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제목]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본문말씀] 시편 37:1-9
[설교날짜] 2026.06.06
[본문 말씀] 시편 37:1-9
시편 37편에 대한 이해
시편은 몇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찬양시, 탄원시, 감사시, 등이 있는데 시편 37편은 탄원시에 해당한다.
예수를 믿으면 잘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정작 현실을 보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예를 들면 불교 신자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만 잘 믿으면 재산이 불어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하다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하면 그 마음이 불평으로 바뀌고 시기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시편 37편의 “행악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잘되어 가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나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나가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불의를 행하는 자가 형통한 것을 보고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시편 37: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편 2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평탄하게 살아도 결국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 참예수교회 성도들 가운데에도 부에 대한 갈망을 가진 형제자매들이 있다. 그러나 돈을 물 쓰듯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뿐이다.
한국에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행악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보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힌트는 로마서 12장 21절에 있다.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성경 말씀을 보면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선으로” 이기라고 한다. 여기서 “선”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을 의미한다.
네 가지 처방
그렇다면 우리가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시편 37편을 에서는 네 가지 처방을 제시한다.
1) 첫 번째 처방
[시편 37: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첫 번째 처방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해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행해야 한다.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은 좋은 아파트에 살고, 주식이 오르고, 타인의 선망을 받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은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여기서 “식물을 삼는다”는 것은 동식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음식물처럼 영적인 양식으로 삼아 위로를 받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2) 두 번째 처방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두 번째는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이다. 즉, 기쁨을 오직 여호와께 두어야 한다.
타인의 재산이 늘어나고, 자녀가 형통하고, 물질적인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을 두어야 시기와 질투를 극복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찾다 보면 불평이 생기고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두어 가시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마음속에 불평이 쌓이고 힘들어지면 남이 기뻐하는 것마저 시기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이 있는 사람은 자신도 기쁘고, 다른 사람의 기쁨도 함께 기뻐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다.
3) 세 번째 처방
[시편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세 번째는 자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쓰여있다. 자기 욕망대로 길을 선택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4) 네 번째 처방
[시편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네 번째는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해야 한다. 악한 자들이 자기 뜻대로 하여 형통해진다 하더라도 그들을 시기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잠잠히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결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형통은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와 다르고 그렇기에 우리는 때때로 시험에 든다. 시험에 드는 것도 모잘라 성경에 적혀있는 처방 또한 우리가 따르기 쉬운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네 가지 처방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왜 네 가지 처방을 주시는지에 대한 해답은 8절에 있다.
[시편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분노를 그치지 못하고 불평하기만 하면 결국 본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죄악에 빠지게 될 뿐이라고 말씀한다.
[시편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이어서 9절에는 행악하는 자는 결국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라는 구절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한 구절만 떼어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차지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라쉬”는 “상속받다”, “유업을 받다”, “기업으로 이어받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 시편 37편 11절, 22절, 29절, 34절에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시편 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시편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시편 37: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시편 37:34]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보면 시편 37편 11절을 인용한 구절이 등장한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성경에서 우리가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땅은 무엇인가? 물질적인 땅, 부동산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 말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개념은 구약시대의 기준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과 선택하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터전,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구약에서는 가나안 땅이 그 상징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의 기업이다.
즉, 시편 37편에서 말하는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물질적인 땅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상속받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시편 37편 9절을 바르게 해석하면, 시기하는 마음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에 빠지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만이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유업을 상속받기 위해 우리가 행악자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불평 불만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여호와께 길을 맏기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