께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눅9:30-31)

모세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게 아닙니다. 기쁨을 주셔서 어떤 고난이든 잘 대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1.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본 절에서 대상자는 둘입니다.

첫째는 “주의 종들에게”입니다. 현세대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저의 자손에게”입니다.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를 말합니다.

그럼 모세의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주의 행사를 현세대에게 나타내시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의 신앙에 귀한 체험이 됩니다. 그 체험을 현세대가 분명하게 갖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삶에 최고의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 직업으로 버는 돈은 사실 살아가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간을 많이 써야 할 곳은 돈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신앙을 돌보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게 진정 가치 있는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최고로 보배로운 것을 그들에게 남겨주는 것입니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이는 우리의 신앙에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체험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재능이 많습니다. 모두가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원합니다. 이것도 물론 영광입니다. 다들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달라집니다. 세상에서의 성취나 성공으로 영광을 얻는다는 게 분토(糞土)와 같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최대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우리 자손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럼 우리 하나님은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이것을 신앙의 전승(傳承)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시길 희망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산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그걸 향해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단지 건강, 학업, 직업만을 위해 구할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세상에서 잠시 잠깐만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의 영혼의 눈이 떠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길 위해 구해야 합니다. 뜻을 세워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 된 우리가 꼭 해야 할 중요한 기도입니다.

  1.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90:17)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자기의 총명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에 많은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맺는 말

모세는 인생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그 깨달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여섯 가지의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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