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하기 앞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부족한 능력을 가졌지만 합격을 하게 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라는 사람을 스스로 돌아보면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은 ‘제가 신학에 합격하게 된 것은 정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간증은 저를 신학 지원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 인생에 정말 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있었지만 오늘 간증은 이 신학 지원과 관련된 것 혹은 그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것들 위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원래 신학 지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믿음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실 신학 지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굉장히 억압받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신앙을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은 공감하실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일예배와 안식일에 교회를 빠지는 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분위기 속에서 자라다 보니까 교회에서만큼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보이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께서 저를 보시면 밝게 웃으시면서 ‘관택이는 나중에 목자님이 돼야겠구나!’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제 마음의 중심을 알기 때문에, 나름 신앙에 대한 열심을 가진 이후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의 인식이 ‘저 사람은 신학을 하려고 하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거야’라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신학은 안해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참 신기한 점은 저는 신학을 절대 지원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신학 지원을 준비하면서 제 삶을 돌아본 결과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제 삶을 신학 지원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제 삶의 어떤 부분을 돌아보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사건은 제가 5살에서 6살 시절 대방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안식일 오전 말씀을 마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한창 탱탱볼을 가지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이제 옆에 계셨던 어머니를 졸라서 아직 예배가 안 끝났는데 나가서 놀고 싶다고 옆에서 자꾸 찡얼대니까 어머니가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교회 앞 도로에서 탱탱볼을 던지며 놀다가 이 탱탱볼을 쫓아 도로 가운데로 뛰어들었고 트럭에 치여 날아가 머리부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차에 치인 제 모습을 보시고 제가 바보가 될 거라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10일 정도 입원하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씀드리면 부모님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예배 시간 엄수와 예배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가르치게 되셨다는 점과 다른 한 가지는 제가 무사히 낫게 되면 꼭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 이후로 제가 자라는 환경이 신앙 안에서 바른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다음은 시간이 조금 지나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령을 받았던 일입니다. 성령을 받은 기억은 모두가 특별하지만 저에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장흥진 목자님이 거제교회 목자님으로 부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특별 기도회를 하셨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은 날도 기도회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을 때 몸에 번개를 맞은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기도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막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온몸이 떨리는 진동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만하게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두번째는 제가 성령을 받을 당시 눈을 감은 상태에서 딱 한 장면만 계속 반복해서 보였는데 저희 어머니가 얼굴 볼살이 살짝 패인 상태로 피골이 상접한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는 하지만 그런 얼굴로 굉장히 힘든데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그 장면이 계속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사실 이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겪는 일(아버지의 교통사고)을 그때 미리 알려주신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중, 고등학생 시절 있었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진로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요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도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라따뚜이’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한 생쥐가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는 영화인데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와 요리사의 꿈을 이루는 생쥐를 보며 저도 요리사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잘한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큰 기대를 가지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데요 절대 안 된다 반대를 하셨습니다. 이유는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한 번쯤은 고민하실 줄 알았는데 바로 단칼에 거절을 당하니까 정말 섭섭했습니다. 이때부터 학교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니까 공부를 해야 될 의욕도 없어졌고 막바지에는 학생부 영은회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신앙생활에도 공부에도 그렇다고 무언가 다른 진로를 찾는 것에도 의욕이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시에 이때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는데 똑바로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면 진짜 심했을 때는 하룻 밤 사이에도 몇 번씩 눌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옆으로 누워서 자야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심했는데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오랜 기간 동안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요셉 목사님이 부임하셨을 때 상담을 받고 제가 겪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새벽 기도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 신앙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새벽 기도를 하면서 함께 기도한 성도님들과 눈을 감은 상태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세계라는 게 정말로 있구나라는 것을 이 시기에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기도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찾고 요리에 대한 진로는 취미로 놓고, 제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위눌림에 대한 내용은 뒷 내용에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이과에 가야 취업이 잘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요셉 목자님과의 상담을 따라서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공학과 입학 이후 전공을 듣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수업만 듣고 시험기간에 살짝 몰아서 공부하면 반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까지는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저는 나름대로 공부머리가 있고 공부를 제대로 하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역학과 대학수학 쪽의 과목들은 자신감이 완전히 꺾일 정도로 성적이 안 나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이 제 마음의 교만함을 꺾어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 저에게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신학을 지원하면 무조건 붙을 것이고 꼼짝없이 목자님을 해야 되는데 목자님은 하기 싫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때 공부해도 제 마음대로 안되는 대학 시절을 통해 겸손한 마음을 가르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 중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8년 5월 14일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실려가실 때 한 번 저희 옆을 지나갔는데 얼굴이 너무 퉁퉁 부어있어서 가족 모두가 못 알아봤습니다. 이후 나중에 한 번 더 지나갈 때 그때 보고 아버지인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수술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버지의 몰골을 봤는데요 얼굴에 멍이 없는 곳이 없고 머리가 사람 머리가 이렇게 부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 크게 부어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후부터 보호자 대기실에서 보낸 3일은 저한테 괴로움으로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국어 문학 작품을 보면 가슴이 메인다라는 표현을 보며 이게 무슨 느낌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때 무슨 느낌인지 알았습니다. 가슴속 한가운데가 걸레처럼 짜이는 듯한 느낌이 나고 뭔가 항상 걸려 있는 것처럼 물을 마셔도 밥을 먹어도 잘 안 넘어갑니다. 눈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진짜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곳을 찾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 칸에 들어가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엔 뭘 구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요 이 기간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똑같이 화장실 칸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아무런 근거도 그냥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냥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때 저는 즉시 알았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이 분명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제 삶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전역 이후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계획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의 생활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땠을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죽어가는 모습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고 진심으로 제가 아플 수 있다면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나와 사람들을 보시는 마음과 시선에 대해 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쓰임이 신학이라면 신학 지원을 해야겠다고 이때 결심했습니다.

 

장종규 목자님께서 저에게 2020년도에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님이 신학 권유를 해주시기 이전에 신학 권유를 처음으로 해주셨던 분이 어머니였기 때문에 먼저 신학 지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고 어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관택아, 너는 눈치가 없고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좀 하고 신학 지원을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이번 19기가 아니라 다음이나 그 다음 지원을 목표로 우선 대학을 먼저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 뒤 신학을 지원하기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넘어가는 중에 아버지가 퇴원을 해서 집에 오셨습니다. 사고 직후와 비교하면 많이 회복되었지만 숨 쉬는 것 이외에는 전부 가족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이기에 휴학을 하고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간병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결과 휴학 기간 동안 공부를 해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1년 9월부터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책임감과 의지를 굳게 가진 덕분인지 성적이 빠르게 만들어지면서 이대로 유지하면 6월 지방직 시험에 합격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1년 12월에서 22년 1월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 아버지가 결석 때문에 잠깐 입원한 응급실에서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전체적으로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자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맞는 건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장종규 목자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목자님은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막힌다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가 제가 19기에 바로 신학 지원을 안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 부드럽게 돌려서 말씀하시던 목자님이 바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니까 당시 저는 그 말씀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도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 신학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와 한 약속이 생각나 한번 어머니의 뒤로 숨었습니다.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하고 신학 지원 하길 원하셔서 저 혼자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말씀드렸더니 목자님이 바로 어머니께 연락하셔서 저와 함께 부르신 뒤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자님이 아주 강력하게 어머니까지 설득하시고 나서 저는 꼼짝없이 이제 신학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신은 없었습니다. 꼭 지금 신학 지원을 해야 될까 정말 지금 신학 지원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맞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저에게 신학 지원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해 주셨습니다. 신학 지원을 확정짓고 나서부터 학생때부터 눌리던 가위에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가위 때문에 잠자리가 굉장히 예민해서 보통 눈을 감고 잠들 때까지 최소 30분은 정신이 깨어 있는 채로 누워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심 이후로는 누웠다 하면 잠들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새벽기도 생활을 하면서 가위에 눌리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주기적으로 가위는 눌렸었는데 이 이후로는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을 푹 자기 시작한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다 22년 10월 아버지가 누워 계시기 때문에 법적인 처리를 대신 할 수 있도록 하는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라는 제도를 신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원에 저를 후견인으로 인정해 아버지의 법적인 의사 표현을 제가 대신하도록 신청하는 서류를 제출했는데 후견인이 되면 주기적으로 법원에 가서 당사자의 재산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보고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 서류를 제출하기 전날이랑 제출하고 온 날 이틀 연속으로 가위에 눌렸습니다. 그래서 그때 알았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가위에 눌리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구나 그렇다면 지금은 왜 가위에 눌렸을지를 생각해본 결과 그때 제가 한창 신학지원서를 작성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아무래도 저를 후견인으로 신청해서 가위에 눌리는 것 같으니 후견인을 바꾸는게 좋겠다 말씀드렸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가위에 눌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바램이었던 사회생활도 좋은 기회를 얻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학지원을 위해 신앙과정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믿음의 가정에서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신앙적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조차 없게끔 여러 가지 체험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학 지원하는 데 있어서 얽매이지 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지원하도록 두시지 않고 지금 지원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알려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알고 나니까 도저히 신학 지원에 대한 제 뜻이 어떤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지금 저를 둘러싼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저는 신학 지원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버지가 집에 여전히 누워 계시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경제적인 것보다 아버지를 돌보는 간병 일이 굉장히 힘들고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신학 지원을 한 이유는 제 인생을 하나님께서 올해 신학 지원으로 이끌어주신 것처럼 저희 가정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지원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아직도 가끔씩 의심이 마음에 쌓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때면 기도할 때도 믿음 없는 기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 신학 못합니다. 꼭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제가 정말 하나님만 믿고 신학을 지원 했으니까 책임져주세요’ 라고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하셔서 신학 지원의 길로 인도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도 제 눈앞의 현실은 막막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이 길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간증을 읽는 성도님들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