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자 한보덕

우리 집은 모두 불교를 믿어서 밤낮 불공드리고 칠성당에 가서 빌고 그랬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제가 대대로 칠성당에 다녔습니다. 남편은 6.25사변 당시 군대에 들어가 있었고 저는 시부모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먹을 물이 없어 땅에 고인 물을 먹고 해서 많이 아팠고, 강원도에 배치되어서는 산에 굴을 파고 포장을 치고 거기서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군대에 가서 살아 나온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남편은 연기로 인한 기관지병이 심해서 제대를 했습니다.

믿은 후에 남편이 좋아지다

남편이 이렇게 아팠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는 병원도 없어서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약이나 지어다 줄뿐이었습니다. 기침을 많이 하고 해소 증세가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병세가 심해져서 일도 못하고 그냥 집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아파 일을 못했기 때문에 생활을 꾸려 가는 것은 제 몫이었습니다. 지게도 지고 나무도 하고 농사도 지었습니다. 시댁은 대대로 불교를 믿는 집안이었는데 아무리 불공드리고 칠성당에 가서 빌고 해도 남편이 계속 아프니까 종교를 바꾸자고 했습니다.

제 동생이 사는 옆 동네가 여우치였는데, 그곳에 허수진 목자님의 이모님이 사셨습니다. 그분이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 친정 어머니는  병이 있어 머리에서 냄새가 나고 고름이 흘러 수건으로 머리를 감고 다녀야 했습니다. 병원에 가도 안되고, 점을 치고 굿을 해도 안 되길래 교회에 가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장로교회에 갔는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딸집에 들렀을 때 허수진 목자님이 전도를 한 모양입니다. “저희 교회에 나오시면 이런 것 문제없이 낫습니다. 나오시죠”

이렇게 전도를 받아서 그 집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분 남편이 박명복씨였는데 박명복씨 부인은 성령과 세례를 받고 그 머리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제 동생 시어머니가 알고 우리를 권해서 제가 남편을 부축하고 간 것입니다. 남편은 내려 갈 때는 겨우 걸어 갈 수 있지만 올라 갈 때는 힘에 부쳐 제가 업고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에 참석하고 저녁에 집으로 올라 올 때 남편이 혼자 걸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예배 때는 나보다 더 서둘러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집안 일과 바깥일을 다 보고 다녀야 하니까 힘이 들고 바빴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당신이 먼저 다니고 나는 뒤에 따라 다니겠다”고 말했습니다. 계속 집회를 하는데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저녁 때 안 가고 다음 날 안식일 오전에 갔습니다. 안식일 날 갔더니 명복이 엄마와 딸이 같이 성령을 받아 방언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저 사람들은 얼마나 믿음이 좋길래 하나님께 성령을 받아서 저런 기도를 할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남편은 저보다 더 교회에 잘 나갔고, 몇 개월 되지 않아 같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성령이 바로 내렸고 그렇게 기쁠 수 없었습니다. 남편도 성령을 받았고 그후부터 몸이 점점 나아졌습니다. 몸이 전보다 안 좋을 것 같으면 목자님을 청해 안수 기도를 받으면 다시 괜찮아졌습니다. 하여튼 금방 죽을 것 같았던 사람이 15년은 더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편 때문에 여우치에서 전도가 많이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남편을 보고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서울도 가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는 것 봐”라고 하면서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가까운 곳도 잘 못 다니던 사람이 멀리서 영은회를 한다고 해도 다 쫓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도 좋아지고 은혜도 많이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 믿더니 완전히 나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고 전도가 많이 되었습니다. 당시 그 작은 동네에서 교회 신도가 한 70명쯤 되었는데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영은회 때마다 오는 시험

교회에서 영은회를 하려면 전주에서 시장을 봐서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밤낮 사흘을 하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집안 일을 전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은회 기간이 돌아왔는데 용주의 형인 큰아들이 아파 몸이 불같이 뜨겁고 죽을 것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마 “네가 나를 더 섬기는가 네 아들을 더 섬기는가 보자” 하고 시험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들이 아파도 내버려뒀습니다. 시골은 약국도 없고 전주나 가야 있는데 60리나 되는 먼길이었고, 영은회에서 한 사람이라도 빠져나가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하나님 일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은회 점심 시간이 끝나 집에 와 봤더니 믿지 않는 제 동생이 와서 이것을 보고 “언니는 아들이 죽어 가는데 교회에 미쳐서 그러고 있어?”하고 야단을 합니다. 저는 “나 미친 것 아니고, 아니는 안 죽어. 걱정하지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업고 교회에 와 오후 예배 때 안수를 받게 했더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다 나아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때 큰아들 나이가 열 서너 살 정도였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은회를 할 때만 되면 큰아들이 다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가 하나님을 더 섬기느냐, 아들을 더 섬기느냐”하고 하나님이 시험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더 섬긴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고통을 면하게 해 주실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정말 아픈 것이 나았습니다. 안수 기도를 받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믿음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진실로 믿었을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큰아들이 아프면 교회 가서 안수 받아 낫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것은 어려서부터 그런 체험이 아주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마귀를 섬겼던 집안이기 때문에 믿으면서도 고통이 많았습니다. 과거에 섬겼던 마귀가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녁 내내 남편과 함께 찬송가 한 권을 다 부르다시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찬송 부르고 또 기도하고 말씀 읽고 그러면 마귀가 다 물러가 버립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집안에 큰 은혜와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무릎을 꿇게 되다

저는 다리가 아팠습니다. 산후 조리를 못해서 산후풍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밭일을 못했고, 조금 무거운 것을 들거나 많이 걸어도 다리가 저리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무릎 꿇고 앉아서 예배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믿은 지 2년 정도 지났을 때인데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도 꿇지 못하고 어떻게 은혜를 받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하나님 앞에 바쳐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심 먹고 오후에 예배 보러 가서 무릎을 꿇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무릎이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한번 결심한 것이니 계속 무릎을 꿇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예배를 드리러 가서 무릎을 꿇어 보니까 무릎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그 뒤부터 저는 계속 무릎을 꿇고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죽음

하나님을 믿고 남편의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15년 정도 생명이 더 연장되었지만 결국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해 봄에 남편이 많이 아팠는데 저는 하나님께 남편이 건강하게 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하나님이 안 받아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 충만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서웠습니다. 이렇게 며칠 기도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서울에 있는 자녀들에게 다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실 것 같지 않았는지 저에게 “급하지도 않는데 내려오라고 했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는 “남편의 영혼을 데려 가시려면 육신을 고생시키지 마시고 빨리 거두어 가십시오. 하나님이 필요하시니까 불러 가시려는 것 아닙니까!” 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하자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가 충만히 나오는 것이 하나님 뜻에 맞는 기도를 한 것 같았고, 아이들도 제가 기도하는 것을 보니까 하늘로 올라갈 것 같더라고 하면서 그렇게 충만하게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남편이 하늘 나라로 먼저 갔습니다. 이렇게 남편을 보낸 후에 제 믿음은 더 굳어졌습니다. 아픈 남편이었지만 집이라도 봐주고, 불이라도 켜주고 해서 힘이 됐는데 이제는 세상에 없으니 하나님만 더욱더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2남 7녀 가운데 큰아이들은 서울로 가고 어린아이들 넷을 데리고 살았는데 그후로는 기도를 참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마을에 마르개댁이라는 택호를 가진 여자가 있었는데 아픈 곳이 많았고 눈이 잘 안보였습니다. 이전에 교회에 나오라고 몇 차례 찾아갔었고, 교회에서 봄 영은회를 할 때는 목자님을 모시고 또 찾아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이틀 후에 굿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이렇게 찾아가자 목자님을 대접하는 의미에서 한번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교회로 가면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로 가야하나, 굿을 해야하나?’ 그랬더니 교회 쪽에서 십자가가 번쩍 번쩍거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도착해 보니까 번쩍거리던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밑에서는 분명히 보였는데……

원래는 잠깐 참석했다가 집에 가서 굿을 하려고 했었는데 영은회 삼일을 꼬박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영은회 끝나는 날 세례식에 따라가더니 자기도 세례를 받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깨끗한 세례복을 입고 물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죽은 듯이 넘어져 혼수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례 받으려고 하니까 아마 사탄이 때려 친 모양입니다. 이것을 보고 목자님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고 기도하니까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난 후에 너무 좋아 펄펄 뛰었습니다. 몸이 가뿐하고, 이제까지는 눈이 어른어른하게 잘 안보였는데 환하게 보였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고 전도를 많이 했고, 지금까지 믿음 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에 나오는 여신도 며느리가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이전부터 교회에 나가자고 권했던 터라 며느리에게 “교회에 나가 좋은 말씀도 듣고 세례 받고 성령 받으면 그런 병은 나아버린다. 교회 가자”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그래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교인들이 찾아가 전도를 한 결과 영은회 기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다니면서 믿음이 생기자 세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는 순간에 가슴에서 무언가 툭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유방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할렐루야!

지금 이적기사가 별로 없다고 하지만 기도가 부족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때는 병원도 없고, 그래서 의지할 것이 없어 하나님만 의지하니까 이적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제 큰손자 선중이 이야기입니다. 지금 16살인데(1998년 현재), 그 아이는 인큐베이터 안에 15일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눈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큰아들이 며느리에게 “그 아이 데리고 어머니한테 데리고 가서 세례 바쳐. 그러면 저런 것 싹 없어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제가 있는 곳에 내려와 목자님에게 세례를 바쳤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나아버렸습니다. 병원에는 한번도 안 갔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렇게 큽니다. 그때 며느리도 같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우치 교회는 이렇게 병 낫는 기적이 많이 있어서 전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손자는 지금도 배가 아프면 자기 배에 제 손을 대고 “할머니, 나 배 아파요. 낫게 기도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이제는 배 안 아프다”고 하면서 잠을 잡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가족은 모두 믿음 안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