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자 Esther Chiew 자매 (참예수교회 캐나다 밴쿠버 교회)

현실감각의 상실

지난 해는 나의 인생에 가장 힘들고 거친 한 해였다. 그렇지만 또한 가장 축복받고 기쁜 한 해 이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건강과 온전한 정신에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난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서 있다면 어떠한 일이 우리앞에 닥쳐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2009년 여름 나는 불면증으로 고생하기 시작했다. 난 병원에 갔고 의사는 나에게 아주 강한 수면제를 지어주었다. 그러나 몇 달 뒤 나는 다시 의사를 찾아가 새로운 약을 처방 받아야 했다. 수면제 복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약에 내성이 생겨 다시 불면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8월말 몇 일간 잠을 자지 못하고 나면서 내게 수면 부족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현실에 대한 감각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나는 밤이나 낮에 대한 대한 감각, 시간이나 날짜에 대한 감각마저 없었고 심지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상상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엄마와 여동생은 내게 뭔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를 계속 감시하며 내가 괜찮은지를 확인하려 했다. 난 점점 더 나 자신이 나 같지 않았고 내 몸이 마치 빈껍데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들 말고도 나는 먹지도 못했다. 엄마와 여동생은 나를 앉혀놓고 강제로 음식을 먹였다. 나는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내가 하는 행동이라고는 오직 어떤 곳을 반복해서 치우고 또 치우는 것이었다. 마치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난 대학의 마지막 학기 수업을 신청해 놓았고 수업에 필요한 책도 다 사놓은 상태였다. 9월이 다가오고 있을때는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간 이었다. 그러나 수업 첫째날 엄마는 내가 혼자 학교에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고, 수업에 들어가는 대신 나를 학교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많은 간호사들과 의사들,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나를 검사했다. 그들은 내가 시간·장소·관계에 대한 인지능력을 잃었고 그래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이 몇 일 인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누구도 나에게 정말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내가 지금 심각하게 치료가 필요하다고만 말했다.

자아의 상실

얼마 후 나는 내가 모르는 어떤 방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나를 밴쿠버 종합병원에 데려 갔고 나는 환자로 등록이 되었다. 나는 굉장히 피해망상적이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몰랐고 그저 병원 사람들이 나를 가족으로부터 떼어놓아 데려가려고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난 나를 잡아놓을까봐 내 이름을 말하는 것도 거부했고 내 친구가 누구인지 내 가족이 누구인지 인정하는 것조차도 거부했다.

나는 약을 먹는 것도 거부했기 때문에 간호원들은 강제로 내가 약을 삼키도록 해야 했다. 난 먹는 것도 거부하며 엄마가 직접 나에게 강제로 밥을 먹일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음식에 독이 들었거나 약을 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먹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면회 허용시간마다 나를 보러 왔다. 난 엄마의 고통과 피곤함을 볼 수 있었지만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를 보러 오셨다. 매일 밤 엄마는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될 때까지 찬송을 부르시며 흐느끼셨다. 이것은 참으로 큰 어머니의 사랑이었고 이러한 사랑을 나에게 보여주신 엄마께 나는 영원히 감사한다.

병원에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어느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의 삶은 그저 먹고, 복도를 아래 위로 걸어 다니고, 부모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에 한정되어 버렸다. 난 아무런 도움도 바랄 수 없다고 느껴졌다. 난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나 혼자 목욕을 하지도 못했다. 엄마가 매일 나를 먹여줘야 했고 씻겨줘야 했다.

병원에 있는 어떤 사람도 나 같지는 않았다. 나의 얼굴 외에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의 성격과 인격도 사라졌고 믿음도 사라졌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은 마치 먼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 마치 존재만 하고 있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힘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난 나의 삶, 현실, 믿음,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졌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이 때쯤 나는 다른 병동으로 옮겨졌고 그 병동은 내가 전에 있던 병동보다 좋지 않았다. 더 오래된 병실에 더 추운 온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주변의 환자들로 나의 피해망상증은 더욱 심해졌다. 나의 삶을 이제 그만 끝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고통이 너무 심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내 몸에 자해를 시도했다. 내 몸을 피가 나도록 할퀴었고 목에 고무 밴드나 수건을 묶기도 했다. 심지어 보도에서 뛰어나가 지나가는 차에 몸을 던지려고도 했다.

나는 내가 무슨짓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자신을 육체적으로 학대하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난 이미 고통에 무감각해져 있었고 내 마음은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엔 이젠 너무 힘들 것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난 왜 내가 병원에서 삶을 끝내려고 하는지 이해하려고 해봤다. 이러한 벌을 받게 만든 나의 죄와 실수들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난 처절했고 희망이 없었으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무 가치 없다고 생각되었다.

난 21년간 내가 믿었던 하나님이라는 분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떻게 기도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자해하여 나의 삶을 끝내려는 생각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이런 나의 심리상태에서도 이 모든 것은 결국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셨기에 나는 그러한 위험의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구도자였던 아버지께서 하루는 나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말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내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사랑하시니 나는 포기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는 그것을 생각하기에 너무나 길을 잃은 상태여서 이해되지 않았지만 뒤돌아보면 구도자였던 아버지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알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많은 검사를 통해 의사들은 내가 갑상선 기능 항진장애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병은 갑상선에 문제가 생겨 일어나는 병인데 실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병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증상들은 불면증, 불안증, 과대망상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유는 갑상선이 너무 많은 호르몬을 생성해서 그렇다고 한다.

기도와 약으로 내 상태가 호전되면서 나는 조금씩 병동을 나가 있어도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나의 행동에 따라서 내가 한 시간, 두 시간, 또는 네 시간 정도를 부모님과 함께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병원에서는 내가 밤에 밖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허락해 주었고 나는 집안의 내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증상의 호전과 치료에도 회복은 더디고 어려웠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칼이나 가위를 목에 대었던 것도 기억한다. 또한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공황발작이 시작되면서 밀폐된 공간에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도 나타났다.

난 부모님께 차를 세워달라고 하면서 나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자동차가 주행중 인데도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했다. 증상이 너무 심해져 아버지나 어머니 한 분은 내 바로 옆에 앉아 나의 손을 잡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운전을 해야했다.

이것은 우리 가족에게 시험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믿는 것 뿐이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부모님 외에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거나 나의 상태를 아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병원에 있는 나는 결코 진짜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예수교회 형제 자매들은 나를 정기적으로 찾아와 주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있던 병실의 환자들은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나를 질투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날 보러 온 형제자매들은 내게 관심을 쏟으며 걱정해주었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생각났다.

참예수교회 형제 자매들은 병문안을 마치고 떠날 때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처음에는 난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지도 못했다. 나는 피해망상이 너무 심해 눈을 감지도 못했고 한 곳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 앞에 내가 나아가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난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 나를 방문해 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눈을 감고 그들과 함께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그들의 방문은 나에게 사랑하는 참예수교회 형제자매들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간증이 되었다.

매일 부모님은 나와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셨다. 또한 내 방의 작은 오디오로 조용히 찬송가를 틀어놓기도 하셨다. 난 부모님께 찬송가를 꺼달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틀어놓으셨다. 결국 나는 찬송가를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화가 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내가 얼마나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말 부끄럽다. 참예수교회 성도들의 지속적인 방문과 부모님의 사랑으로 나는 다시 희망과 믿음을 갖게 되었다. 병원에서 한달이 지난 후 감사하게도 퇴원해 집에 가도 좋다는 결과를 받았다.

하나님 의지하기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금식까지 하며 기도해 주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하여 중보 기도해 준 모든 사람들, 하나님께 나를 향한 사랑과 기도들을 잊지 말라 간구한 그 모든 기도들에 나는 너무나 감사드린다.

너무나 무서운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 모두 하나님은 진실로 좋은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난 분명 이 싸움에서 지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면 난 계속해 싸워나갈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안에 남아있는 믿음을 계속 붙잡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안전히 돌보아 주셨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곳에 계셨다는 것을 나는 본다. 내가 혼자라 생각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보시며 나 대신 전쟁에서 싸워주신 것이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 하고 (신명기 31:6)

나는 이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나의 삶과 학교,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 난 잘 자고 잘 먹고 예전보다 더욱 기쁘게 교회에 다닌다. 찬송하며 기도하고, 설겆이 할 때에도 이런 모든 것들을 다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아프기 전 교회 안에서 내게 주어진 책임들을 감당하는 것이 나에겐 큰 부담이었고 그래서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예전에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모두 나에게 기회와 축복 그리고 특권처럼 생각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그분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정말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배우고 자라날 것이다. 난 이제 삶에는 행복, 슬픔, 시험, 환란, 승리, 축복, 징계, 평안, 문제들이 모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편 40:1~2)

만일 우리가 어두움에 빠지지 않고 넘어지지도 않고 어떤 문제도 겪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 빛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그가 우리를 들어올려 반석위에 서게 하실 수 있을까? 어떻게 그가 우리의 놀라우신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어떠한 문제도 겪지 않고 삶이 늘 순탄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고난 중에 있을 때, 그래도 기댈 수 있는 반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그 구덩이에서 다시 나올 수 있도록 당신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바로 당신 옆에 있다는 것 일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출처: 참예수교회 미국총회 발행 Manna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