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항 성찬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성찬례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주의 살과 피에 동참하여 주와 연합하고 영생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성례임을 믿는다. 이 성례는 필요할 때마다 거행하며 반드시 한 개의 누룩 없는 떡과 포도즙으로 거행한다.
성찬례는 구약 출애굽 시대에 시작된 유월절 절기에 유대인들이 가지는 특별한 식사가 신약 시대에 개혁되어 나타난 기독교의 성례입니다. 이 성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1)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기 위해서 그 나라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열 개의 재앙 가운데 마지막으로 내려진 재앙은 바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초태생은 죽음을 당하는 끔직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에게는 그 재앙이 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재앙이 닥치기 전에 미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대로 실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백성들과는 달리 그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열 번째 재앙은 유대인들이 애굽을 나올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은 애굽 사람에게는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임한 이 재앙을 기념하여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절기에는 무교병과 양고기와 같은 특별한 의미의 음식을 먹으며 기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출 12: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구약 시대 장자 죽음의 재앙을 통해 시작된 유월절 절기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예표합니다. 즉, 애굽과 같은 죄악 세상에서 사망의 노예처럼 매여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그 값으로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우리는 예수님께서 새롭게 설립하신 새로운 유월절로서 성찬례를 시행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친히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에 근거하여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찬례를 일컬어‘유월절 먹기를 원하였노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성찬례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즉 신약 시대 성도들이 지켜야 하는 새로운 유월절 식사입니다.
(눅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성찬례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 사이에서만 명령하시고 준행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세워진 초대교회는 그것을 하나의 성례로 받아들여서 시행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관련된 문헌에서도 발견되지만 성경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저술인 고린도 전서에서 예수께서 설립하신 성찬례의 정확한 절차와 그 의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만찬에 참여한 인물이 아닙니다. 마지막 만찬에 참여하지 않은 그가 그 때의 대화와 성찬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고린도 교회를 포함한 초대 교회가 성찬례를 하나의 예전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입니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2)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여 주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교파와 교단에 따라 그 교리에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천주교의 견해로 ‘화체설’(化體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즙을 축사하면 실제로 예수님의 피와 몸으로 변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일반 개신교의 견해로 ‘상징설’(象徵說)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 축사 기도를 하더라도 떡과 포도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예수교회의 ‘영화설’(靈化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성령을 받은 성도의 축사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피와 살로 ‘영적인 변화’(영화)가 일어난다고 믿는 견해입니다. 마치 세례받을 때 물이 실제 피로 변하지는 않지만 성령 받은 자가 예수 이름으로 선언하고 시행했을 때 ‘물’이 ‘피’로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듯이 성령 받은 자의 축사 기도를 통해 성찬례의 떡과 포도즙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딤전 4:4-5)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3)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영생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성찬례에 참예할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세례를 받고 구원의 길을 시작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은 성찬례를 통해 거듭난 성도에게 부활과 영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찬례에 참예하는 성도는 이 예식에 참예함으로 장래에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참예해야 합니다.
(요6:5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4)힘을 합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개인적 신앙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한 떡과 한 포도즙에 참예하는 것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한 지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육신의 피를 나눈 혈육의 가족 관계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영적인 가족 관계도 있습니다. 육신의 가족은 죽음을 통해서 그 관계가 끝나지만 영적인 가족은 죽음 이후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가족은 육신의 가족보다 더 중요하며 육신의 친족보다 더 친밀한 관계입니다. 성도는 성찬에 참예할 때 이처럼 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눈 영적인 가족들과 함께 한 떡과 한 잔에 참예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적인 가족으로 맺어진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주님의 죽으심을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5)성찬례는 성경적 절차와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세례라는 성례와 마찬가지로 성찬례도 그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도록 성경적 절차와 방법대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 절차와 방법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해야만 그 성찬례에 담긴 온전한 정신과 영적인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 개의 누룩없는 떡을 사용합니다.
떡은 축사하기 전에 한 개여야 합니다. 그리고 축사 이후에 작은 조각으로 찢어 나눕니다. 이 한 개의 떡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참교회의 성도들은 천국까지 항해하는 구원의 방주에 함께 올라탄 한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떡에 누룩을 넣지 않은 것은 순결한 예수님의 몸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누룩을 멀리하듯이 생활 속에서 죄악과 부정함을 멀리하고 예수님처럼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할 것을 성찬에 참예하는 시간에 깊이 다짐해야 합니다.
(고전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둘째, 한 병의 누룩 없는 포도즙을 사용합니다.
한 병의 포도즙은 우리가 한 피를 나눈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발효된 포도주가 아니라 누룩을 넣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은 역시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님의 정결한 피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그 피에 참예함으로 예수님을 본받아 피흘리기까지 죄의 세력과 싸우며 세상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복음을 전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세례를 받은 자가 성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유월절은 할례를 받고 유대인으로 귀화한 자만이 참예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약 시대의 새로운 유월절인 성찬례도 세례를 받고 거듭난 성도만이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아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지도 않은 자가 장차 부활할 미래를 위해서 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로 주님과 관계를 맺은 자,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후 성찬에 참예할 자격이 있습니다.
(출 12:48)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넷째, 성찬거행의 회수는 제한이 없고 수시로 거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 문헌이나 자료를 조사하면 초대교회에서는 성찬례를 집회시마다 애찬과 병행하여 시행한 것으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히 시행의 회수나 시행할 때를 지정하신 일은 없으므로 각 교회가 처한 형편대로 스스로 정해서 거행하면 됩니다. 싱가폴에 있는 참예수교회의 경우 월 1 회 성찬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참예수교회 대만교회에서는 한국 교회처럼 영은회와 같은 특별한 행사 때에 시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