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여느 모태신앙인이 그렇듯 처음에는 부모님의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제가 어느 교회 출신인지 아시나요? 저는 대부분 아시겠지만 광양교회 출신입니다. 신도 수가 적은 교회 특성상 학생부 예배가 없던 탓에 학창 시절까진 부모님과 모든 신앙생활을 같이 하게 되면서 저 혼자 교회 한번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신앙의 홀로서기는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할머니, 큰아버지 댁, 작은아버지 댁이 있던 소재지의 대학에 다니고 있어 대학 시절에도 의지할 곳이 많았던 저는 안산이라는 아무 연고가 없던 도시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연고가 없던 탓에 수원이나 안양 등의 다른 교회 위치도 남몰래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산교회를 안 다닐 수가 없게 된 이유가, 입사한 회사 기숙사의 위치가 교회와 너무 가까운 걸어서 10분 거리였습니다. 후에 일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는데, 기숙사는 직장과 같은 건물의 곳부터 제가 살던 곳보다 더 먼 기숙사까지 4~5곳으로 위치가 다양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교회와 가장 가까운 곳에 배정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아는 이 없는 곳에서 마음을 교회에 붙이도록 안배해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안산에서 2년 즈음 있었을 때, 그 나이 때의 자녀를 둔 부모님이 그렇듯 저희 부모님의 기도 제목은 저의 신앙 안에서의 결혼이었고 저보다 열심히 눈에 불을 켜고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서 70주년 행사에서 연주를 하게 되시면서 부산에 가셨는데, 역시나 주변 비슷한 연배의 자매님들이 모여서 하시는 이야기는 자녀의 결혼이었고 시연 자매님을 통해 정현 형제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25살로 어렸고 이성 교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현 형제는 공무원 시험 준비로 누구를 만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소개받아 전화와 카톡으로만 처음 한 달을 만났는데 얼굴을 보기 전부터 많은 대화를 통해 호감을 느끼고 이 사람과는 내가 신앙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공시생 생활과 신앙생활을 병행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에게 단순 배우자뿐만 아니라 신앙의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 저의 신앙도 견고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안산과 부산 사이 장거리로 만나다가 저는 안산에 있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결혼 전에 미리 부산에서 정착하기로 했고, 직장 퇴사 전에 중소기업 청년대출을 받아 전세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에 얘기해 둔 퇴사 날은 다가오는데 그 당시 중소기업 청년대출은 시행한 지 오래되지 않아 생소해서 그 제도를 받아주는 집주인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정현 형제가 집을 보러 다니던 중 우연히 한 여자 중개인을 만났는데 그분이 소개해준 집 중 한 곳이 저희가 지금 사는 집이었습니다. 집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당시 정해진 직장이 없던 정현 형제와 제가 집 위치를 정할 기준은 교회였는데, 그보다 더 부합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살고 있던 기숙사도 교회와 이보다 가까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가까운 집이었습니다. 촉박했던 일정 가운데 일이 정말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도 저의 부산에서의 신앙생활을 응원하고 이끌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부산에서 정착하기에 시기적으로는 좋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시작한 부산에서의 신앙생활은 사회적 거리두기, 예배당이 아닌 식당 방 또는 다른 방에서의 화면을 통한 예배, 교회 안에서 식사가 어려움 등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시기가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이 점심에 교회에서 김밥을 받으면 교회 청년들과 함께 저희 집에서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고, 차와 다과를 즐기는 것을 거의 매주 하다시피 했습니다. 또, 낯을 가리던 저를 더 챙겨주시는 형제자매님들이 계셔서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오히려 저는 성도님들의 사랑과 교제의 기쁨을 더 많이 느끼며 부산교회에 녹아들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2세 계획을 하면서 전에는 장점들만 보이던 “저희 집”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살기엔 평지가 없고 근처의 유흥거리, 호객행위를 하는 이모님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의 집값은 저희가 감당하기엔 너무 높은 현실이 보이면서 저희는 양산시 쪽을 찾다가, 덕계에 24년 2월에 완공되는 작은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습니다. 저렴한 분양가에, 분양권을 팔 수도 있던 이점이 있었고, 아파트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가 연이어 있어 학세권이었습니다. 그리고 울산과 양산, 부산을 잇는 광역철도가 근처에 생길 예정이라는 것도 저희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는 왜 이리 저희가 혹할만한 조건들만 보이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선악과와 같았습니다. 당시엔 기쁜 마음으로 저와 정현 형제가 각각 청약을 하나씩 넣었고, 그 결과 아파트 2채가 청약에 당첨되었습니다. 아파트가 2채를 갖게 될 것이라는 마음에 저희는 ‘완공될 때까지만 계약금 대출금 이자로 조금 고생하면 이제는 우리가 집주인 될 수 있다’라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렇게 완공을 기다리면서 종종 제가 살 아파트가 궁금해서 온라인에 검색하다 보니 이상한 기미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약 당첨된 지 오래 뒤인데도 아직 공사 현장에 삽도 안 팠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알아보니 그 지대에 큰 암반이 있어 아파트를 짓지 못할 것 같다는 글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아차 싶었습니다. 저희가 겉으로 보기 좋은 집, 안정적인 재산을 갖기 위해 신앙적인 고민을 깊게 하지 못했었고, 하나님께서 저희의 잘못된 점을 조금씩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저희가 지금 사는 집을 구했을 때는 분명 교회가 기준이었는데 이 아파트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상적인 조건이 너무 좋아 보여 계약을 했던 것이죠. 그제야 교회 옆에 살면서 받았던 은혜를 잊고 산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의 잘못을 깨닫고 나니 일이 이상하게 저희의 중심으로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시공사 쪽의 설명회를 들으러 간 모델하우스에서 다른 피해자 집단을 만나 단체 소송에 참여하게 되어서, 저희가 소송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큰 노력 없이 알아서 소송이 진행되고, 그 사이에 저희는 지효를 출산했습니다. 아이를 낳아 돈이 계속 필요한 시기가 되니 재판이 승소해서 저희는 계약금에 위약금까지 받아 오히려 여윳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일이 저희 가정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24년 1월 1일 오전 6시경, 새해맞이 새벽기도를 하러 가는 길에 집 우편함에서 의문의 편지 봉투를 보게 됩니다. 저희 부부는 이 편지를 우스갯소리로 행운의 편지라고 말하는데요. 저희가 받은 편지 봉투에는 ‘임차인에게 임대인 드림’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요약하자면 집주인분의 무리한 사업 진행 중 대출 지연으로 인해 3금융 대출이 연체되어 결국 모든 금융거래가 정지되었다는 일종의 파산예고와 피해복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낸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후로 저희 빌라 주민들은 수시로 모이며 진상 파악과 같이 살아갈 방책을 서로 공유했습니다. 저희도 시청에 가서 전세 사기 피해 지원에 대해 알아보고 경찰서에 고발하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스트레스에 잠을 못 잔다, 눈물이 난다’라고 호소하는 다른 빌라 주민들과 달리 저희는 이상하게도 걱정이 하나도 안됐습니다. 돌배기 아이도 있고 더군다나 한 명이 휴직인 상황이었는데, 정말 희한하게 정현 형제나 저나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우리 돈 다 날아가면 어떡해. 지효도 있는데 내쫓기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은 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몸은 바빠도 마음은 평안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아니, 사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 맞았습니다. 저는 평탄치 않은 삶을 산 요셉이 왜 평안하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재작년에서 작년까지 청약과 재판과정을 겪으며 하나님께선 우리 가정을 내버려 두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어느 날 저희 빌라 대표가 집주인의 대리인을 만났다며 이러한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못 받게 되는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일정 금액을 집주인 측에게 주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 매매가가 2억이고 전세보증금이 1억이면 1억을 더 주면 집을 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저희에게 돈을 받아 빚을 일부 해결하고, 저희는 전세보증금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책으로 해볼 수 있는 방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만큼의 목돈을 준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집의 전세도 속된 말로 전세 대출을 거의 풀로 땡겨서 들어와 있는 터라, 원래는 매매는 말도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저희가 이 집을 담보대출로 구입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앞선 양산 아파트와의 승소로 받은 계약금과 위약금이 있던 덕이었습니다. 정말 딱 필요한 만큼 미리 채워주신 덕에 저희는 무사히 계약해서 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첫 직장의 기숙사가 교회 근처였고, 저희 어머니가 행사에서 만난 자매님께 정현 형제를 소개받고, 정현형제가 우연히 이 집을 소개받고, 저희 가족이 양산아파트 소송에 참여하게 되었고, 마침 돈이 있어서 이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수많은 우연과 기연이 어쩌다 생긴 일이 아님을 압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땐 우연하게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속의 섭리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이끄는 신앙에서 벗어나 제 신앙과 저의 가정을 이루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때와 방법은 사람이 감히 상상해볼 수도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희 가정을 지켜보고 계시며 사랑하심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