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일시: 2025년 10월 26일 가을 영은회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찬례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성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찬을 행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의식이나 의례적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방향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성찬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자리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죄가 없음에도 유대인들의 고소로 아그립바왕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변호해야 했지만 이때에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미쳤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여도 교회를 위한 것인데 이러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하게 붙드셨기 때문에 그의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삶, 교회를 위한 삶으로 흘러갔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끌어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겪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왜 바울은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이사야 5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며, 그분이 찔리시고 상함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본래 죄로 인해 고난받고 죽어야 할 존재는 우리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결국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첫 사람 아담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기에,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생겼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며, 죽음은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도 역시 그와 똑같이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죽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첫 번째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첫 번째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것도 이 뜻입니다. 예수님이 첫 생명이 되셔서 우리도 그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내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죽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직접 창조된 존재이듯,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사람이 죄에 빠질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실 일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의 사건임을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구원이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의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이 반영된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삶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죽는 것입니까? 성경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고 말합니다. 세례에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례는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신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부르심에 따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얻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하는 것인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곧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욕심과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이 것이기 때문에 결코 유익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와 멸망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를 살리셔서 옛 삶 즉 세상 풍속과 육체의 욕망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대로,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풍속을 좇는 삶이며, 이런 삶은 결국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며, 결국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당연히 그런 삶이 우리에게 유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해가 되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삶이기에 우리가 가장 가치 있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은 하나님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배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우리는 구원만 받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선한 일은 우리가 가치 있고 도덕적 삶을 살아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르는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이전에는 죄 가운데 있어 그리스도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놀라운 연합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며,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마음,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도 바로 이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행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내 힘을 합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그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하고 실제로 행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 힘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되셨던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즉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키고 더 깊어지도록 힘쓸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며, 성경이 말하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3~27)

주님의 몸과 피를 분별하며 자신을 살피는 성도

바울은 성찬이 주님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만큼 성찬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성찬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여 주님과 더욱 깊이 연합하게 되는 은혜의 자리임을 말합니다. 이 떡과 잔은 ‘너희를 위한 내 몸’,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예수님의 생명이 더욱 충만하게 임하는 효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찬을 받을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합당치 않게 성찬을 받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고전11:27)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각각 자기를 살피라고 명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 거룩한 예식이기에, 성도는 그 의미를 분별하고 신중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형식적인 성례가 아니라 매우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담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게 되는 참으로 거룩한 성례라는 것입니다. 매번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이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그렇지 못했다면 그 삶을 살기 위해 다시 결단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은 이 결단을 다시 확인하고 새롭게 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더욱 힘쓰는 성도님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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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