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 예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의 간증이 여러분께 자랑처럼 여겨지지 않고 작은 은혜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 간증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믿음이 부족 하고 말주변도 없어 조심스러워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환갑을 넘어 파과(破瓜)의 나이에 조심스럽게 처음으로 간증을 합니다.
되돌아보면,
부족한 저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넘치도록 많이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믿음이 좋았거나 행위가 온전해서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자비와 은혜를 더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과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믿음으로 세워주신 가정에서 태어난, 말 그대로 ‘밥상 위에 숟가락만 얹은 모태신앙인’입니다.
스스로 신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가정 속에서 자라난 복된 사람입니다.
간증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해 드리겠습니다.
1. 참 진리를 찾아서 (아버지의 간증)
2. 성령의 은사 (어머니의 간증)
3. 고난의 축복 (나의 간증)
1. 참 진리를 찾아서
아버지의 본명은 鄭 泰 俊 이시고, 영명은 鄭 爲 眞 장로님이십니다.
1922년 부산에서 태어나셨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독학으로 공부하신 뒤 검정고시로 학력을 인정받고 부산대학교 건축과에 들어갔지만, 그마저 어려워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1939년, 18세의 나이에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가족 모두와 함께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낮에는 양복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의대를 가기 위해 준비했지만, 지병(늑막염)으로 결국 의대 진학의 꿈을 포기합니다.
일본에서도 장로교회를 다녔지만, 성경적이지 못한 교회의 모습에 회의와 의문이 생겨 그때부터 참된 진리를 갈망하면서 기독교에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싶어 혼자 여러 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가가와 도요히코의 **〈사선을 넘어서〉**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 여러 번 그에게 찾아갔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낙심한 채 돌아오던 길에 전차 역 앞 서점에서 야마다 모리시코 목사의 **〈성령을 받는 비결〉**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통해 오사카 참예수교회와 우아이 장로님을 알게 되었고, 오사카 참예수교회를 찾아가 성령 받기를 간청했지만
그날은 성령을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설득해 참예수교회 근처로 이사를 하고 가족 모두 참예수교회로 개종하게 됩니다.
1944년 6월 10일,
아버지는 성령과 세례를 받았고 할머니와 고모(당시 11세)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아이 장로님의 소개로 배상용씨(배영도 장로님)를 만나게 되었고, 얼마 후 배영도 장로님이 먼저 귀국하시고 뒤이어 아버지 가족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한국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북한으로 가셨고 이후의 소식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분을 통해 북한에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면 합니다.
배영도 장로님과 헤어지기 전 “한국교회 발전을 위해 노력합시다.”라고 서로 다짐을 하고, 배영도 장로님은 김천으로, 아버지는 부산으로 왔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한국에는 교회와 총회가 세워지기 전이라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시다 김천 성의여고로 교직을 발령 받아 김천으로 가셨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1953년에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시고, 서울로 이주했습니다.
셋방살이할 때 어느날 새벽에 옆방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 “저 집도 하나님을 믿나 보다”하고 전도할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는데
그분은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로 정대현 씨였습니다.
이후 그분을 통해 차철남, 조광덕, 한윤조 씨가 전도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정은진, 차인도, 조덕진 장로님이시고 한영실 집사님이십니다.
이분들과 함께 힘을 모아 1954년 서울교회의 기초가 세워졌고, 이후 회기동과 여러 곳을 거쳐 지금의 서울 동부교회가 된 것입니다.
1956년 아버지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가정예배를 재개하였고, 1958년 부산 기도소로 승인을 받았고 1960년 3월, 영명 정위진으로 장로에 안립 되셨으며, 1960년 4월, 부산교회로 승격됩니다.
이즈음 전국 여러 지역에서 한 가정, 한 가정씩 부산으로 이주해옵니다. 자연히 신도 수가 늘어나게 되었고 저희집 에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당시 총회와 부산교회는 여러 면으로 어려워 지원을 받을 수 없어 20여년 아버지는 양복점과 신사복학원, 자연 건강 의학 등 여러 사업을 하시면서 목회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아버지는 1999년 1월 19일, 79세의 일기로 소천하셨습니다.
만약 아버지께서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셨거나, 가가와 도요히코의 제자가 되셨다면 참예수교회의 진리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2. 성령의 은사
어머니는 白 仁 德 이시고 1931년 경북 금릉군 구읍에서 태어났고, 가정형편이 좋은 유교 집안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중학교 시절 대구에서 공부하시다가 해방 후 김천으로 돌아왔는데, 어느 날 집 근처에서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가 너무 좋아 교회를 찾아가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박창환씨가 목회하던 장로교회입니다. 어느 날 박창환씨는 배영도 장로님을 통해 참예수교회의 진리를 받아들이면서 어머니와 그곳 장로교회의 신도들과 함께 참예수교회로 들어왔습니다.
1947년, 어머니는 여신도로는 최초로 성령과 세례를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밤마다 교회 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교회에 갈려고 하니 외할아버지께서는 “오늘은 교회 나가지 마라 심부름도 해야 하니까 방에 들어가 있거라” 하셨기에 할 수 없이 마루에 앉아 자꾸 교회 생각이 나서 울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면서 하얀 옷 입은 천사가 나타나
“애야 울지마라 일어서서 가라”
그리고 빛이 앞을 비춰 빛만 따라가다가 빛이 딱 사라져 앞을 보니 교회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도 처음처럼 빛이 나타나 무사히 집에 돌아와 마루에 앉아 있는데 방안에서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 그만 들어와 자거라 이제는 밤이 깊어서 못 나간다”
외할아버지는 그동안 어머니가 교회 갔다 온 줄도 전혀 모르셨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통해 성령의 은사로 성령을 따라 지혜와 지식의 말씀과 방언 통역함을 여러 번 주십니다. *고전 12:8~10
어머니에게 성령의 은사가 있다고 하니 기도해 주기를 자청하거나 어떤 사람을 위해서 같이 기도할 때가 많았는데 그 사람의 방언 기도를 알아듣고 그 사람과 어머니의 영이 아는 사이처럼 서로 주고받으며 방언이 통해졌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말씀이 나타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 말씀!”하면서 성경 구절이 나타니다.
살전 5:16~22, 요 1:3~5, 갈 4장, 고후 5:16~19, 히 3:12~14 ..이 외 여러 말씀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 나타납니다.
김천교회와 서울교회에서도 그때그때 꼭 필요한 말씀들을 어머니에게 주셔서 성령이 신도들을 가르친 것입니다. (초창기 김천교회와 서울교회 예배일지에 기록)
미천한 어머니를 통해 성령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2019년 4월 21일, 89세의 일기로 소천하셨습니다.
3. 고난의 축복
저는 1962년 3월 1일 부산 서대신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정 수안(守安)’ 지킬 守 편안할 安
아버지께서 “안식일을 잘 지켜라”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1962년 11월 21일 유아세례를 받았고,
1971년 6월 아버지께서 김천교회 영은회 강사로 가실 때 학교를 결석하고 따라가 6월 5일 안식일 새벽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성령을 받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그 자리에서 꿇어 엎드려 많이 울었습니다.
세 살 무렵, 막 태어난 남동생과 어머니, 저 세 사람이 잠을 자는데 밤사이 연탄가스를 마셔 중독으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맸습니다.
아침에 발견됐을 때 동생은 이미 숨졌고, 어머니와 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조금 늦게 발견되었더라면 어머니와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은 태어나 이름도 없고 출생신고도 하기 전에 가족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큰아버지가 아기 시신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가서 마을 뒷산에 묻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40도가 넘는 고열로
척추와 골반이 뒤틀리고 양쪽 다리가 점점 굳어져 마비되었습니다.
병원에 갔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치료를 잘 받는다 해도 정상적으로 다리를 쓸 수 없으며 평생을 목발 없이는 걷기 힘들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워 있는 저와 함께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걷게 하려고 한의 처방(한약, 침, 뜸)을 배워가며 직접 치료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앙상하고 감각 없는 제 다리에는 침과 뜸 자국들이 가득하고방안은 한약 냄새들로 가득 합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영은회에 참석해 안수기도와 여러 성도님께 기도 부탁도 했습니다. 1년 넘게 저는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해 늘 누워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던 제가 부엌에서 식사 준비하시던 어머니를 향해 기어가 문지방을 짚고 바들바들 떨면서 일어나 “엄마 ~”하고 불렀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놀라 아버지를 부르고 저를 안고 울면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낳은 자녀 중 첫 아이 이름이 정서분 인데, 부모의 가슴에 묻고 둘째와 넷째, 일곱째까지 이름도 짓기 전에 부모의 가슴에 묻었다고 합니다.
자녀를 잃는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저는 커가면서 다리에 힘이 없어 자주 넘어지기도 하고, 친구로부터의 놀림을 받아 저로서는 감당하기 너무나 어려웠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런 큰 아픔 속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와 믿음으로 그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는 저는 그런 아픔들을 믿음으로 이겨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아파 혼자 누워서 지냈던 모습들이 잔상처럼 나타나곤 합니다.
‘누워 있을 때 바라보던 희미한 백열등 불빛, 졸립게 늘어진 커튼 사이로 스며들던 바람 소리, 나아서 일어나게 되면 신을 하얀 고무신, 익숙하지 않은 한약 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 노는 소리, 간간이 들여오는 상여 호상군의 구슬픈 곡소리, 어머니의 등에 업히면 귀에 울리는 자장가 소리’
신앙의 철이 들면서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고난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고 의지하도록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지금 저는 행복 합니다. 두 다리로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이 저에게 주신 사랑과 은혜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여러 성도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라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로 보답하고 베풀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제 성경 말씀으로 간증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전 15:10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편 116:12
감사주,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