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인천교회 정우준 형제님의 두 번째 간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 더욱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깨닫습니다. 성도님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정우준 형제님의 간증문도 읽어보시고 영상도 시청해보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정우준 형제 간증(2023.09.28.)

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안산교회 성도님들 앞에서 간증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인천교회 성도님들의 도우심과 관심으로 제가 힘과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서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추석 다음날 입니다. 주님 아래 행복한 추석 보내시고 계시죠?

물론 며느리들은 힘든 하루 하루였을 것 같습니다. 저의 아내인 한은애 자매도 힘든 이틀 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휴 중 안식일이 있어 쉬어감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정우준 형제입니다.

제가 간증을 7월 29일에 하였고 이어서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을 갖는 날입니다.

사실  두 번째 간증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목자님께서 9월 초 일요일 저녁에 전화하셔서 간증을 부탁하셨습니다. 사실 추석 연휴라 순간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자님께서 이렇게 저녁에 전화하시는 것은 이유가 있다’ 고 생각하여 순종하기로 하고 “바로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은 하였지만 ‘무엇을 준비하지~’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뱅뱅 맴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삶 자체가 간증거리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이렇게 존재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몇 번의 기회를 주신 이 세상을 더 이상 구원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셨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 없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가 있고 이렇게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간증을 좀 정리하고 저의 두 번째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번 시간에 총 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1(첫번째). 하나님의 선택에서는 하나님의 인도로 저의 아내인 한은애 자매의 도움을 받아 제가 참예수교회에 들어온 과정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2(두번째). “성령이 나와 함께함” 에서는 참예수교회를 다닌지 5년만에 성령을 받은 과정을 이야기 하였으며

3(세번째). “어머니 전도 과정”과

4(네번째). “신앙을 선택한 준혁이”에서는 대학은 가지는 못하였지만 안식일 지키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본인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아들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지막 5(다섯번째).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소주제로 한자매의 직장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1. 오늘의 첫 주제는 십일조입니다.

저는 2001년에 2월에 한은애 자매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는 30살 한은애 자매의 나이는 27살입니다. 지금 시대로 생각하면 빨리 결혼을 한 것 같지만 그때는 제 나이에 한 것 같습니다. 저희는 서울 성북구 종암동이라는 곳에 신혼집을 마련해서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사회 초년생이라 모아둔 돈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과 집에서 보태준 돈을 합해 3천만원이 있었고 한자매가 500만원 보태 3.500만원 짜리 반지하에 살았습니다. 그때 당시 방 두칸짜리 지상의 전세는 5,000만원 정도였습니다. 반지하에 사니 비가 오면 변기로 물이 역류를 하였고 집주인이 하수구 주변에 낙엽을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였습니다. 집 없는 서러움이라고 할까요~~~그래도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결혼하기 전에는 서울 송파구 소재의 직장을 다녔고 결혼한 지 2개월 만에 제가 부천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병원에 합격하여 직장을 부천으로 다녔습니다. 5개월 후에 직장 근처인 부천으로 이사를 하려 하였으나 방 2칸 입실 부엌이 있고 거실은 없는 다세대 주택 전세가 5천만원을 하는 거였습니다. 이에 돈에 맞추어서 부평역과 인천지하철 동수역 사이에 있는 빌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에서 집을 사도 되고 전세로 살아도 되지만 전세와 집을 사는 차이가 300만원 밖에 되지 않아 사라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또한 집담보로 융자가 되어 있어 자금이 부족하면 융자를 승계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이전 집에서 집 없는 서러움이 있었기에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집을 계약하고 그 후 부모님들과 친인척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미쳤다는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행복하였습니다. 저희들 만의 보금자리를 가졌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시고자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었거나 부천에 있었으면 아마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기도 시간에 잃은 양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잃은 양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인도해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빌라가 얼마냐고요? 궁금하시죠? 4,500만원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000만원을 집담보로 융자를 한 것입니다. 그때 당시 1,000만원은 우리에게 큰 돈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순천향에 입사를 하면서 첫 1년은 월급을 1/12, 2/12 3/12 씩 월급을 받는 시기라 연으로 따지면 1,000만원이 안 되는 연봉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매달 45만원씩 고정 생활비를 드리고, 각종 집안 대소사 비용, 그리고 저희 생활비, 융자 이자 등 고정 비용이 많아 항상 돈의 노예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 생활비가 없어 한자매의 예물을 팔아 생활비로 사용을 했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자매에게 못난 사람과 결혼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러다 보니 온전한 십일조 헌금을 하지 못하고 안식일 헌금을 내는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십일조에 의미도 모르는 시기였기 때문에 육신의 삶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화요일 예배는 가지는 않았지만 안식일에 근무를 안 할 경우 한자매의 성화때문에 교회에 간 것 같습니다. 이런 초신자의 삶이 이어지면서 그 후 준혁이가 태어났고 또 준혁이가 4살 정도 되었을 때 한자매가 십일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은 남에게 뺏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기에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였던 것 같습니다. 만물의 소산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소산으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십일조 헌금을 한 것 같습니다.

준혁이가 자라면서 좀 더 좋은 환경속에서 자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천으로 이사 가려고 계획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라 구매를 하였기에 손해를 보고 팔수는 없었습니다. 팔고 이사를 가자? 생각하고 시세를 알아보니 6,500만원 이였습니다. 그래도 빌라를 사서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팔려고 하였으나, 한자매가 좀 더 지켜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난 후에 부동산에 시세를 알아보니 주변에 재개발 소식이 있다면서 주변 시세가 오르면서 9,00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저희는 9,500만원으로 집을 내놓았고 서울에 한 투자자가 그 집을 인수하면서 9,500만원에 팔린겁니다. 우리에게는 씨드머니 즉 종잣돈이 생긴 겁니다. 그 돈으로 부천에서 신규 오피스텔형 아파트 30평대 전세로 이사를 올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시편 24절 1편 말씀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소산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더후서 9장 8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저희가 드린 것 보다 넘치게 주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있으며 지금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와도 십일조를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1. 형통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누구나 형통한 삶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하지만 형통한 삶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저희에게 믿음을 굳건하게 가지라고 고난과 시련을 주십니다. 그 형통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유혹,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과 시련을 믿음으로 잘 극복해야 함을 깨달음 바가 있어 두 번째 주제를 형통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정하였습니다.

저희가 인천교회 둘 다 평신도였다가 교회임원을 맡아 봉사하였습니다. 임기가 끝 날 무렵에 직장일도 하면서 교회 임원일까지 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지쳐 있었기에 둘 다 이구동성으로 임원을 하지 말자고 하였고, 그때 당시 한은애 자매가 서울 공릉동에 있는 원자력병원을 다녔고 부천에서 출근과 원자력병원에서 퇴근 총 4시간이 소요되었기에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준혁이 교육문제도 있었고 해서 서울로 이사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중간 지점인 용산이나 흑석동으로 집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때 당시 흑석동이 개발붐이 있었고 저희는 신축 아파트인 흑석 한강 센트레빌아파트를 부동산에서 소개를 받았습니다. 멀리 보이지만 한강이 보이는 뷰라고 부동산 사장님이 물건을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아마 2012년 1월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궁금하시죠? 매매가 5억5천이였고 시스템에어컨이 설치된 30평대 아파트였습니다. 바로 결정을 할 수 없었기에 고민을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가 교회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야반도주하듯 이렇게 빠져나가는 것이 옳은 행위인가? 우리가 없는 인천교회는? 성도님들은? 이렇게 이사라는 포장으로 인천교회에서 나가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여러 가지로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다 아시죠? 인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흑석한강 센트레빌아파트가 얼마인지 궁금하시죠? 16~17억 정도 한다고 합니다.

저희는 교회 임원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였기에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어여쁘게 봐 주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전세를 살고 있었기에 부천에서 아파트 전세로 2년을 더 살았으며, 그 후 지금 살고있는 약대동 현대아이파트 아파트가 미분양이 되면서 시세보다 30% 저렴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현재 가격은 분양 당시 가격보다 100% 상승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아내인 한자매의 경우 여전히 직장이 서울 그것도 강동지역이라 출퇴근하면서 힘들어 했었고 원자력병원을 다니고 저녁에는 건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석사는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박사의 경우 졸업논문과 더불어 SCI급 논문 즉 국제학술지에 제 1저자로 제출하고 심사에서 통과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좋은 연구가 선행되고, 이것을 영어로 옮겨 심사를 받고 통과하면 되는데 문제는 원자력병원에서 좋은 연구가 선행되었지만, 그것을 윗선에서 박사학위에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한자매가 이런 조직에서 계속일을 해야 되는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원자력병원이 의료계에서는 그래도 좋은 환경의 직장에 속해 있었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당장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자매의 경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이 하루하루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이 들어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판단하에 아무 계획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 하였기에 조그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로 부천순천향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출퇴근 10분거리 직장에서 일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직장이 멀어 안식일에만 교회를 나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도로가 안 막히면 20분 거리다 보니 안식일뿐만 아니라 화요일 저녁 예배도 온전히 드릴 수 있게 되어 이것 또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저희를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자매가 박사학위를 취득 했는지 궁금하시죠?

순천향대학교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로 오고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님과 함께 연구한 결과물이 SCI급 논문에 올라가 생물공학 박사학위를 2018년도에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2020년도에 정규직으로 T/O가 변경되었으나, 직장 규정에 의해 경력을 3년만 인정을 해 주어 다른 동년생 보다는 월급이 많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대학교 겸임교수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를 해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런 복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진단검사의학과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검사를 합니다. 여러가지 검사 중 인체에서 유래되는 검체 즉 혈액, 객담, 소변, 대변등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우리 인체에 질병유무를 판독해 줍니다. 혈액검사의 경우 1000개가 넘는 검사가 있을 정도로 많은 검사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하는 일은 세포유전이라는 검사영역을 하고 있었고 이는 사람의 세포 속 핵내 물질인 염색체와 DNA 즉 유전자의 이상유무를 판독하여 질병을 진단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한자매가 순천향대학교병원에 오게 된 이유는 이 일과 더불어 NGS라고 차세대 염기서열분석이라고하는 검사와 방사선피폭선량 염색체 검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2018년에 팀장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팀장의 경우 인사고가와 더불어 윤리적인 부분도 보기 때문에 저보다 선배들이 6명 정도 있었고 심지어 10년 이상 차이가 났지만 하나님의 인도로 팀장이 되었습니다. 팀장을 달기 전에는 온전한 안식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병원 특성상 365일 검사를 해야 돼서 토요일 안식일에 교회를 오지 못하는 경우가 한달에 절반 정도였습니다. 팀장의 경우 토요일 오후와 공휴일 당직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안식일을 지키게 해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안산교회와 인천교회의 경우 수도권에 입지해 있습니다. 수도권에 있으면서 서울 시민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정부에서는 인구 분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인구가 941만 명으로 인구는 이전보다는 감소하였지만 인구 감소에 의한 감소이지 오히려 인구가 유입되면서 유입 인구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중 대형일반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대형교회를 다니냐고 이야기를 하면 교회에가서 예배만 드리고 오면 되고 교회에서 알아서 해 주니 편하다, 할게 없다는 거였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상업화가 되면서 일반 교회에서도 소형교회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안산교회와 인천교회도 소형교회로 이러한 새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천교회의 경우 몇 년전 부터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안식일 출석 성도가 60~70명 이었지만 지금은 30~40명 정도의 수준입니다. 점점 교회가 고령화가 되면서 젊은 층들이 많은 대형교회로 가려고 하고 남아있는 신도들은 교회 나이에 맞게 고령인 신도님들만 남고 있습니다.

안산교회와 인천교회의 경우 신도님 한분 한분이 소중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입니다. 그 몸을 이루시는 분들은 성도님들입니다. 성도님들이 안산교회, 인천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는 병들고 맙니다. 교회가 병이 들면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실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가 튼튼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전도여행을 하면서 힘이 없는 교회에는 사람을 보내어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게 지도하였습니다. 소형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기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기회도 많음을 압니다. 비록 삶이 힘들어도 하나님께 경외와 순종의 마음으로 임할 때 형통한 삶을 주심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3:44~46 읽고 마치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믿음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의의 면류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듯이 달려갈 길을 다 달려 끝까지 완주하여 나중에 주님 만날때에 잘 하였다고 칭찬받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튜브 간증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