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느니라! (롬 5:11) 

[설교자] 이엘리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8일(토) 안식일 예배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 11)

 

신앙생활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하나님과 화목(和睦)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의하면 우리 모든 인간은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성도로서 흰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의(義)로써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됩니다.

다음 단계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신앙으로 즐거움을 얻고 누리는 것에도 두 단계가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육신을 갖고 사는 이 세상 삶의 갖가지 문제들과 관련하여 갖는 신앙 체험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내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것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해결해주신다.

내가 약하고 곤고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힘을 주신다.

내가 고통스런 일을 겪고 상처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시고 치유해주신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느끼며 나를 인도하시는 삶의 방향을 깨닫는다.

 

2. 하나님 바로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하나님은 어느 때든 항상 살아계십니다.

우리 신앙이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데까지 이른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걸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이 공허한 것이 되게 역사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만족이 없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심령은 공허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공허해지면 하나님께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을지라도 마귀의 공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세상 쾌락, 특별히 죄 중의 쾌락으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하나님을 진정 즐거워한다면 세상의 것들은 우리가 추구할 게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 예수님을 부담스러운 짐이나 속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신앙 안에서 참 자유와 평안, 참 희락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 사람이 빠져드는 마약, 술, 과도한 오락 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면 다른 게 사실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이미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을 나의 즐거움으로 삼는 것은 우리 신앙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세상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져 길을 걷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전처럼 음식이 맛이 없고 소화도 잘되지 않습니다. 밤에는 잠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코 즐거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25)

 

욥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그가 굳게 믿은 게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 ”

나에게는 나의 구원자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그 구원자를 언제 보게 된다는 것인가요?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 19:26)

 

“내가 육체 밖에서”라는 말은 ‘내가 세상을 떠날 때’를 뜻합니다. 하늘나라로 올라가 하나님을 뵙는 때입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자기 생애의 끝자락에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어땠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 ” (빌1:23)

 

그는 자신이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닙니다. 주 예수와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최후 단계의 즐거움은 하나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일 3:1)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가요? 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사랑입니다.

 

첫째는 우리를 하나님께 속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매우 존귀한 신분입니다. 성령이 바로 그에 대한 증거입니다.(롬 8:16)

 

둘째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이 주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낮고 천한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합니다.(빌3: 20-21)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죄를 짓는 몸이 죄를 짓지 않는 몸으로, 유한한 몸이 무한한 몸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고전15: 42-44)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하고 천국에 들어가 주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누리는 것! 우리가 가진 최대의 소망입니다.

 

2. 환난의 신앙적 의미를 깨닫고 환난 중에 소망을 갖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 (롬 5:3전)

 

환난(患難)은 사실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환난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으면 그 환난은 정말 이겨내기가 어렵습니다. 주 예수님은 환난을 겪는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환난은 …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은 성도를 쇠락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환난에는 출구가 있습니다. 죽 가다 보면 결국엔 빠져나오는 길이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마침내 그 환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 소망을 이루기 전에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후-4)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는다. 여기서 연단은 영문 성경에 ‘character’(인격, 개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환난을 겪음으로써 우리의 개성, 인격이 변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개성이 환난을 통해 어떻게 변화한다는 말인가? 주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거쳐 우리의 성품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환난을 겪기 이전에는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육신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신앙 수준이 매우 낮았습니다.

그런데 환난을 겪고 나니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예배 시간에 전해지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을 다하여 듣고 수용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인생에 대한 통찰력, 신앙에 대한 앎이 매우 깊어지고 활발해집니다.

 

보통 신앙인의 경우, 환난을 겪는 게 없으면 신앙의 성장이나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환난을 겪음으로써 하나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환난을 통해 다른 사람의 연약함, 어려움,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환난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빌1:12-14) 그는 환난의 열매는 매우 큰 희락(喜樂)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빌3:1, 4:4) 자신의 환난으로 인해 감옥 밖에서나 감옥 안에서 생명의 참 복음이 더 활발하게 전파되는 계기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희락으로 충만했습니다.

환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희락을 주시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의 영성을 각성케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3. 하나님 말씀이다.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시119:16)

 

하나님 말씀 가운데 희락(喜樂)이 있습니다.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깊어집니다. 성경은 위대한 책이라는 걸 체감(體感)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든 영(靈)의 생명입니다. 우리 심령을 촉촉하게 적시고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합니다. 대단히 신비로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을 자주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는 수많은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 생명(生命)과 참 자유(自由)를 주고 참 희락(喜樂)과 참 복(福)을 줍나다.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시119:49-50)

 

4. 성령 충만이다.

 

성령 충만하면 희락(喜樂)이 있습니다. 성령은 성도에게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중 하나는 ‘사랑의 증가’이다. 오래 참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관용하고, 친절하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증가하면 희락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희락(喜樂)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성도에게 희락을 주는 기름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여 성령이 충만하면 희락(喜樂)을 얻어야 합니다.(갈5:22)

 

5.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의 희락(喜樂)은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아는 데에서도 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 희락이 있습니다. (시50:14-15)

따라서 매일 희락(喜樂)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아는 사람은 온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생활하는 가운데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맺는 말

 

오늘날 우리 삶은 무척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떤 것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대단히 바쁩니다. 이런 삶에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정된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헤아려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 마음에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려면 안정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른 아침, 침상에서 일어나 먼저 기도한다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평온해지고 하나님께 감동을 받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러면서 읽는 하나님 말씀은 우리 마음에 깊숙이 들어옵니다. 이로써 우리의 믿음은 진보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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